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2시간 27분의 장대한 미스터리로 재해석하며 한국 청춘의 불안과 분노를 투영했다. 원작이 모호한 관계와 행방불명을 다룬 짧은 이야기라면, <버닝>은 여기에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적 정서와 계급적 갈등을 덧입힌다.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는 변변한 일자리도, 온전한 가정도 없는 위축된 청춘의 초상을 발군으로 그려낸다. 그가 마주하는 벤(스티븐 연)은 포르쉐를 몰며 '메타포'를 논하는 정체불명의 개츠비 같은 존재로, 종수에게 넘볼 수 없는 좌절감을 안긴다.
영화 속 해미(전종서)는 종수의 유년기 기억이자 유일한 위안이지만, 벤의 세계에서는 파티의 애피타이저 같은 소모적 존재에 불과하다. 벤이 취미처럼 즐기는 '헛간 태우기'는 가진 자의 유희 혹은 무의미한 파괴의 은유로 작동하며 종수를 미스터리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종수는 사라진 해미를 추적하며 벤의 친절한 무관심 뒤에 숨은 거대한 공허와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포르쉐 앞에 주눅 든 청춘의 그림자는 성적인 의기소침함을 넘어 제어할 수 없는 분노로 치닫는다.
이창동 감독은 맥거핀일지도 모를 해미의 행방을 쫓는 종수의 시선을 통해 현실감 없는 옥탑방 청춘들의 서글픈 현실을 포착한다. 벤 같은 인물과 결코 어우러질 수 없었던 종수가 도달한 결말은, 보잘것없는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하품하는 벤과 그를 뒤쫓는 종수의 무게감이 대비되는 이 영화는, 청춘의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미스터리이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향한 슬픈 응시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