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일 개봉한 영화 [박하사탕]의 김영호를 연기하며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한 설경구는 이후 사반세기 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한창 연기파 배우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할 무렵 김용화 감독의 작품에도 출연할 뻔 했지만 인연(스케줄)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더 문]에서 만나게 된다. 영화는 우주(달)로 보내졌다고 조난당한 우주비행사 황선우(도경수)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를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려는 우주센터의 김재국(설경구)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설경구를 만나 [더 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내 이야기보다는 도경수의 달이 더 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Q. 소백산에서 우주관제센터로 복귀하는 장면을 보며 김용화 감독이 왜 배우를 선택했는지 알겠더라.
▶설경구: “이 영화 제작비가 280억 원 들었다고 한다. 적은 예산은 아니지만 우주를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넉넉하지 않다. 제한된 예산으로 이 영화를 만들자면 지구 쪽보다는 달 쪽에 더 투자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센터 세트를 보고 고마웠다. 낯설지 않게, 2층 연결 계단까지 풀세트로 준비했더라. 촬영가면서 정이 들었다. 그 장면에 등장하는 요원들도 모르는 친구들인데 편하게 찍었다. 완성된 것을 보니 그 부분도 잘 나왔다.”
Q. 우주(달)에 있는 도경수 신과 센터 신을 따로 찍었다면 상대 배우를 보지 못하고 연기했다면, 연기호흡은 어떻게 이뤄졌나.
▶설경구: “장면들이 따로 놀면 안 되니까. 도경수가 먼저 촬영에 들어갔다. 찍어놓은 것을 보고 센터 신 촬영을 했다. 그게 도움이 되었다. 경수 씨는 센터 쪽을 못보고 자기 분량을 찍어야했다. 달에 착륙해서는 프리비주얼로 토막토막 만든 것 보고 찍었다. 서로 소통하면서 찍은 게 아니었고, 워낙 극적인 장면을 찍는 것이니, 센터요원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입도 바싹 마르고, 답답함에 소리도 질러보는 것 말고는 결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식으로 감정의 빌드업이 이뤄졌다. 정말이지 사투를 벌였겠지만 무기력한 답답함이 있었다.”
Q. <승리호> 보고 나서 시나리오를 본 것인가.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었나?
▶설경구: “<승리호>보고, 그 다음에 <고요의 바다>가 나왔다. 감독에게 설명을 들었다. 말로. 근데 말대로 되지 않으면, 화면이 구현이 안 된다면 신뢰가 깨지는 것이다. 달 표면 같은 것은 CG의 힘만이 아니라 세트도 잘 만들었다. 그걸 적절히 믹스시킨 것이다. 야외에서도 찍고, 세트에서 찍고 섞은 것 같다.”
Q. 달 장면 CG는 어떻게 보았나.
▶설경구: “후반 4~50분을 보면서 내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 선우를 꼭 살려야 되겠더라. 기술적인 면보다는 퀄리티가 잘 표현되었고, 완성도가 높이 나온 것 같다.”
Q. <승리호>를 거치며 <더 문>이 이룬 성과가 있다면?
▶설경구: “<승리호>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작품은 조금 떨어져서 본 것이다. 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3자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 그런데 이 작품은 선우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우주나 달이란 것을 순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상황에 몰입해서 보게 된다. 보는 입장에서 배우와 함께 움직이게 되는, 가성비 좋은 체험형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 표면을 달리고 뒹구는 것이 달일 수도 있고, 지구의 한 오지 같기도 했다. 대전에서 항공우주산업을 짊어지고 가는 전문가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했는데, 기분이 남달랐다. 영화를 다 보신 뒤 좋아해주셨다. 그분들은 달과 우주만 연구하시는 분이신데 영화를 잘 만들어주었다고 해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지구의, 우주센터에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보셨을 것 같다. 절박감과 함께 광활한 우주와 신비한 달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지극히 작아 보이는 인간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Q. 절박함은 어떤 것인가.
▶설경구: “저는 어떻게든 선우를 귀환시켜야한다. 5년 전 사고도 있었으니, 그 아들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순서대로 찍지 않기에. 감정의 변화는 감독과 상의하며 찍었다.”
