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한국 드라마가 사이즈가 커지면서 ‘PPL’이 주목받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브랜드에는 괜히 으쓱하지만, TV에서는 주인공이 손에 든, 입에 대는, 배경에 등장하는 상품 하나하나가 거슬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작지원을 ‘환경부’가 했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보면서 감탄한다. 꽤나 효과적으로 환경부의 존재가치를 빛나게 한 것 같다. 이 영화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을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봉수아(정수지)가 자전거를 타고 바께트(빵)을 사서는 자신의 가게로 출근한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프랑스식 샌드위치가게 ‘봉아망제’의 주이이다. 이곳에 진우가 알바생으로 온다. 이 작은 가게에서 만들어지는 빵과 커피의 맛은 어떨까. 손님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들은 모두 주인의 잠봉뵈르(Jambon-beurre) 샌드위치 맛에 반한다. “'잠봉'은 프랑스말로 치즈이고 '뵈르'는 버터에요. 잠봉 뵈르~” 주인은 자신이 어떻게 이 프랑스 빵에 매료되었는지, 어쩌다가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작은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는지 말한다. 손님들은 잠봉뵈르의 맛에 반하고,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공감하고,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잠봉 뵈르는 맛있을까. 손님들은 딱딱한 바게트에 치즈와 버터, 양상추 등을 맛있게 채워놓은 이 샌드위치를 입천장이 까지는 줄도 모르고 먹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에 익숙해진다.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영화 중간에 수아와 우진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조어 이야기를 나누다 ‘아텀테’라는 말을 한다.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테이크아웃으로 담아주세요”라는 뜻이란다. “앗! 환경부!” 그리고 중간에 ‘샌드위치’를 네 개를 주문해서는 비닐 봉지 대신 ‘에코백’에 담는다. “앗! 환경부!” 아마,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맛있는 잠봉 뵈르 샌드위치를 먹어봐야지 하고 검색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따라하려면 꼭 ‘아텀테!’도 해보시길. 참, 의미 있는 독립영화관 선정 작품이다.
곽민승 감독은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단편 <럭키볼>을 감독했었다. ‘홈런 야구공’ 하나를 두고 풋풋한 여고생의 설레는 순간을 잔잔하게, 감성적으로 캐치한 작품이었다.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은 웹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을 감독이 재편집, 보강한 ‘감독판’ 영화이다. 가게 주인역의 정수지와 알바생 김우겸의 연기 케미가 꽤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조연들도 하나같이 눈이 간다. ‘핫소스남’을 연기한 나철 배우는 올 1월, 36살의 젊은 나이도 영면한 배우이다.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감독:곽민승 ▶출연: 정수지, 김우겸, 나철, 남유진, 김진이▶제작지원:환경부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인터뷰] 곽민승 감독,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 감독판 >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의 연출 계기는?
A. 이 작품을 구상하기 전에 몇 개월간의 힘겨운 시기가 있었다. 당시 식사로 샌드위치를 즐겨 먹곤 했다. 어떤 샌드위치를 먹을지 고르고 먹고 맛을 음미하는 그 시간만큼은 잠시나마 고민을 잊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하던 중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이런 작품을 만들면 만드는 내가 먼저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이 출발하게 되었다.
Q. 7가지의 에피소드가 엮인 영화이다. 어떻게 에피소드를 구성했는지.
A. 다양한 속 재료가 한데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듯 영화 속 수아의 가게 ‘봉아망제’를 찾는 저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손님들의 에피소드들을 묶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에피소드마다 개성이 각기 다른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주인공 봉수아의 생각과 감정을 담고자 했다.
Q.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A. 바게트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다 보면 어느새 입천장이 까지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바게트의 까끌까끌한 겉면이 입천장과 마찰이 일어나 상처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먹게 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재에 집중하느라 아픔은 잠시 잊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도 맞닿았다.
Q. ‘감독판’으로 독립영화관으로 선보이게 되었는데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A. 원래 기획의도에 웹드라마와 영화 버전 두 가지를 만들고자 했다. 물론 결국 먼저 공개가 되는 웹드라마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되었다. 실제로 영화버젼이 제가 생각한 그림과 가까운 결과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간다.
