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라면 슬픈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고아부터 시작하여 한국문화 특유(?)의 미혼모의 아기까지. 그렇게 해외로 입양되어 모국을 떠나야했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그리고 ‘외국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많이 보아왔다. TV에서, 영화로, 다큐멘터리로.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한국은 그들의 모국이지만, 그들의 나라일까? 여기에 또 한 편의 ‘입양아 이야기’가 극장에 내걸린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외국인 감독의 시선이다. 캄보디아계 프랑스 영화감독 데이비 추의 <리턴 투 서울>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5월 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다시 서울을 찾은 데이비 추 감독을 만나,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 입양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갓난 아기 때 프랑스로 입양된 ‘프레디’는 원래 2주의 휴가 동안 일본을 갈 생각이었지만 태풍으로 서울에 오게 된다. 한국에 온 김에 하몬드라는 기관을 통해 자신의 부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마지못해 생부(生父)와 재회의 자리를 갖게 된다. 프레디는 혼란을 겪는다. 소주도 마시고, 한국사람도 만난다. 그런다고 한국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에 프랑스로 이민간 박지민이 ‘프레디’를 연기한다.
헤어스타일만큼 유독 작은 안경알이 눈에 띄는 데이비 추 감독은 엄청난 달변가, 수다쟁이이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도, 넘치도록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의 입양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들고 한국을 찾은 감독에게 궁금한 장면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역시 넘치도록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담아 답변을 쏟아냈다.
Q. 프레디가 군산에 내려가서 친부(親父)를 만나 다 같이 모여앉아 밥을 먹는 장면부터 이야기해 보자. 가족들은 기쁘겠지만 프레디는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굉장히 어색한 자리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있는가.
▶데이비 추 감독: “그 장면은 어쩌면 한국답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식사 자리는 두 번 나온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식당 장면에서는 고모(김선영)가 프레디에게 ‘이것도 먹어봐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처음 군산 신에서는 그런 게 없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긴장했을 것이고, 침묵이 지배할 것이다.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담으려고 했다. 첫 식사 자리에서 할머니(허진)가 삼계탕을 잘라주는 모습이 있는데 전형적인 한국인의 식사 자리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만 프레디에게는 놀랍고 생소한 장면일 것이다. 자기 공간으로의 침입인 셈이다.”
Q. 그러고보면, 클럽에서 처음 만난 젊은 남자들이랑 술 마시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보통 외국인과의 첫 술자리에서는 ‘한국의 주도’라면서 자작(自酌)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데 프레디는 보란 듯이 자기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감독이 한국의 음주문화를 전복시키는 듯하다.
▶데이비 추 감독: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레디라는 인물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많이 한다. 그의 까칠한 면이 잘 드러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술을 마실 때 옆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하는데 원래 프레디는 주변에서 뭔가를 강요하면 그에 따르지 않는다. 주도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다.”
“그 장면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프레디의 내면을 볼 필요가 있다. 프레디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버려졌고, 프랑스에서 자라 생전 처음 한국에 온 것이다. 일반적인 관광을 온 사람이 아니다. 한국의 남자가 친절하게 소주 마시는 법을 가르쳐줄 경우, 일반 관광객이라면 그에 따르겠지만 프레디 입장은 그렇지 않다. 예기치 않게 모국에 왔고, 연약함, 불안감, 혼란스러움이 있다. 그 나라에 대한 적대감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이지만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 그 무지에 대한 시위일 수도 있다. ‘나는 왜 아는 게 없지?’ 이런 모든 복합적이 감정이 섞여서 그런 것조차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남의 친절함을 무의식적으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술 따르는 한국인 남자에게 복잡한 감정을 내보인 것이다.”
Q. 당연히,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를 하는 영화이다. 그러니 통역의 존재가 특별하다. 테나라는 인물과 김선영이 ‘프레디’를 위한 통역을 한다. 통역을 통해서 ‘프레디’의 심사가 적절하게 전해진다. 어떤 경우는 통역가가 톤다운 하여 말을 전달하기도 한다.
▶데이비 추 감독: “그렇다. 이 영화는 문화의 차이, 언어의 차이와 함께 복잡한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표현한다. 그런 설정이 필요했고, 분명한 의도를 갖고 찍었다. (통역 역할을 한) 두 인물을 통해 통역하는 분들의 고충에 감사드리고 싶다. 통역이란 것은 말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만 아니라 감정적인 표현까지 해주어야한다. 그들은 문화적인 역할을 하면서, 감정적인 가교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테나의 경우, 정확하게 표현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프레디가 (아버지에 대해) 공격적이어서 그런 식으로 고민하다가 자기 판단 하에 좋은 의도에서 말을 순화시키며 전달한다.”
“고모인 김선영은 극중에서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내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유일하게 프레디의 프랑스 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디 사느냐? 형제자매는 있느냐’고 물어본다. 다른 가족과는 달리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아마, 고모는 프레디가 입양될 때 어리기도 했고, 자기의 딸도 아니니 죄책감도 덜 받는지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프레디의 고통은 입양에서 시작된 것이고, 고모가 유일하게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Q. 한국의 노래도 사용되었다. 노래 이야기는 많이 했을 테니, 춤과 관련된 궁금증. 프레디가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플로어에서 혼자 흐느적거리며 춤을 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클럽 풍경은 없이 카메라는 프레디만 열심히 쫓는 것 같다.