Q. 감독과의 대화는.
▶설경구: 감독님은 소년 같다. 반응이 바로 나온다. '저 사람 무슨 생각할까' 하는 고민이 없어서 좋다. 맞으면 “맞아~‘하고 박수치고 리액션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그런 순간에 답답한 감독도 있다. (감독 생각/의도와 다르게 연기했다면?) "한 번 더 가자고 그런다. 한 더 테이크 간다‘
Q. 소백산 센터에서 같이 근무하는 홍승희 배우와의 이야기에서 편집된 부분이 있다던 데 어떤 것인가.
▶설경구: ”홍승희와는 사냥 나가기 전에 대화 나누는 장면이 있다. 티격태격하는 신이다. 라면만 먹다가 고기 먹으러 가자고. 그리고 저와 김희애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가 내가 이야기해 줘서 알게 되는 장면이다. 홍승희 신이 많이 편집된 것 같다. 지구 쪽이 많이 날아간 셈이다.“
Q. 도경수는 오롯이 혼자 우주에서 연기를 펼친다.
▶설경구: ”우주와 달 장면은 VFX만 잘 된 것이 아니라 도경수의 연기까지 섞여서 한 덩어리로 몰입감이 있게 완성된 것 같다. 도경수 배우는 우주에서도 혼자, 현장에서도 혼자였다. 대게 씩씩하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연기할 수 없었다는 게 나도 안타까웠다. 세 번 만났다. 과거 신에서 두 번, 현재 장면에서 한 번. (개봉 앞두고 홍보하면서) 요즘 더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다음엔 서로 눈을 보고 호흡을 맞췄으면 한다. 도경수의 맑은 눈 뒤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제작보고회 때 도경수가 김희애를 계속 쳐다보면서 ’평생 처음 봐요‘ 그러더라. 코로나 때라서 회식도 못했다.“
Q. 특별하게 영화를 찍은 셈이다.
▶설경구: ”코로나 때여서 더 그랬다. 나는 현장에 가면 스태프 이름을 다 외는 편인데 <유령>, <길복순>, 그리고 <더 문>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과 이전에 같이 작업한 스태프가 많아 그나마 많았지만 <유령>과 <더 문>은 그러질 못했다. 처음엔 ’마스크 좀 벗어 볼래?‘하다가 그게 실례더라. 그 말이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서 안했다. 회식도 못하고, 쫑파티도 못했다.“
Q. 일반시사회 때 팬들의 반응이 대단하더라.
▶설경구: ”그건 도경수 팬들이고.“ (’지천명아이돌‘이라고 설 배우에게도 열광적이던데?) ”그건 기자들이 붙인 별명이다.“ (그래도 팬들이 대단하던데..) ”감사하죠. 아이구. 감사하죠. 예전엔 그런 말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쑥스러웠다.이젠 받아들여야죠. 이게 익숙한게 병이라고.“(하하)
Q. 다양한 작품에서 수많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설경구: ”이 작품으로 성장했다는 식으로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번 영화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맡은 재국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전체의 틀에서 어떻게 하면 우주와 달을 구원할까. 저의 반대에 있는 것에 대해 궁금했던 작품이고, 그 조력자로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당한 퀄리티로 만들어져서 좋았다. 매 작품 의미를 두면 피곤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만족하지 못한 작품에서도 성장하는 것 같다.“
Q. 설경구 배우는 SF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설경구: ”그렇다. 그런데 그게 선입견이었나 보다. 김용화 감독은 그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VFX회사도 갖고 있어서 어떻게든 만들 것 같았다. <그래비티>는 천억원이 들었단다. 그것도 10년 전이니 지금은 3천억 원은 들 것이다. 1/10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만들었다. CG는 예산과 시간의 문제이다. 280억으로 이걸 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Q. 감독은 처음에는 재국의 시점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데.
▶설경구: ”그래요? 저는 단순하게 달에서 저 아이를 데려오는 게 목적이고, 그래서 달이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Q. 김용화 감독은 예전부터 설경구 배우와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다고 하던데.