웹드라마와 영화버젼이 크게 다른 것은 후반작업이다. 웹드라마 작업을 끝낸 후에 영화버전은 처음부터 영화 형태에 걸 맞는 좀 더 섬세한 후반작업을 했다. 웹드라마는 보통 손쉽고 간편히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기에 빠른 속도감의 편집이 필요했지만, 영화 버전편집을 하면서 그렇게 잘려나간 부분을 살려내고 다듬었다. 웹드라마에서 설명적이었던 내레이션도 영화에선 상당 부분 제거했고, 일곱 개의 에피소드의 순서도 조금 다르다. 음악도 대부분 달라졌다. <말아>의 정준영 음악감독이 오리지널 스코어로 곡을 만들었다. 음악이 달라지니 색채가 많이 바뀌었다.
Q. 완벽하진 않아도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지’와 바른 청년으로 보이는 ‘진우’. 두 사람의 캐릭터 합이 좋은 것 같다.
A. 정수지 배우가 맡은 ‘봉수아’라는 인물은 고된 회사생활을 하면서 전전긍긍 살아오다 결국 서른이 넘어 집안에 그 사실을 숨기면서 까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감행하게 되는 인물이다. ‘하지 말라는 건 언제나 하고 싶어지는 걸, 미안해요 이제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다른 건 재미있는 게 뭐하나 없었는 걸’하는 조원선 님의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노래 가사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전부터 종종 가던 두 곳의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는데 모두 여자 사장님이 운영을 하셨고 그분들의 면모를 참고하기도 했다.
김우겸 배우가 맡은 ‘진우’는 수년간 아르바이트 생활만 하며 살아온 평범한 청년이다. 제가 알고 지내던 주변의 그 나이 또래의 친구들을 참고 하기도 했다. 진우는 조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면도 있는데 그간 쉽지 않은 사회생활을 해오며 생겨난 방어적인 태도일거라 생각한다. 그런 ‘진우’는 개방적인 태도의 수아를 만나며 조금씩 변하게 된다. 정수지, 김우겸 두 배우 모두 전부터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를 익히 봐왔고, 언젠가 한번 같이 작업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두 배우에게 직접 연락하여 배역 제안을 하였고,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수락을 해주었다.
Q. 현실에 있을 법한 진상손님, 핫소스남, 노과장 등 캐릭터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A. ‘핫소스남’은 작품 준비 중에 스태프와 같이 간 베트남 식당에서 연출팀원이 구멍이 막힌 줄 모르고 핫소스 통을 힘껏 쥐어짜다 실제로 핫소스가 사방팔방으로 터진 적이 있었는데, 만약 그 자리가 말단 사원이 직장 상사 함께한 자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핫소스남을 만들게 되었다. 핫소스남을 연기한 ‘나철’ 배우는 철부지 같으면서 어느새 정이 가는 인물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특히 단편 <타이레놀>에서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믹한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 내내 나철 배우의 재치와 유머와 순발력에 많이 놀랐다. 진상손님 역의 임호준 배우는 단편 <맥북이면 다 되지요>에서 퉁명스럽고 뻔뻔한 인물을 보여주었는데 꽤 코믹하다는 인상이 남았었다. 그 이후 다시금 그분의 그런 연기를 보고 싶었다. 노유진 과장역의 김진이 배우는 제가 좋아했던 90년대 청소년 드라마 스타이다. 이미 아역 배우 때부터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단편 <은서>에서 그분의 연기를 오랜만에 접하고는 새침한 직장상사 역할에 잘 어울릴 거라 생각을 했다.
Q. 故나철 배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나철 배우와 한 작품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배우로서 그간 너무 수고 많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평온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내길 간절히 바랍니다. 보고 싶습니다.
Q. <밝은 미래><럭키볼>에는 음악을 소재로, <말아><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은 음식을 소재로 한다.
A. 음악은 어릴 적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전공을 했었다. 음식은 평소에 직접 만들기도 좋아하고, 만들어 대접 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음악은 제게 영감의 원천이고 친한 친구이자 동료 같은 존재이다. 저는 삶이 행복보다 고통과 고난이 훨씬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삶에 있어 음악과 음식은 우리의 삶에 비교적 단시간에 행복감을 가져다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Q. 차기작은?
A.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일을 번갈아 가며 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작은 천천히 준비 중이다. 제 영화는 <말아>까지 줄곧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이었지만 지금 구상 중인 영화는 남자캐릭터가 중심이다. 열심히 만들어 언젠가 독립영화관 시청자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이 영화를 시청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시다 머릿속에 샌드위치 생각에 군침을 삼키셨다면 내일 점심은 가까운 샌드위치 가게에서 잠봉베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