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유발 하라리의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 전병근 역)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미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라는 묵직한 책으로 지적 갈망에 몸부림치는 많은 한국독자들을 매료시킨 저자이기에 이번 신간에 대한 기대도 높다.
유발 하라리는 옥스퍼드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인류역사를 종횡무진 누빌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드나들며 온갖 학문의 세계를 한 곳에 끌어 모은다. 그 길을 잘 따라가면 인류역사, 문화와 전통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에 헤매다보면 맥락을 잃어버리고 잡지식에 빠질 우려가 있다. 물론, 두께에 비해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니다.
이번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앞선 두 책의 보론(補論)에 해당할 것 같다. 인류는 개화하고, 문명은 발전하고, 역사는 전진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전해준다. <사피엔스>에서는 유인원이 지구를 지배하는 과거를, <호모 데우스>는 점점 신(神, Deus)이 되어 가는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다시 돌아 이번 책에서는 인류가 직면한 현재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발 하라리의 폭넓은 지식세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신간은 온갖 주제로 독자를 유혹한다. ‘기술적 도전’, ‘정치적 도전’, ‘절망과 희망’, ‘진실’, ‘회복탄력성’이란 챕터는 다 읽기만 하면 인류의 고질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굉장한 혜안을 안겨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는 공동체문제, 민족주의, 종교, 테러리즘, 종교 등 다양한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인류역사 전 과정을 통해 추출된 결과물을 잊지 않는다.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는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의 국가적 단위, 범위의 문제를 소개한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통합과 단결’을 지향하면서도 분열과 독립의 움직임이 끊이질 않는다.
저자는 현대인이 빠져든 몇 가지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페이스북’이다. 월 1회 이상 방문하는 사람, 이른바 월간 활성이용자가 20억 명이다. 지구상 그 어떤 매체도, 잡지도, 스타도 이루지 못한 ‘대상’이다. 이런 ‘대상’에 접속하기 위해 현대인은 기꺼이 무언가를 바친다. 꼭 페이스북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은 공짜 이메일 서비스, (그리고 유발 하라리식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재밌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감정을 서슴없이 ‘하트 뿅뿅’으로 표시한다. 이 모든 개인정보는 거대한 ‘데이타’가 되어 인류를 지배하는 또 다른 알고리즘 요소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놀란 것은 그가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기꺼이 밝힌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스스로 부인하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 혹은 아마도 과도한 ‘자기감정의 표현’에 따라 알고리즘은 진작에 개인의 취향을 판단할 것이란다.
미래는 정해졌는지 모른다. 이제, AI는 당신의 데이트 상대를 추천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적성, 당신의 ‘상대적’ 실력과 비전을 파악하여, 어느 대학에 가서 무엇을 공부하라고, 졸업하면 직장까지 추천하고, 무슨 색깔의 어떤 차를 어떤 식으로 사라는 것까지 ‘카톡’으로 알려줄 것이다.
이게 올바른 역사발전이 아니라면? 앞으로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적 모델을 구상하고 준비해야한다고 결론짓는다. 조금은 허망한 ‘제언’이다. 그래도 유발 하라리의 말이며 귀담아 들어야할 것 같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