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이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렸다. 지난 달 개봉한 이 영화는 어제까지 498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5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신카이 마코토(新海誠·50) 감독이 다시 한 번 한국을 방문, 한국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어제 한국 관객과의 만남 행사에 앞서 시간을 쪼개어 한국 취재진과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CGV용산아이파크몰이 보이는 노보텔 스위트 앰배서더 용산에서 진행된 인터뷰이다.
Q. 곧 500만 관객이 스즈메를 본다. 한국에서 개봉된 일본 영화 중 최고흥행기록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렇게 많은 관객이 보신다니, 신기하고도 감사하다. 이렇게 많은 기자분들이 와주신 것도 감격스럽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에 맞물어 <스즈메>가 개봉되어 이런 인기를 얻는 것 같다.”
Q.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어쩌면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해를 입고, 그 상처를 회복해 나간다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한국관객은 다정하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비하면 제 작품은 불완전하다. 인물도, 완성도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족한 작품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일본의 재난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고 생각한 이유가 있는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제가 처음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옛날이야기 같은 애니메이션, 신화 같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애니메이션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통해 다음 세대에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다. 이제는 애니메이션이든 다른 미디어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옛날이야기 같은 감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어난 재해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12년이 지났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기 위해선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4~5년이 지난 뒤라면?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Q.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편적 정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미국이나 서구 쪽 반응은 어떤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 “미국과 유럽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저의 전작보다는 훨씬 많은 관객이 들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만큼은 큰 히트는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손으로 그리는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은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인기이다. 이것은 닌텐도 게임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미국에서는 (스즈메와 비교하면) 단위가 다른 히트를 치고 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스즈메>가 <슈퍼마리오>보다 더 위에 있다. 한국에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막 개봉했다고 하니 그 결과가 궁금하다.”
Q. 일본에서의 애니메이션 현황은 어떤지. 하향추세인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임을 우선 밝힌다. 일본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리막이 아니라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알리는데 제 작품의 영향은 미미하다고 본다. <스즈메>는 미미히다. <주간점프> 같은 만화잡지의 원작이 널리 퍼지고,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만화잡지를 만드는 회사가 있고,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영화사가 있다. 그것을 배급하는 회사도 있고. 한국에 소개하는 미디어캐슬 같은 해외 배급망도 잘 되어있다. 그런 회사들이 이런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지난 10년, 15년 노력해 왔다. 해외에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지금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코로나가 종식되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좋은 뉴스만 있는 건 아니다. 손으로 일일이 그리는 것이다 보니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개선되어야할 것이고, 업데이트해야할 것이다. 그런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상황이 오고 있는 것 같다.”
Q. 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재난을 소재로 했다. 피해자에겐 트라우마를 남길 상황일 수 도 있다. 작품을 만들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많은 생각을 했었다. 12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분들이 있다. 아직도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중인 사람이 수천 명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직접적인 묘사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쓰나미나 대지진 장면은 직접 그리지 않겠다고 정해놓았다. 그리고 그런 재난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재회하는 이야기는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스즈메 엄마도 그렇다. (스즈메와 엄마가 다시) 만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재회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다.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 그리고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일본 극장에서는 주의사항이 쓰여 있다. 극중에 지진경보가 울리고, 지진에 대해 묘사한다고 알렸다.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이 모르고, 우연히라도 보게 될 경우 상처 입으실 수 있으니 미리 주의를 준다. 극장에서도, 인터넷으로도 말이다.”
Q. 영화에 등장하는 지역은 실제 일본에서 재난이 일어난 곳이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에 등장하는 마을이 영화팬에게는 명소가 되기도 했는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일단 이 영화는 스즈메가 일본 전국을 여행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동쪽에서 일어났지만 일본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그 곳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일본 도후쿠(東北)지방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오고, 원자력발전소가 멜트다운 되자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갔고, 저 멀리 규슈까지 간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저 끝, 규슈에서 도호쿠까지 가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스즈메가 들리는 경로는 과거에 일본에서 큰 재난이 내린 곳이다. 큰 비가 내려 홍수 재해를 겪은 곳도 있다. 고베에서는 대지진이 있었다. 도쿄도 1923년 거대한 지진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큰 재해를 입은 동네에 스즈메가 들른다. 스즈메가 처음 등장하는 마을은 가공의 곳이다. 실제 있는 곳과 섞어서 만든 곳이 많다. 제 영화가 개봉되면 영화팬들이 영화배경이 된 곳을 찾아 ‘성지순례’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게 되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실제 사는 주민에게는 민폐가 되기도 한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갑자기 관광객이 몰리며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았다. 그걸 피하고자 스즈메 마을은 가공으로 만들었다. 규슈의 한 마을로.”
Q. 최근 ‘3부작’에서는 여고생이 세상을 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말씀하신대로 제 제작에는 여고생이 많이 나온다.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다. 제가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그리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 기본적으로 젊은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10대 시절은 학교도 아니고, 집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다른 무언가를 추구한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만화, 소설 등 픽션이 또 다른 장소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로 젊은 주인공을 그린다. 그런데 앞으로 제가 그리는 작품은 다를 수도 있다. 성인, 아저씨, 아줌마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다시 10대가 될 수 있다. 고민을 하고 있다. 대부분 작가를 비판할 때, 작가 본인이 성숙해가면서 작품이 성숙한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다른 영화 (언급하신 마블 히어로처럼) 중년의 주인공은 이미 많기에, 이렇게 젊은 주인공을 그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쩔지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서울로 올 때 대한항공을 타고 왔다. 기내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안내사항을 보여주는데, K팝 주인공들이 안내하더라. ‘이 비행기엔 젊은 애들밖에 없나?’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제가 젊은 나이가 아니기에 불편하더라. ‘나 같은 아저씨가 타도 되나?’ 물론 저도 케이팝 즐긴다. 한국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힘을 쏟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도, 일본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안고 있는 과제인 듯하다.”
Q. 감독님 작품에서는 불완전한 서사가 지적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일단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반성할 점은 많다. 전작들도 그렇다. 설명이 부족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 듣지 않기 위해 매번 반성하는데 영화를 완성하고 보면 그렇다. 두 시간 남짓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설명을 넣는 게 옳은지 고민을 많이 한다. 다 하게 된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이 알아서 생각하도록 여지를 남기는 게 좋다고 본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이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소타의 아파트에서 오래된 책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일본 고어로 쓰인 책이다. 그 정도 책을 읽고, 해독할 정도라면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개선하려고 한다.”
Q.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소리, 음향부문도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를 만들면서 스토리보드 단계에서도 음성을 넣어보았다. 저는 영화라는 것은 두 시간 분량의 긴 곡이라고 생각한다. 한 영화에서 템포가 빠른 부분도 있고 천천히 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두 시간에 이르는 긴 노래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일단 대사를 녹음해서 넣고, 리듬에 맞춰 그림을 넣는 작업을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소리에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건 다른 작품들도 하는 방식이다. 스토리보드에서 소리와 리듬을 넣는 것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 아직까지 관객분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 극장에서 무대인사하면서 한국 관객들을 재회하게 된다면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듣고 싶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자기나라 말도 아닌, 외국 애니메이션을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말로) 감사드립니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