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1시간을 꽉 채우는 단막극을 좋아하는 드라마 팬이 많다. 우리나라 TV단막극의 대표주자로 해마다 시즌제를 유지하고 있는 KBS 드라마스페셜이 시즌2018을 시작했다. 올해에도 탄탄한 이야기로 무장한 흥미로운 단막극 10편이 시청자를 찾을 예정이다. 그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작품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가 지난 14일 방송되었다. 전소민-박성훈-오동민의 물오른 연기가 한밤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드라마를 연출한 황승기 피디를 만나 드라마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청률은? “생각보다 잘 안 나왔다. 올해는 시간대가 바뀌어 예능타임 대에 편성되었다. 그래도 일단 스타트를 끊었으니 다음 주부터는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방송 끝날 때 실시간검색 순위에서는 1등 했었다) “드라마 단막극 하면 보통 다 1등 하더라. 첫방이라 궁금해서 그런 모양이다.”
황승기 피디는 “<나의 흑역사>는 어렵지 않은 대본이라 재밌게 본 모양이다. 단막이 항상 논란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깐. 재밌게 봐 주셨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첫 편은 가볍게 보시고 다음 주부터는 더 재밌게 보시라고 운 띄우는 작품이었다.”고 총평한다.
시험출제위원이 묵은 곳은 어디인가. “모 기업연수원이다. 원래는 실제 느낌이 나게 큰 콘도를 잡고 싶었다. 그런데 촬영기간이 여름 성수기라서 구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비슷한 느낌의 연수원을 섭외해서 찍었다.”
‘수학문제’를 다룬다. 배우들도 그렇지만 칠판에 쓰인 수학 공식이 ‘정확’해야 할 텐데. “연출자도 작가도 문과 출신에 수포자였다. 촬영 현장에서 수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수포자였다.”면서 “대신, 자문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미술작업에 필요한 자료들과 연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전에 준비했다. 수학풀이란 게 읽기도 쉽지 않다. 녹음해서 그대로 읽도록 했다. 이건 수학드라마가 아니니 시청자들이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CG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극중에 나오는 수학문제도 함부로 낼 수 없었다. 작년 실제 출제된 문제를 활용해서 고증을 거쳐 진행했다.”고 밝혔다.
황 피디는 “주인공 도도혜 선생(전소민)이 출제문제를 출제위원, 검토위원들과 논쟁을 펼치는 장면은 대본 내용과 연관이 이다.”며 “함수 문제를 두고 미지수 엑스를 나필승과 연결시키고, 첫사랑을 이어주는 방식이다. 명확히는 화면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스페셜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하면 12분, 17분, 27분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바로가기)
뜬금없이 도서관에서 생선회 먹는 장면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합숙하는 출제위원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그곳 음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싱싱한 생선을 못 먹는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자료조사를 하며 합숙하는 동안 상을 당하거나, 갑자기 병원에 가게 되는 등 재밌게 느껴진 에피소드를 대본에 녹인 것이다.”
작년 단막극 극본공모 최우수상 수상작(극본 배수영)인데 촬영하면서 달라진 게 있나? “기본골격은 같다. 포항지진이 나기 전에 공모한 것이라 그 이야기가 추가된 셈이다.”
등장인물 소개에는 전소민과 박성훈이 중학교 동창이라고 나왔는데. “아, 초고에선 초등학교 친구였다. 그런데 아역을 따로 캐스팅하여 찍어야하나 고민했다. 먼 과거보다는 가까운 대학동기로 바꿨다. 셋 다 나이가 같은, 대학동기이다.”
작년에 <혼자 추는 왈츠>와 <강덕순 애정변천사>를 연출했고 이번 작품이 세 번 째 단막극 연출작이다. “단막극이 연출자에게 좋은 것은 다양한 장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한 번도 안 해봐서 이번이 기회라 생각했다. 아직은 뭐가 내게 딱 맞는지 모르겠다. 하나 더 해봐야겠다.”
로코는 어땠나? “곧장 미니시리즈 로코를 연출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코미디 대본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해보니 재밌다. 배우들도 훌륭했고. 여건이 잘 맞아 촬영은 어렵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물은 연출보다는 대본의 힘이 중요하고, 연기가 중요한 것 같다. 캐스팅만 제대로 되면 연출자가 할 건 별로 없다. 연기자와 이야기 많이 나누고, 현장에서 그들이 맘껏 연기하도록 해주는 게 다다. 연출의 영역이 많지 않은 게 로코인 것 같다.”
전소민-박성훈-오동민은 처음부터 원했던 캐스팅인가. “다들 1안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전소민은 처음부터 염두에 뒀었는데 곧바로 캐스팅되었다. 박성훈은 작년 단막극(나쁜 가족들/김민경 연출)에 나온 것을 보고 같이 하고 싶었었다. 오동민은 이번에 처음 뵙는데 첫 미팅하고 바로 결정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 남편이랑 이미지가 조금 다를 것 같았다. 다들 재밌게 연기했다. 워낙 연기를 잘 하시는 분들이라.”
