코로나가 극심하던 지난 2020년 극장에서 개봉되어 ‘63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이 이번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의 연출을 맡았다. <마스크걸>은 인기 웹툰(스토리:매미, 작화:희세)을 원작으로 한 7부작 드라마이다.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 김모미는 어릴 때부터 넘치는 끼를 가졌지만 세상은 ‘외모’에서부터 그녀를 ‘평범하게’ 대한다. 직장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모미는 밤이 퇴면 마스크를 쓰고 BJ가 되어 자신만의 화려한 세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세상은 그런 ‘마스크걸’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리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평범한 여자(이한별)는 ‘나나’가 되고, 나나는 ‘고현정’이 된다. 그리고 ‘오타쿠’ 안재홍은 비극을 잉태하고, 염혜란은 미친 듯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다. 글로벌한 인기를 막 얻기 시작할 때 김용훈 감독을 만나 <마스크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K콘텐츠는 글로벌한 인기를 누린다. <마스크걸>도 그런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 소감이 어떤지.
▶김용훈 감독: “창작자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어찌 보면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Q. 한 명의 캐릭터를 세 명의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는지.
▶김용훈 감독:“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지 생각했다. 베테랑 스태프들은 이런 방식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먼저 테스트를 해보았다. 성형 전과 후를 특수분장으로 커버했는데 표현이 불편하고 거부감이 있었다. 한 배우가 펼치는 연기에서 표정이나 표현들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게 1차적인 이유이다. 이 이야기를 쓸 때도 모미는 한 인물이지만 사실은 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세 배우가 한 인물을 표현하는데 오는 재미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시리즈는 처음 연출한 것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김용훈 감독:“원작을 봤을 때 흡입력이 있어보였다. 저의 전작(‘지푸라기라도...’)도 그런 느낌의 작품이다. 선과 악이 명확한 게 아니라 경계선에 있는 느낌. 그런 것을 다루고 싶었다.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상황까지 왔는지,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루고 싶었다. 시리즈를 하면서 영화 만드는 방식대로 작업했다. 영화 스태프들이 모여, 7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
Q. 세 명의 다른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할 때 자칫하면 극의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용훈 감독:“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중요했다.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가 이 이야기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얼핏 보면 외모지상주의를 다루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런 사회적 문제, 섹슈얼리티한 부분도 있고, 엄마 때문에 자식이 피해를 보는 비윤리적인 사회현상도 있다. 하지만 <마스크걸>의 진짜 본질은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면을 쓴다’가 본질 아닌가? 양면성과 이중성을 다루면서 하나의 시점보다는 다중 시점으로 다룰 때 그 본질에 더 영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Q. 영화를 찍고 넷플릭스 작품을 연출했다.
▶김용훈 감독: “영화를 더 하고 싶었다. 그 때 이 작품 제안을 받았다. 원작을 보고 두 시간 내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리즈로 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본작업을 했다.” (7부작은 너무 짧거나, 특이한 단락 아닌가?) “인물을 중심으로 플롯을 구성하다보니 딱 7부로 끝나더라. 그 이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드라마 하는 분은 짝수를 좋아하더라. 이거 준비할 때 많은 분들로부터 왜 하필 7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게 적당하다고 보았다. 아니면 이야기가 늘어나거나 압축된 느낌이 들 것이다.”
Q. 원작을 줄이면서 주안을 둔 지점은?
▶김용훈 감독: “인물별 구성을 먼저 선택했다. 주오남이 죽고 나서 엄마가 나오는 것. 춘애의 등장 시점 등. 그런 과정에서 원작 팬들이 좋아했을 부분이 생략이 된 것 같다.”
Q. 취향 이야기를 하니, 주오남 부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전반부에 배치하여 극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김경자 등장부터 빨려 들어가는 부분은 확실히 있다.
▶김용훈 감독: “이건 정말 취향의 차이인 것 같다. 오히려 앞부분에 등장하는 강력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출할 때는 각 에피소드를, 회차 별로 연출스타일을 다르게 가져가고 싶었다. 장르적으로도, 음악도,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각 회차 별로 다르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이런 특이성을 낯설어하는 것 같다.”