▶데이비 추 감독: “바로 그 장면 직전에 프레디는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날아오고, (통역을 하는) 테나는 아버지 편만 들고, 이제 겨우 두 번째 보는 한국남자는 ‘같이 살자’고 그런다. 주변의 압력들이 싫어서, 디제이에게 가서는 음악을 바꿔달라고 한다. 물론, 순간에 지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기 마음대로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이 자기 삶을 산다는 은유적 의미도 있다. 프레디의 춤이 바로 프레디의 삶이다. 그만의 것이 되는 시간이다. 음악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혼자 소주 따라 마시는 것처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거부하고. 본인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다. 프레디의 의지가 확실하다.”
“그리고 춤 장면을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 곱창전골이 있는 LP바가 춤추는 공간이다. 프레디가 춤을 출 때 카메라가 따라 움직일 수 있게 장치를 설치했다. 배우가 춤추고, 촬영감독이 따라 다니고, 나는 한쪽에서 모니터로 본다. 영화이론에 따라 설명하자면, 프레디라는 인물은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인물을 프레임 안에 넣어야한다. 카메라 안에 집어넣은 것은 마치 고양이와 쥐가 장난치는 것 같다. 배우가 도망가듯이 움직이면 카메라가 열심히 따라잡는다. 배우는 멋대로 춤을 추고, 나는 그 장면을 캐치하는 것이다.”
Q. ‘춤’ 하니까 하나 더. 군산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두 딸(프레디의 배다른 동생)이 춤추는 것 좋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찍어놓은 영상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상은 안 보여준다. 찍었는데 편집에서 뺀 것인가? (무슨 춤을 추게 할지 궁금했다. K팝?)
▶데이비 추 감독: “시나리오 작업에서 수정을 여러 번 했다. 초반 시나리오에는 어린 동생이 승마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변경이 있었다. 찍어둔 영상 있는지 물어보니 ‘태권도영상’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걸 보여주는 것은 클리세처럼 보였다. 그래서 뺐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디테일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남긴 채 지나가고 싶었다.”
Q. 아까 통역관련, 혹은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제목이 ‘Lost in Translation’이 어울릴 것 같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바뀌었다. <리턴 투 서울>의 영어제목이 ‘Return to Seoul’인데, ‘All the People I’ll Never Be‘라는 제목도 있다. 그게 더 철학적인 느낌이 든다.
▶데이비 추 감독: “제목은 관객들이 쉽게 기억해야할 것이다. 칸 영화제에 처음 갔을 때 효과적인 제목으로 바뀐 것이다. 나도 ‘Lost in Translation’이 제 영화에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Q.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프랑스와 한국에서 정체성을 찾는 프레디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독님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본인은 프랑스와 캄보디아 두 나라 중 어디에 더 연대감을 느끼는지.
▶데이비 추 감독: “무례한 질문은 아니다. 그런데 대답하기가 어렵긴 하다. 나는 올해 마흔 살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레디’처럼 스물다섯 살 때 처음 캄보디아에 갔었다. 여행으로. 그때는 내가 젊었을 때다. 그때 누가 물으면 당연히 ‘난,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교육받았고, 사고방식이 프랑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래도, 피가 캄보디아인데..’라거나 ‘반 정도는?’이라고 할 때도 자신 있게 ‘프랑스’라고 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하고, 다시 프랑스 돌아와서, 캄보디아 여자 친구 사귀고, 다시 캄보디아에 가서 회사 차리고 그런 삶을 살았다. 반은 프랑스에서, 반은 캄보디아에서.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여전히 프랑스사람인 듯한데 캄보디아가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이제는 그렇다.”
Q. <리턴 투 서울>의 프레디는 어떻게 될까.
▶데이비 추 감독: “마지막 장면에서 프레디가 있는 곳은 이도 저도 아닌, 루마니아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이다. 그 대답을 회피하면서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데이브 추 감독은 캄보디아에 제작사를 두고 영화를 찍고 있다. 이 영화는 작년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영화상 부문에서 캄보디아 후보작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엔 짧게나마 캄보디아 영화이야기를 나눴다.
Q.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캄보디아와 영화라면 오래 전 <킬링 필드>와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안젤리나 졸리의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원제:First, They Killed My Father)밖에 모른다. 감독은 어떻게 한국의 해외입양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영화로 만들었는지. (감독은 놀랍게도 한국의 해외입양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데이비 추 감독: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역사가 오래 되었더라.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전쟁고아가 아주 많이 생겼다. 그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미국에 알려졌을 때 미국의 한 부부가 ‘우리가 입양해서 키우자’며 한국을 찾는다. 8명을 입양하려고 했는데 당시 8명이나 입양하는 절차나 규정이 없었다고 한다.그래서 그 부부가 복지재단을 만들고 한국과 미국 정부를 움직여 본격적인 해외입양이 이뤄지기 시작했단다.” ('홀트아동복지회' 이야기를 외국영화감독에게서 듣다니 놀라웠다!)
“캄보디아나 베트남의 경우는 정치적인 박해 등의 이유로 해외에 입양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도 대부분 가족단위의 이동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전쟁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미혼모에 대한 시회적 시선 등이 겹쳐 그런 대규모 해외입양이라는 현상이 생긴 것 같다.”고.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의 숫자는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데이브 추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중국계’인지 물어보았다. 그렇단다. 중국 이름은 있는지?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중국이름이 있었다. 난 없다. 대신, 난 캄보디아 이름이 있다.”
영화 <리턴 투 서울>은 5월 3일 개봉한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