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이 승승장구 중이다. 지난 22일 개봉되어 어제 250만 관객을 넘어섰다. 4번째 영화로 충무로 흥행감독 대열에 성큼 다가선 이해영 감독을 만나봤다. <독전>은 조진웅과 류준열이 극강의 케미를 자랑했고, 김성령-김주혁-차승원-박해준-진서연-이주영-김동영 등 화면에 보이는 모든 조연들이 하나같이 빛나는 연기를 펼치면서 2시간을 꽉 채웠다. 이해영 감독의 전작을 보자면 이번 작품은 거의 배신에 가까운 신세계였다. 감독도 그렇게 생각할까. 마지막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이해영 감독과 마주 앉았다. 이날은 ‘독대’ 자리였다. 테이블 위에 총은 없고, 녹음기 대용 휴대폰만 감독님의 발언을 조용히 레코딩한다. (▶영화 '독전' 리뷰 보기)
주말에 정신없이 무대인사를 다녔다고 전에 없던 흥행영화감독의 호사를 이야기한다. 바로 ‘라스트 씬’에 대한 질문 들어갔다. 다들 노르웨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곳이 노르웨이인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왜 그곳을 선택했나?
● 노르웨이에서 찍은 라스트 씬
“시나리오에는 그냥 ‘설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어떤 나라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든 미지의 설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군데를 헌팅 했는데 그 시기에 거대한 설원을 찍을 수 있고,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북유럽이었고, 노르웨이였을 뿐이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자막 올라갈 때 ‘노르웨이영상위원회’보다 ‘터키항공’이 먼저 나와 ‘터키’인줄 알았다고 하자 “터키항공 협찬으로 이스탄불까지 갔고, 다시 비행기 갈아타서 노르웨이 오슬로에 갔다. 차를 타고 몇 시간 북쪽으로 가면 베이토스톨런(Beitostølen,바이토스톨른)이란 곳이 있다. 스키장이 있는 휴양지다. 촬영한 곳은 그곳에서 차를 타고 산쪽으로 들어간 곳이다.”고 장소를 말한다. 구글맵과 사진을 찾아봤다.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북유럽 풍광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조진웅과 류준열이 마주했다. 극장에서 보는 장면 말고 더 찍은 장면이 있는지, 혹시 다른 결말 찍어둔 게 있는지. “엔딩? 아뇨. 아마 지금 영화관에 걸린 버전이 관객이 느끼기에 똑 떨어지는 엔딩이 아니라서 감독판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도 감독판 이야기 하시는데 지금 엔딩은 시나리오 초기단계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엔딩이다. 이런 엔딩으로 찍겠다고 배우들과 투자사, 제작사와 합의했었고, 시나리오 때부터 편집 완성 때까지 불변의 엔딩이었다. 그 엔딩이 원래 이 이야기의 목표점이었고, 감독으로서의 최선이었다. 지금 극장에서 보시는 게 감독판이라고 말씀 드리겠다.” (▶조진웅 인터뷰 보기)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 더 설명해 주었다. “제가 생각할 때 엔딩은 마지막에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총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아니라, 마지막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두 시간동안 열심히 달려온 캐릭터의 감정 등이 응축된 마침표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상업영화이다 보니, 상업영화의 엔딩에 대해 누군가는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할 것이다. 기우일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없는 시간 쪼개서 보험처럼 얼터 컷을 찍은 게 있긴 하다. 그런데 쓸 일이 있겠나?”란다.
혹시 모르죠, DVD셔플에 들어갈지라고 말하자. “그렇긴 한데, 요즘 누가 DVD를 살까.”란다.
류준열 배우가 인터뷰에서 그 장면 찍고 나가서 드론 날렸다는데. “준열 배우의 취미다. 염전 장면 찍을 때도 드론을 열심히 날리더라. 드론 촬영기사님도 인정하시는 실력이다. ‘독전’ 제작기영상 자세히 보면 준열 배우가 찍은 장면도 있다.”면서 “노르웨이 장면을 포함해서 많은 장면이 드론을 이용해서 찍었다. 요즘 헬기로 항공촬영은 안한다. 독립영화에서도 드론샷이 많이 나온다더라.”란다. (▶류준열 인터뷰 보기)
● 두기봉과 나
원작이 된 홍콩영화에 대해 물어봤다. <독전>은 2013년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개봉된 두기봉(조니 토) 감독의 <마약전쟁, 毒戰>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毒戰’은 중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홍콩 거대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마약반 손홍뢰와 그의 팀원의 활약이 펼쳐진다. 홍콩의 마약 중간책은 고천락이 열연을 펼친다. 영화는 두기봉 스타일로 꽉 채운다. 마약팀원들의 끈끈함, 두기봉사단 배우들이 펼치는 카리스마와 이른바 ‘후카시(품재기)’, 비장미 등이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킨다.
이해영 감독은 “두기봉 감독님 존경한다. 그 영화는 오래 전에 봤었다. 엔딩이 놀랍다. 백주대낮에 도심에서 벌어지는 총격적은 놀랍다. 인간들이 바닥에서 피떡이 되어 개싸움하는 듯한 끝을 보여준다. 처절함의 끝을 보여주는 힘이 있다”며, “일반적인 권선징악 스타일이면서도 그렇게 쫓는 형사도 마지막에 죽잖아요. 두기봉 감독은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놀랍다.”