Q. 어린 모미가 춤을 추는 장면이 마지막에도 나온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모미의 열망이 느껴지는 듯한데.
▶김용훈 감독: “원작과 크게 달라진 게 모미가 어떤 엔딩을 맞느냐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연민이 있었다. 모미가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연민의 시선을 가졌던 것 같다. 모미가 성장하고, 좀 더 편안한 엔딩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에 혐오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런 혐오의 시선을 받게 된 ‘미모’와 엄마를 원망했던 딸이 마지막에 가서 화해하거나, 또는 이해하는 엔딩을 갖는 게 저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모미의 서사를 많이 바꾼 것 같다.”
Q. 염혜란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김용훈 감독:“분량도 많다. 저는 4부까지 드라마를 따라오면서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적어도 모성애를 느낄 수 있으니. 자식을 잃었을 때의 감정을 말이다. 그런데 김경자가 물속에서 다시 나타났을 때는 달라진다. ‘사탄은 제거하라’는 숙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뚤어진 모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어찌됐던 5,6,7부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비뚤어진 모성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 봤었고, 김경자는 바로 그 비뚤어진 종교적 신념으로 무너진다.”
Q. 모미는 세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염혜란은 혼자 그 역할을 해낸다.
▶김용훈 감독:“모미의 특수분장은 ‘못 생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거부감이 느껴지고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경자의 경우는 외모가 예뻐지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변장이다. 그래서 특수분장을 생각했다. 저는 처음에는 나이든 할머니처럼 나오고 중간에 하비에르 바르뎀 같이 나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Q. 김모미의 딸 김미모, 그리고. 김경자(염혜란)의 비극성에 대해.
▶김용훈 감독: 이 이야기에는 비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아이러니한 부분이 강조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김경자 입장에서는 자식이 효도하기를 바라고, 아들이 손주를 안겨주는 것이 소망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제일 가까이에 있어도,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김경자는 굉장히 나쁜 모습으로 복수를 하는데 그게 가장 아이러니하고, 가장 큰 벌이라고 생각한다.“
Q. 김경자의 사투리와 주오남의 오타쿠 연기.
▶김용훈 감독: “김경자의 경우 원작에는 사투리 설정이 없었다. 그런데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사투리가 어울린 것 같았다. 정감 있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니 그런 것이 캐릭터에 잘 맞겠다 생각했다. 염혜란 배우는 전라도 여수 출신이다. 오타쿠 같은 주오남을 표현하는 데는 배우의 도움을 받았다. 시나리오 처음 작업할 때는 이성을 잃었을 때 일본어가 튀어 나오기를 바랐다. 배우가 ‘일본말을 좀 더 썼으면 좋겠어요.’했다. 그래서 생일파티에서 일본말로 바꿨다. 배우가 어떻게 하면 그런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일본어선생 두 분에게 물어보고 연습을 많이 했다.”
Q. 안재홍혼의 변신은 배우의 이미지를 타격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김용훈 감독:“개인적으로 배우들이 이런 변신에 도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 보면 배우들이 어떤 분장을 하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즐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으면 어떨까. 대중들은 배우들이 계속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 배우의 도전을 좋아할 것 같다.”
Q. 고현정 배우의 모미.
▶김용훈 감독:“흑백의 모미에서 10년 뒤의 모미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고현정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의 모미는 모든 것에 초연할 것 같다. 나나가 연기한 모미가 교도소 들어갔을 때,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욕망,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그런 욕망을 버리고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싸우는 과정은 교도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과정일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저질렀던 과거를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색채를 뺀 흑백과 미니멀한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 이후 모미 모습은? 고현정 배우의 초연한 모습을 생각했다. 선배님은 오히려 감정을 많이 들어냈다. 특히 후반부에 미모를 만났을 때의 모미에 대한 감정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원래 대사가 있었지만 ‘오히려 나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에 웃는 부분도. 뭔가 그 지점에서 말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편안하게, 자기가 할 것 다 했다는 느낌을 보여준 것이다. 선배 생각을 들으며 고쳐나간 것 같다.”
Q. 신창원 티셔츠나, 검찰청 앞 음식배달부 인서트 장면은 풍자적이다.
▶김용훈 감독:“원작에서도 여러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황색언론의 느낌을 표현해서 좀 더 풍자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Q. 이 작품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김용훈 감독: “외모지상주의를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모지상주의가 동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큰 화두일까? 그 문제는 1,2화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것 같다. 전체적으로 회차별로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도별로 색깔을 달리 했다. 1,2회는 노란, 3,4회는 주황, 5,6,7회는 초록색이다.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전체로 봤을 때는 양면성, 이중성을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Q. 이한별 배우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캐스팅 되었다는데.
