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수많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며 ‘인생드라마’로 손꼽는 tvN <나의 아저씨>가 방송될 때 이원석 감독은 배우 이선균에 매료되었단다. 특이하게도 드라마보다는 이선균이 등장하는 ‘이가탄 CF’에. 믿거나 말거나 이선균은 그렇게 영화 <킬링 로맨스>에 출연한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은 이선균-이하늬로 또 한 편의 매니아 코미디, 혹은 컬트를 완성시킨다. 이선균은 돈 많은 악당 ‘조나단’을 연기한다. 지난 14일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이다.
Q. 출연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했는지.
▶이선균: “시나리오를 받고 궁금했다. 나한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칭이 되지 않았다. 이런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없다가 아니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가기 전에 감독님 잠깐 만났다. 출연 결정이 안 된 상태에서 미국에서 이하늬 배우를 우연히 만났다. 출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는데 서로 ‘진짜 할거야?” 그랬다.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원석 감독이랑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너무 빨리 친해졌다. 두 달 정도 캐릭터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시너지가 생길 것 같았다.“
Q. 헤어 스타일 등 분장과 의상 등은 수월하게 소화했는지.
▶이선균: “일단은 ’현타‘가 많이 왔다. 의상, 분장에 대해서는 캐릭터 차원에서 논의를 많이 했다. 머리는 일부러 촬영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가발을 쓰면 티가 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조나단 캐릭터가 의상과 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워낙 막 가는 캐릭터여서 오히려 자유로웠다. 서사는 공명과 이하늬가 잘 이끌고 가니까 맡겨보자는 생각이었다.”
Q. 감독님이 왜 조나단 역에 이선균 배우를 캐스팅했을까요. <나의 아저씨> 방송 중에 나오는 이가탄 광고를 보고 이선균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선균: “감독님 만나서 물어봤었다. 캐릭터가 분명한 배우라면, 예를 들어 마동석 배우가 <시동>에서 보여준 캐릭터처럼. 제가 하게 되면 배우로서는 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았다.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 딥하고 어두운 캐릭터이다. 그런 박동훈이 연기하면서 잇몸을 다 드러내는 것이 괜찮을까. 그런데 감독님은 그런 게 신선했다. 엉뚱하시니까. 보통 전작에서 접점을 찾는데 <킬링 로맨스>에서는 <기생충>에서의 접점 같은 게 없다.”
Q. 극중에서 갑자기 H.O.T.의 노래 <<행복>>을 부른다.
▶이선균: “그렇게 노래하는 것은 재밌었다. ‘행복’이란 노래를 왜 부르는지 물어보았다. 감독님이 어릴 때 유학을 갔었는데 그 당시 많이 들었던 유행곡이었단다. 위안을 얻었다더라. 저 나름대로 컨셉을 잡았던 것은 조나단이 이민 가서 그 노래를 부르며 정말 위로를 많이 받고, 힐링도 되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일단 관종이고, 튀는 것 좋아하고, 방어막처럼 행동하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다. 아니러니 하게 ‘행복’이란 단어가 좋은 말 같지만 누군가를 억압하는 단어가 되었다. ‘행복하세요!’가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Q. 영화를 찍을 때 불편한 지점은 없었나. 조나단은 아내에게 무척 폭력적이다.
▶이선균: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리얼한 폭력물이 아니니까. 만화같이 생각했다. 그 당시 젠더 문제가 있어서 감독님이 수위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불편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여래와 범우의 이야기에 개연성이 있어야하니까 그런 건 뺄 수가 없을 것이다.”
Q. 조나단이 여래에게 위압적인 인물이면서도 재밌는 인물이다. 그 균형을 맞춰야하는데.
▶이선균: “조나단은 과장되고 재밌는 인물이지만 문득문득 표출하는 광기가 있다. 그걸 충분히 표현한다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광대처럼 공포로 다가오는 섬뜩함이 필요했다. 감독님도 그 장면 좋아하셨다. 어떤 포인트에서만 그런 광기를 보여준다면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Q. <킬링 로맨스>는 감독님의 개성이 많이 묻어나는데, 감독이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는지.
▶이선균: “그런 건 없었다. 대본 자체가 독특했다. 감독님의 장점은 편안하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권위의식이 없다보니 배우들도 의견 내기가 쉬웠다. 일단 현장 들어가기 전에 이런 관계가 구축되었다. 감독과 배우 사이의 관계가 이완이 되어야 텐션이 형성되고 코미디가 잘 나온다. 아이 같은 솔직한 표현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내가 한 연기를) 좋아하면 그런 것 더 하게 되고.”
Q.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이선균: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꼭 찍어야 하는 장면인데 당시 코로나로 거리두기 제한이 많아서 바뀐 설정이 있다. 로케이션을 못하고 세트로 돌린 것들이 있다. 불가마씬도 원래 그것이 아니었는데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극중에서 내가 ‘잇츠 굿~’이라는 대사를 자주 하는데 그것도 대본엔 없었다. 촬영할 때 담이 와서 쉬려갔다가 치료하시는 분이 유학파인지 그런 말을 하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보여주니 웃긴다면 영화에 사용한 것이다. 캐릭터 만드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엔딩에 나오는 홈쇼핑 장면도 헌팅이 안 되어 세트로 만든 것이다. ‘꽐라’ 말은 연출부가 만든 것이다. 대본대로 한 것이다.”
Q. 영화를 보실 때 생각만큼 재밌게 나온 장면은?
▶이선균: “불가마 신이 좋았다. 태권도복 입고 연기하는 장면은 창피를 무릅쓰고 찍은 것인데 좋았다. 감독님이 배우에게 믿고 맡겨놓으신 게 많아서 능동적으로 임한 것이다.”