▶설경구: ”<오 브러더스>(2003) 책을 받았건 것 같다. 그걸 못해서 속상했다. 작은 영화인데 아기자기 한 게 재밌었다. 내가 못해서 약 올랐다. 소싯적이 잘 나갔을 때 스케줄이 맞지 않아 못했으니. 그 작품이 잘 나오면 약 오르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다음에 맞는 것 있으면 같이 하자고 그랬다. 그게 17년이 되었다.“
Q. 우주센터의 센터장 연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는지.
▶설경구: ”옛날 <공공의 적> 할 때도 경찰 강력계 형사 만나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만나서 사건 현장도 같이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런 제의 왔을 때 내가 거부했다. <용서는 없다> 할 때는 부검에 참관하라고 하더라. 실제랑 영화에서 더미 이용할 때는 다른 것이라서. 그런데 못 들어가겠더라. 평생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서. 그래서 관계자와 인사만 하겠다고 했다. <역도산> 때는 레슬러와 인사만 했다. <소원>때도 부모님 만나는 것 다 끝나고 뵈었다. <생일>때도. 그 사람들을 만나서 선입견을 갖기 싫어서이다. 영화는 제 감정을 쓰는 것이다. 제가 느끼는 것을 연기해야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용어를 외는데 다 까먹었다. 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평생 공부한 걸 따라 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외는 것이다. SF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엔 제안도 없었다. 대신, 감독님이 계속 만나고, 자문을 구했다. 처음 시작할 때 이 작품에 대한 신뢰도를 물어봤다. 감독님이 지금도 계속 자문 구하고 있고, 소통한다면서 믿어도 된다고 그랬다.“
Q. 한국의 우주산업은 6위와는 격차가 큰 7위라고 한다. 센터장을 연기한 사람으로서 생각은 어떤가.
▶설경구: ”저도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전체적인 지원을 떠나 그분들은 사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하고 있다. 사명감 없이는 못하는 일이다. 처우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지원이 넉넉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대한민국 사람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지원을 한다면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김용화 감독은 [더 문]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한 것 같은가.
▶설경구: ”감독은 용기와 구원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 같다. <신과 함께>도 그렇고 꾸준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저는 용서와 화해인 것 같다. 선우와 저의 문제뿐만 아니라 저와 김희애, 저와 현 센터장(박병은)과의 관계가 그렇다. 현 센터장과의 신은 편집된 것도 있다. 원망 같은 것으로 저를 쏘아붙이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마지막에 치유되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서로 알아가는 이야기인 것 같다.“
Q. 여름 극장가에 많은 영화가 개봉된다.
▶설경구: ”영화가 너무 많다. 이렇게 몰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 같은 날 김용화 감독과 <신과함께>를 같이 한 배우들 작품이 개봉된다. 저보다 김용화 감독이 더 당황했을 것 같다. 겉으로느 표현 안해도 말이다. 관객분들이 다시 극장에 다시 오게 하는 좋은 기능도 있으니 지켜봐야죠. 당황스러운 경험이기는 하다.“
Q. [더 문]을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설경구: ”봐야하는 이유? 글쎄요. 이유가 있나요? 봐주시면 좋은 것이고. 이 영화는 가족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여름 영화 중에 좋은 영화가 많다. 다 개성이 있고,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다. 우리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이다. 가족이 다 같이 와서 보면 좋을 영화임에 분명하다. 미래세대에게도 좋고, 어른들도 신선해 하는 것 같다. 게임 좋아하는 아들도 좋아할 것이다.“
Q. 재국은 마지막에 자신과 화해했다고 생각하는지.
▶설경구: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저의 용서를 구한 것은 아니다. 황규태 박사(이성민)를 황선우에게 이해시킨 것이다. 저의 용서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선우가 그렇게 오해할까봐 정확하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 절박한 상황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비참하기는 했지만 해야 했다. 당사자는 이 세상에 없고, 그 사실을 꼭 알려줘야 하니. 자신에 대한 용서나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소백산으로 간다. 저대로 저의 짐을 안고 살아갈 것 같다. 원죄를 갖고.“
Q. 영화외길을 걸어온 베테랑 배우로서 한국영화위기론이 나오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설경구: ”배우는 배우이니. 자기 본업에 충실하고 한눈팔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다.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한국영화는 늘 위기였다. 어떤 형태로든 반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케이컬쳐라고 부를 만큼 다른 발전도 있으니. 항상 공존해가는 것 같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죠.“
설경구 배우의 다음 작품은 허진호 감독의 <더 디너>가 될 듯하다. ”그 작품은 <보통의 가족>으로 제목이 정해졌다. 다음 달 토론토영화제 갔다 오면 개봉 관련한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의 작가 헤르만 코흐의 베스트셀러 [디너]를 원작으로 한 <보통의 가족>에는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이 출연한다.
설경구와 함께 도경수, 김희애, 박병은, 조한철, 홍승희, 이성민, 김래원, 이이경 등이 출연하는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은 8월 2일 개봉되었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