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리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막을 내린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는 주연, 조연은 물로 특별출연한 배우들까지 모두의 열연과 심나연 감독의 빛나는 연출로 2023년을 기록하는 인생드라마로 기록된다. <나쁜 엄마>의 극본은 배세영 작가가 썼다. 배세영 작가는 'SNL코리아' 시즌1에서부터 코미디 감각을 키웠고, 충무로에서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2007)을 시작으로 <킹콩을 들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바람 바람 바람>, <완벽한 타인>, <극한직업>, <인생은 아름다워> 등 10여 편의 영화의 각본/각색/윤색 작업을 해온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이다. <나쁜 엄마>는 처음에는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되었다가 TV드라마로 완성되었단다. 첫 번 째 드라마로 홈런을 친 배세영 작가에게 궁금했던 몇 가지를 이메일로 물어보았다. 배세영 작가의 원고지 속으로~~
Q. 조우리 주민을 연기한 배우들은 누구 하나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앙상블을 보여준다. 캐릭터 구성의 원칙이 있었다면?
▶배세영 작가: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구성했다기보다는 우리의 주인공인 영순과 강호에게 일어날 엄청난 사건들을 생각했을 때, 구체적인 행동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지가 되고 조력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하였고 그 주변으로 하나, 둘 구성하다 보니 지금의 조우리 마을식구들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마을 전체를 이끌어가야 할 이장과 마을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이나 속마음을 솔직히 대변해 줄 이장부인, 영순의 친구들이자 강호 친구들의 엄마인 정씨와 박씨, 마을의 브레인이자 행동대장 청년회장, 돼지농장에 위협이 되는 인물인 작은 빌런 트롯백, 강호의 사랑 미주와 강호의 애증의 친구 삼식이 그리고 공부에 치여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강호의 새로운 유년기를 함께 해 줄 서진과 예진. 모두가 영순과 강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로 배치되었다.”
Q. 그중 이장의 아내는 마스크팩 쓰고 계속 이상한 말(팩폭)을 계속하는 설정이었는제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생각했는지.
▶배세영 작가: “가면을 쓰고 바른말을 하는 이장부인이 있었다면 가면을 쓰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오태수나 송회장도 있었다. 강호의 결혼을 도우면서도 미주만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씨, 시기 질투가 나지만 삼식이의 일자리를 위해 아부하는 박씨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점에 답답해하지만 14부 내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은 정작 이장부인 한 사람 뿐이었다. 그 아이러니를 단순하고, 재미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마을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팩트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대중 속의 '익명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또한 일본야쿠자의 딸인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Q. 조우리 배역 중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었다면?
▶배세영 작가: “캐릭터들 마다 애착을 가지고 작업을 해서인지 그 경중을 따지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영순의 곁에서 각각 또 다른 형태의 모성을 보여줘야했던 박씨와 정씨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던 것 같다.”
Q. 모자지간의 정과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가족드라마이면서, 정치드라마로서 핵심은 다 갖고 있다. 정경유착, 청부살인, 자신의 당선을 위해선 자신의 피붙이까지 내다버리는 냉혈한의 모습 등등. 앞으로 정치드라마로 쓰실 생각이 있는지.
▶배세영 작가: “[SNL코리아]에서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써봤지만 정치라는 것이 참 어렵고 복잡한 것 같다. 그래서 정치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에 제가 추구하는 휴머니티가 담길 수 있다면 집필을 고려해 볼 수 있다.”
Q.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최종회 재판 장면은 전체 비해 의외로 짧고, 굵게, 깔끔하게 처리된다. 강호가 검사인데, 검사의 맹활약은 여기에 다 집약된다. 법정 장면에 대해.
▶배세영 작가: : “강호의 재판 장면은 이 드라마가 법정드라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길게 가져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모든 제작진들의 의견이었다. 자칫 이야기의 본질이나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축적이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태수와 송회장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흐름이었고, 돌아온 검사 강호가 이들을 한 자리에서 짧고 굵게 단죄하는 선택을 하였다. 강호가 정신만 돌아오면 이들을 단죄하는데 필요한 주변인물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상황이라 길게 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언뜻 보면 마지막장면에 복수가 이뤄진다고 보여질 수 있으나 이미 강호 주변으로 등장했던 많은 인물들로 인해 과정은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의 끝은 개인과 개인의 결과가 아닌, 준비되어 있는 집단과 악의 대결이었다. 복수는 강호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부터가 아니라, 유전자 결과지를 찾아낼 삼식이가 마을로 돌아오는 과정, 황수현의 USB가 발견 돼 송회장 손에 들어가는 과정, 박철수의 휴대폰의 발견과 예진이가 찍어놓은 하영이의 동영상이 발견되는 과정 등등에서 이미 하나하나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Q. 인상적인 설정 중에 '수현이 바다에 뛰어들 때 소화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평소, 대본을 준비하며 자신의 글에 이건 사용하겠다고 메모해두거나 하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글을 쓸 때 특별한 버릇이나 징크스가 있는지.