Q. 불가마 신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이선균: “그날 이틀정도 찍었는데 촬영할 때보면 유독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불가마 장면이 그랬다. 오정세 배우가 특별출연 해주면서 잘 된 것도 있다. 그 장면에서 보조 출연하시는 분들이 연기도 잘해 주었다. 표정부터 재밌었다. 아마 관객들이 불가마 신 나올 때부터 내려놓으실 것 같다. (이원석 감독작품의) 낯설음과 혼란이 있을 때 불가마신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영화에 들어오시게 될 것이다. 이하늬 배우와의 호흡은 잘 맞았다. 유쾌했다. 카메라 감독이 너무 웃다가 NG난 장면도 있고.”
Q. 조나단은 아내의 웃음, 얼굴표정에서도 ‘완성’을 요구한다. 왜 그렇게 ‘완성’에 집착하는지.
▶이선균: "강박이다. 난 행복하고, 널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내가 갖고 싶은 건 디 소유해야하고, 내가 하는 것은 다 맞는 거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Q. 조나단의 연기가 부담되지는 않았는지.
▶이선균: "부담은 되었지만 즐기려고 했다. 처음이 힘들지.” (또 이런 캐릭터가 온다면?) “아니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Q. 찍으면서 ‘현타’가 온 장면은
▶이선균: “촬영할 때 현타가 온 장면은 태권도복 입고 ‘펌글’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그런 배경이 나올 줄은 몰랐다. 대본에는 없었다. 감독님이 유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감독님 장인이 그런 글 보내주셨다. 난 크로마키 앞에서 혼자 연기해야 했다. 정말 유니크한 분이시다.” (연기 고민은?) “별로 안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연기는 아니었고, 극중에서 개연성을 이끄는 인물이 아니니까. 가면 놀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조나단스러웠다.”
Q. 찍으면서 이건 못 찍겠다고 한 장면이 있는지.
▶이선균: “첫 장면이 바뀌었다. 원래는 꽐라 해변에서 삼각수영복 입고, 청국장 끓이고 <행복> 노래를 부르면서 프로포즈하는 것이었다. 너무 더러운 것 같았다. 감독님에게 ‘이건 좀 그렇다.’고 말했다. 첫 신만 바꾸자고 그랬다. 나도 민망하고, 관객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만화처럼 바뀌었다. 원래 대본에는 꽐라 해변에 여러 명이 가야하는데. 당시 코로나 시국이라 50명 이상 모이는 것이 컨펌이 안 났다. 그런 현실적인 제한도 있었다.”
Q. 작품에 등장하는 커다란 조나단 액자는.
▶이선균: “CG가 아니다. 진짜다. 내 얼굴은 지워졌는지, 어느 골목에 방치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커서 들고 갈 수가 없었다.”
Q. 마지막 결투신에서 뮤지컬처럼 노래 부른다. 타조도 등장하고.
▶이선균: “일단은 모르겠다. 개연성을 갖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동화를 읽어주는 장치를 갖고 잇잖은가.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그 장면도 원래는 공항가는 길에 차를 막아서고 대결을 펼치는 것인데 여러 문제로 세트에서 찍은 것이다. 홈쇼핑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꽐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래’를 트로피처럼 판매하는 것이다. ‘타조’는, 우리는 모든 장면들이 허용된다고 생각하고 찍은 것이다. 감독님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행복>을 불러야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Q. 참고로 삼은 영화가 있는지. <에에올>의 황당무계함도 느껴진다.
▶이선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 영화 너무 좋아한다. 감독님과 캐릭터 이야기할 때는 서로 이런저런 작품 서로 보내주었다. 넷플릭스의 <타이거 킹>도 봤다. 그런 영화 보면서 감독님과 친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나 인물을 가지고 접근하지는 않은 것 같다.“
Q. <킬링 로맨스>가 대중적 코미디라기보다는 컬트 코미디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데.
▶이선균: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독특함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엉뚱한 캐릭터가 나오고, 루저 같은 인물이 나와서 주성치 영화들과 닮은 점도 있고, 만화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공개되면 가장 비교가 되는 작품이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가 되지 않을까. 흥행은 안 되었지만 매니아가 많고, 오정세 배우가 연기를 잘 했고, 팬들이 있으니.“
Q. 오래 전 <알 포인트>, <파주>에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한 작품이 많다. 특별한 이유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이선균: ”그 작품 다 좋아한다. 내게는 <나의 아저씨>뿐만 아니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그 시기에 저를 투영한 작품들이라서 애착이 간다.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하나씩 하면서, 파이를 넓혀간 것 같다. 믿음을 주어야 저에게 다른 작품의 기회가 오는 것 같다. 어릴 때 출연했던 <태릉선수촌>(2005,MBC 베스트극장)도 애착이 간다. 그렇게 균열이 있는 인물이 애정이 조금 더 가는 것 같다.“
”이렇게 캐릭터 안에서 놀아본 것은 처음이라 소중할 것 같다. 물론 걱정도 된다. ‘짤’로 많이 나올 것 같다. 이건 그렇게 소비하고 놀아도 되는 영화인 것 같다. 그렇게 봐 주셨으면 한다.“
이하늬와 공연한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는 지난 14일 개봉되었다. <기생충>의 월드스타 이선균의 '영화탐구'는 계속된다. <탈출: PROJECT SILENCE>와 <행복의 나라>, <잠> 등이 준비 중이다. 김지운 감독의 <닥터 브레인2>는 잠시 유보된 상태라고 한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