▶김용훈 감독: “코로나 시기여서 직접 대면하기가 어려웠다. 연출부에서 영상프로필을 받아 이미지에 맞는, 연기적으로 맞는 배우들을 추려 오디션 했다. 이한별 배우의 프로필을 받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만나서 오디션 볼 때 배우가 가진 생각이나 태도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이한별의 이른바 ‘벗방’은 OTT전략인가.
▶김용훈 감독: “어쨌든 서사에 필요한 부분이었고, 모미가 술에 취해서 벗방(옷을 벗는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서사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리액션들이 따르게 된다. 모미가 사건들을 겪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는 보여줄 순 없을 것이다. 제 딴에는 ‘불쾌한 정도’를 줄여주는 정도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Q. 안재홍의 분장은 역대급이다.
▶김용훈 감독:“현장에서 인원이 많은 경우 통제할 때가 있는데, 안재홍 배우가 들어올 때마다 통제를 받았다. ‘저, 사실 제가 안재홍입니다’해야 했다. 팬들이 왔을 때에도 옆에 서 있는데도 ‘안재홍 배우 어딨지?”할 만큼 못 알아볼 정도였다. 우리는 계속 분장한 모습을 보다가 분장을 지운 모습으로 올 때는 낯설었다. 더 잘 생겨 보이고 머리숱도 이리 많았나 생각이 들었다. 분장에서 재밌는 순간이 많았다.“
Q. 세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낯선 방식이다.
▶김용훈 감독:“서사를 따라가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고 생각했다. 배우가 바뀌는 이질감은 있지만, 인물의 시점이 바뀌는 구조이다 보니, 사람들은 드라마를 따라가면 자연스레 모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BJ할 때 이한별 배우의 목소리에 나나의 목소리를 조금 섞었다. 20프로 정도 넣고 사운드 작업을 한 것이다. 나나의 톤을 섞으니 모미가 실제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BJ할 때는 자기 목소릴 낼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나나의 모미가 나올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마스크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할지 미술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되고 싶은 그것이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스크가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변화를 생각했을 때는 두 번째 모미의 얼굴과 비슷하게 하면 이질감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미술감독과 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김용훈 감독: ”방향성에 대해 크게 이야기한 것은 이 작품은 미와 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대게 추한 이야기다. 이것을 추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겉은 아름답게 표현할 것이냐. 시궁창 같은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할 때 그 간극에서 오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런 부분에서 시각적으로 불편할 수 있으니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Q. 이 작품이 해외에서는 어떤 반응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나.
▶김용훈 감독: ”글로벌한 평가는 잘 모르겠지만 보편성이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인간의 양면성, 이중성을 다룬다. 그런 장르적인 재미가 있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그렇게 끝까지 갈수 있게 시나리오를 썼다.“
Q. 아역배우의 연기도 대단했다. 모미의 딸을 연기한 신예서와 학교친구 김민서 연기 말이다.
▶김용훈 감독: ”아역배우는 항상 보호자들이 있는 가운데 촬영을 진행했다. 아역이지만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잘 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했다. 현장에서 그들 또래가 이야기하는 방식, 말투, 행동에 대해 물어본 적도 있다. 저도 도움 받은 것이 있다.“
Q. 김경자가 구원받는 방식에 대해.
▶김용훈 감독:”김경자는 ’아들에 대한 집착‘과 ’오로지 신(神)‘이라는 두 가지를 계속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서 크게 변질된 것은 신의 생각을 자기가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걸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게 신의 계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점에서 모미의 서사에서 <밀양>의 느낌이 들 수도 있다.“
Q. 미모의 아버지가 누군지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김용훈 감독: ”제가 모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과연 그런 말을 할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김경자가 과연 믿어줄까. 항상 ‘거짓부렁이 같은 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믿지 않고 더 분노할 것 같다.“ (고현정은 이 질문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염치가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현정, 안재홍, 염혜란, 나나, 이한별이 출연하는 김용훈 감독의 <마스크걸>은 지난 18일 공개된 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