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스페셜2018’시즌의 두 번째 주자 <잊혀진 계절>(연출:김민태 극본:김성준)은 탄탄한 이야기로 묵직한 주제를 전해주는 드라마였다.
‘잊혀진 계절’은 노량진 학원에 기거하는 청춘의 삶을 그린다. 몇 년째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며 자신의 청춘을 저당 잡히고, 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외면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춘들이 주로 기숙하고 있는 고시원. 현대적 설비의 원룸텔이 들어서면서 이곳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몇 년 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청춘들이 있다. 이은재(고보결)는 5년 째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매일같이 “정의로운 경찰은...”이라고 문제집을 외고 있다. 처음엔 쉽게 합격할 줄 알았는데 고배를 거듭 마실수록 자신만의 공간, 감정에 함몰된다. 고시원의 또 다른 장수생은 허준기(김무열). 방송사 민완기자로 잘 나가는 동생(정준원)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끼는 그에게는 딱히 정해진 목표가 없다. 고시원의 민폐이자, 삶의 루저 같지만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어느 날, 이 고시원에 새로운 공시생 최지영(고민시)이 들어온다. 인생을 건 공무원시험과, 청춘을 저당 잡힌 고시원에서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되지만, 좁은 고시원에 복도에서 오며가며 부딪히며 날카롭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드라마 ‘잊혀진 계절’은 흔한 고시준비생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된다. 이야기구조는 탄탄하다. 고시원의 모습은 CCTV, 삼겹살 구워먹기, 택배 배달사고 등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각 방에 갇힌 청춘들의 각박한 삶을 전해준다. 합격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그들에게선 흔한 연애이야기도 최소화된다. 고보결은 5년의 공시생 기간 중 단 한 번 따뜻한 인간의 감정을 느낀다. 비 오는 날,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을 때, 캔 커피를 전해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재호(김우현)이다. 아침에 조깅하다 넘어져 다쳤을 때 ‘인간적 관심’을 표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진도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책방에서의 한 씬. 높은 서가에 꽂힌 책을 뽑으려는 고보결을 보고 도와줄까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는 김우현. 이런 고시생들의 이야기와 함께 의문의 짐가방을 실어 나른 택시기사의 표정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모든 것을 들려주진 않았지만 그들 각자에겐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쏟은 것이리라.
모두가 놓친, 애써 외면한 일상이 야기한 후과(後果)는 엄중하다. 잔잔하게, 하나씩 쌓아오던 이야기는 기대했던 합격의 기쁨이나, 연애의 성사, 후련한 복수가 아니라 상상도 하기 싫었던 최악의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결원이 생기며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고시원에는 새로운 공시생이 들어올 것이고, 합격자 명단에는 또 다른 사람이 이름이 오를 것이다. 방송국 민완기자는 국회로 가든, 어디로 가든 지 밥벌이는 계속 할 것이다. 남은 자는? 우리 모두가 외면한 대가와 누군가의 출세를 위해 만들어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는 결국 조용히 잊히고 말 것이다. 그는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 가만히 스며들 것이다. 그와 함께 피해자의 청춘도, 가해자의 분노도 조용히 잊힐 것이다. ‘잊혀진 계절’이다. 참, 제목 ‘잊혀진 계절’은 비문(非文)이다. ‘잊힌 계절’이 올바른 표기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