● 배우들이 고맙다
김동영-이주영 배우가 펼친 농아남매 연기에 대해. “농아인과 수화에 대해 스터디를 했고, 센터의 협조를 받아 많은 조언을 들었다. 워낙 친한 식구끼리의 만남이라, 아주 가까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수화엔 그런 욕설이 없더라. 그래도 만국공통의 손가락 욕은 있더다. 락과 그들이 통하는, 만국공통의 범위에서 느낄 수 있는 표현이었던 같다. 농아인들은 수화를 할 때 손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중요하게 여기더라. 그래서 배우들이 많은 연습을 했다”고 보탰다.
진하림의 식탁에 혐오식품(눈알칵테일)이 오른다. “중화권에 있는 많은 음식들 중 하나를 생각했다. 영화 속 장르 컨벤션이다. 어렸을 적 충격적으로 본 ‘인디애너 존스’에 등장했던 원숭이골 요리처럼”이라며, 그 장면을 넣은 이유에 대해서는 “하림(김주혁)이 원호(조진웅) 앞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 태도는 일차원적으로 유치하고, 폭력적인데 유아적이다. 그런 복합적인 성격을 나타내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제작비 규모가 꽤 크다. “그렇다. 여태 내가 만든 모든 영화를 다 합친 것보다 크다. 예산이 올라간다고 감독이 더 여유롭게 작업한다는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버젯이 커질수록 훨씬 더 빠듯하게, 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그래서 준비를 더 많이 했다. 시나리오 작업 때도 최대한 경제적으로 찍을 수 있도록 씬을 많이 줄였고, 콘티 작업하면서도 더 줄였다. 씬 다이어트를 많이 했다.”
어떤 식으로? “배우들은 감독이 디테일했다고 말하지만 하루에 소화해야할 컷이 많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액션 장면과 특수효과 씬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때문에 연기가 필요한 드라마 씬에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갈 수 없었다. 정확히 어떤 신은 어떤 캐릭터가 어떤 감정까지 잠기면 된다. 이렇게 목표지점을 사전에 명확하게 정해 놓고. 배우들에게 그만큼만 연기하도록 해서 속도를 냈다.”
감독님의 전작을 생각했을 때 이 영화를 맡긴 것은 조금 의외 아닌지. 왜 맡겼을까요?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제가 그동안 명확한 장르영화를 만든 적은 없지만, 제 딴에는 작품 속에서 어떤 특정 장르를 향해 가려는, 특정 장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제작자(임승용 대표)가 장르를 의식하고, 지향하려는 그 태도를 보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독전>은 스타일이나 미장센이 조금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전>은 그게 중요했다. 캐릭터를 잘 만들어 내야하고, 캐릭터의 관계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임대표가 처음 제안했을 때 ‘당신이 적역이야’라는 느낌보다는, ‘함께 도전해 봅시다’ 이런 느낌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이해영 감독에게 자신의 이번 신작과 오리지널인 홍콩 두기봉 감독의 <毒戰>(마약전쟁)과 비교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어찌 감히. 보신 분들이 판단할 것이다”며, “제가 생각할 때는 두기봉 감독님은 하드보일드의 끝판왕, 드라이한 감성의 끝판왕이다. 질척대거나 어떤 순간에도 한 방울도 촉촉해지지 않는 그런 작품을 만든다. 특히 <毒戰>(마약전쟁)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저는 일단 인간형 자체가 두기봉 감독님에 비하면 훨씬 감정적이다. 그런 면이 좀 더 있는 사람이니까. 습도의 차이 아닐까요. 감성의 습도의 차이. 그쪽이 훨씬 메마른 느낌이라면 저는 습도가 높아 감정이 조금 올라와 있는 차이가 아닐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배우들이 열연에 감탄한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해 봤다. 제일 아쉬웠던 연기는? “아하~. 모든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연기를 했다. 열연을 부탁드리기도 했지만 다들 그 이상으로 해 주셨다. 조진웅과 류준열 빼고는 나머지 배우들은 챕터별로 담당하시기에 등장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저에게 요만큼만의 시간과 제작비만 더 주어졌다면, 그들을 위한 한 시퀀스, 한 씬이라도 더 찍고, 설정을 더 늘려서라도 그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그렇게 따지자면 제일 아쉬운 것은 김성령 선배님이다. 너무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잘 해 주셨는데. 내가 분량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짧았다. 다음 작품에서는 오래오래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다. 김성령 선배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 KBS 1TV의 <역사저널 그날>에서 오랫동안 패널로 출연했었다. 그래서, 혹시 끌리는 소재나 인물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 감독은 “거의 모든 역사의 순간이 드라마틱하다. 모든 것이 영화적으로 느껴졌다. 조선시대는 어쨌든 기록들이 디테일하니,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려시대를 다루면 어떨까. 매력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떠오른 특정 인물, 사건은 없다. 그 프로그램 촬영할 때 워낙 벼락치기로 공부였다. 벼락치기 공부하면 금방 까먹잖아요”
예의 없게도 전작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리뷰 보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아이..” 하더니 “예산이 너무너무 적어 힘들게 찍었었다.”며 “지금은 ‘독전’이다. ‘독전’은 어쨌든 본격적으로 장르영화 찍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내겐 ‘독전’이 장르영화 데뷔작이다. ‘장르영화’ 작게 쓰고, ‘데뷔작’ 크게.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독전’ 열심히 찍었다. 사람들이 동명이인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비겁한가? 하하”
어쨌든 독전은 이해영 감독이 독하게 찍은 회심의 장르영화임에 분명하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