▶배세영 작가: “평소 메모를 아주 자주 하는 편이다. 순간순간, 모든 상황 혹은 대화, 세상에는 정말 재미있는 많은 소재가 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남기려고 노력한다. 이런 것들이 후에 집필을 할 때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작품에 녹여지는 것 같다. 징크스가 있다면 항상 집필을 시작하기 전 대본을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야 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늘 첫 장면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새로운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 할 때는 성적이 좋았던 기존 작품의 파일을 먼저 열고, 그 안에서 새 페이지를 열어 시작한다. 아무래도 좋은 기운을 받고 싶은 본능이 발동하는 것 같다.”
Q. 콤비플레이, 두 사람간의 밀당구조가 빛을 발한다. 조우리 주민 부부, 쌍둥이 남매, 소실장과 차대리가 티키타카 하듯이 말응대를 한다. 누가 말맛을 제일 잘 살리던가? 이런 옛날 만담가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배세영 작가: “김원해 배우님과 장원영 배우님은 모든 것이 애드리브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맛을 재밌게 살렸다. 밀당을 의식하고 작업한 적은 없는데, 그러고 보니 두 인물이 대사나 상황을 서로 주고받는 콤비 플레이를 많이 사용한 것 같다. 예전에 썼던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도 이런 식으로 다양한 형제들의 콤비 플레이를 많이 사용했었다. 옛날 만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본다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Q.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시나리오도 썼다. 그 작품에서도 여주인공이 죽는다는 사실과 노래가 많이 쓰인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사장(이규회)와 백현진이 노래를 하는 것이 생뚱맞고, 낯설기도 하다. 이런 장면/설정을 넣은 이유나 과정이 궁금하다.
▶배세영 작가: “배사장은 엉뚱하고 단순한 삼식이를 상대하는 빌런이다. 오태수와 송회장같은 정형화된 빌런과는 다르게 조금은 엉뚱하고 재밌는 빌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거칠고 살벌한 깡패가 순수한 동요로 다가오는 모습이 재밌을 것 같았다. 기존에 많이 보았던 식상한 건달과는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Q. 필모를 보니 코미디나 코믹한 상황을 잘 푸는 작가인 것 같다. 본인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고,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이야기나 장르가 있는지.
▶배세영 작가: :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휴먼 코미디가 맞다. 하지만 코미디를 장르로 활용했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선택이 맞는 것 같다. 격하고 거칠게 표현하는 방법, 혹은 진지하고 슬프게 표현하는 방법? 모두 각자의 방식인데 저는 웃음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선호한다. 그것을 장점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이번 '나쁜 엄마'로 인해 로맨스나 스릴러, 느와르 등 제안을 받고 있지만 결국에는 로맨스가 있는 휴먼드라마나, 느와르가 있는 휴먼드라마를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Q.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 느낀 각 작업의 장단점이 있다면?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오리지널 극본과 각색의 차이는.
▶배세영 작가: “드라마 작업은 단순히 짧은 이야기를 분량적으로 길게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각각의 화에서 독립적인 기승전결이 필요했고, 전체 주제로 귀결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도 필요했다. 각 화간의 연계성과 연속성, 다음 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엔딩 포인트도 중요했다. 영화적 문법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긴 호흡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드라마의 문법이 굉장히 낯설고 어려웠다. 또한 개봉 후 단번에 전체적인 평가를 받는 영화와는 달리 매 화 달라지는 평가와 시청률, 대사 한 줄, 행동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실시간 톡' 시스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오리지널 각본은 일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하는 작업이다. 주제와 구성, 인물의 캐릭터와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다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각색이나 윤색 작업은 기존에 만들어진 이야기를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에 따라 작업량의 차이는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조금은 수월하다. 다만 각색의 경우는 작가입장에서 불리한 점이 많다. 대부분 각색이 되는 이야기는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해봤자 본전'을 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잘하면 '원작이 좋아서'라는 평가를 받고, 잘못하면 '원작을 망쳤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그래서 몸이 편한 건 각색이지만 마음이 편한 건 오리지널 각본인 것 같다.”
Q.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떤 식으로 기분 전환을 하는지.
▶배세영 작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그 속에서 많은 힌트를 얻게 된다. 제가 주로 쓰는 것이 휴먼드라마다 보니 결국 사람에게서 답을 찾게 되는 것 같다.”
Q. OTT영향으로 영화판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종사자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를 감지하는지.
▶배세영 작가: “OTT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OTT로 인해 많은 기회가 오는만큼 또 다른 매체에서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컨텐츠가 많이 필요하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이 무작정 빠르게 만들어져 쏟아져나오기도 한다. 앞으로는 정말 경쟁력있고 재미있는 컨텐츠만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어디서 나의 작품을 방영하게될 지보다는 어떤 좋은 작품을 써야 할지를 더 고민하며 차분히 시대를 견뎌나가겠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