작품 끝나고 클로징 크레딧 시작될 때 ‘사운드디자이너 서홍식님을 기억하며’라는 자막이 나온다. “지난여름 지병으로 돌아가신 서홍식 음향효과 감독님은 KBS의 거의 모든 드라마 작품을 담당했었다. 같이 작업할 줄 알고 제작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었는데. 이 작품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이름을 올렸다.” (고 서홍식 음향효과감독은 1991년부터 KBS드라마 음향효과 일을 시작으로 28년 동안 1000편이 넘는 작품의 사운드를 책임져왔다.)
다음 작품은, 컬링드라마 ‘닿을 듯 말 듯’
황승기 피디는 올해 드라마스페셜 두 편을 연출한다. 스타트를 끊은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와 마지막 편 ‘닿을 듯 말 듯’(11월 16일 방송예정)이다. ‘컬링’ 선수가 고향 ‘의성’에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평창 동계올림픽 분위기에 기획된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건 아니다. 고향이 의성이라 겸사겸사. 좀 익숙한 풍경을 다루고 싶었다. 기획자체는 평창올림픽 전부터 소재와 장소가 정해졌었다. 올림픽 때 컬링이 이슈가 되다보니 대본이 힘을 받아 이번에 제작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고 밝힌다. 평창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마늘은 안 나온다. 철이 아니라서.”라고 덧붙인다.
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2015년 장대높이뛰기가 등장하는 <알젠타를 찾아서>(연출 김정현)가 있었다. 황 피디는 “스포츠 드라마를 만들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어려움이 많다. 영화 <국가대표>처럼 만들긴 어렵지만 단막극에서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생소한 배경(의성)과 익숙하지 않은 종목(컬링)으로 신선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것 같지만.”
국가대표 코칭 스태프가 일찍부터 자문해 주고 있고, 배우들도 한 달 째 컬링연습에 매진 중이라고. “작품에 나오는 컬링 선수는 고등학생 팀이나 막 생긴 동아리가 아니다. 국가대표 준비하는 친구이니 프로 선수의 자세가 나와 줘야 한다. 배우들이 아주 열심히 훈련받고 있다.”고 밝혔다.
황승기 피디는 수포자 문과 출신이랬다. 체육전공도 아니다. 전공을 굳이 물어보니 ‘신방과’란다. ‘신방과’ 출신 지상파 드라마피디에게 어울릴 질문을 던져봤다. “요즘 KBS드라마 경쟁력에 대해서 한 마디 하신다면?”
“드라마시장이 너무 커졌다. 지상파 드라마 경쟁력은 없어졌다. 조직도 무겁고. 예산도 다르다. CJ 등 사기업은 후발주자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진입을 위해 큰 예산을 쓴다. 그렇게 점유율을 높여간다. 그러니 작가와 배우를 어떻게 잡아 둘 수 있겠느냐. 경쟁력은 떨어지고. KBS는 공영방송이다 보니 운용예산 규모가 정해져있다. 아마 최근 2~3년간 급속하게 시장균형이 기울어졌다. SBS도, MBC도 마찬가지이다.”
내년에도 드라마스페셜이 시청자를 찾을 수 있을까. “KBS가 단막극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시장은 규모의 경쟁을 펼칠 것이다. 우선 기초적인 내실을 다져야한다. 신인 연출자, 신인 연기자, 신선한 이야기를 발굴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부분이니.”
조금은 힘들어 보이는 황승기 피디에게 피디의 자질을 물어봤다. “체력이 가장 중요해요.”란다. 내심 ‘섭외력’이나 ‘조율 능력’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고 하니 이렇게 대답한다. “워낙 드라마가 전문화 되었다. 흐트러진 일들을 하나씩 취합해서 메이드 하는 것이 조율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파트와 협업해야하니 체력이 중요하다. 오늘도 회의를 7개 연속해서 뛰고 있다. (인터뷰는 오후 6시 지나 진행됐다) 미술관련, 촬영준비 체크, 대본 리딩, 캐스팅관련 등등 회의 소화하기도 벅차다.” 그리고 덧붙인다. “단막극이 이 정도인데 미니드라마는 예산도, 규모도 크다. 선택과 집중. 그런 걸 해내려면 체력이 중요하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의 전국시청률 3%(TNMS/전국)였다. 반응은 좋았다. 황승기 감독의 <닿을 듯 말 듯>은 11월 16일 방송될 예정이다. 김민석, 박유나, 박한솔이 캐스팅되었다. 제목 뜻은 ‘컬링’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아, 직접 보시면 압니다”란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