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출신의 배우 이성민은 올해 나이 쉰의 중견배우이다. 이성민은 대학로 유명극단 ‘차이무’ 소속으로 연극무대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한 뒤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양한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tvN <미생>의 영업3부 오상식 차장과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의 화적 우두머리 대호가 우선 생각난다. 그가 <굿바이 싱글>과 <보안관>에 이어 또 한 번 코미디에 출연했다. <스물>의 흥행감독 이병헌의 신작 <바람 바람 바람>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바람’을 즐기는 다 큰 어른 석근을 연기한다. 영화개봉에 앞서 이성민을 만나 ‘바람의 비법’을 들어보았다. 아니, 연기의 비결을.
영화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는데. “그거 안 타려고 애를 썼다. 애들 타는 것인데. 많이 안 탔는데 영화에서 초반과 엔딩을 장식했다”며 “롤러코스트는 마치 우리 중년남자 앞에 닥친, 스릴 넘치는 유혹과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도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라고 말했잖은가”란다.
근데 실제 영화를 보면 롤러코스트를 탄 이성민과 신하균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어떤 경지를 넘어선, 여유 있는 모습이잖은가. 어떤 유혹이 와도 덤덤할 수 있는 성숙된 모습이다”고 설명한다.
원작(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의 캐릭터와는 많이 다르다. “처음 캐릭터를 구축할 때 제가 생각한 것이랑 감독이랑 차이가 있었다. 외형, 외모에서 말이다. 나는 옷이라든가 몸이라든가 그것이 정력이 넘치는 날라리 모습을 생각했는데 감독은 BMW타고 다니는 구레나룻 기른 남자를 생각했다.“
코미디 연기는 어땠나 “코미디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 놓고가는 장면이 있다. 코미디는 코미디라고 내놓고 하는 게 맞다. 첫 촬영하고 나서 대사를 빨리, 정확하게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병헌 감독과 첫 작업을 한 주연배우들(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이엘)은 하나같이 감독의 독특한 디렉팅에 대해 증언했다. 이성민은 “지효가 첫 촬영을 마지막에 했다. 찍고 나서 이러더라 ‘선배 어떻게 해요? 감독님이 말을 안 해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아 괜찮아 괜찮아. 우리도 그랬어1’라고”
이성민은 빨래(팬티) 느는 장면을 제일 처음 찍었단다. “제주도 장면은 초반 한 달만에 다 찍었다. 레스토랑 씬은 부산에서 찍은 것이고. 제주도는 작년 이맘때 찍었었는데 바람이 엄청 불었다. 따뜻할 줄 알았는데.”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한다.
출연배우 중 맏형으로서의 부담감은?"제주도에서 촬영할 때 맛있는 것 먹자, 뭐 그런 분위기였다. 촬영이 없는 날 자전거 타고 북쪽으로 제주시까지, 남쪽으로 서귀포까지 달렸다. 느낌이 있는 식당들이 있더라. 그곳에서 맛있는 것 먹었다. 각자 제주도 맛집에 대해 들은 정보가 있더라“란다. 이어 ”중국관광객이 없어 조용했다. 근데 현장 밥차가 맛있어서 밥차를 많이 이용했다.“고 덧붙인다.
영화에서 이성민은 ‘바람의 대가’를 연기한다. “내가 결혼한 지 19년째인데. 살다보니 그런 것은 있지. 믿어버리는 경향.”이라고 입을 연다. 이성민의 아내는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봤단다. “아내는 현실적이야. 영화보고 나서 한 말이 ‘그럼 애는 누구 애야? 주방장 애 아냐’라더라.”면서 “우리 와이프 촉은 무시 못 한다.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어마어마한 촉이 있으니”라며 현실‘20년차’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 석근이 바람 피우는 이유나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연기한 배우에게 물어봤다. “감독이 영화초반에 호텔 앞에서 실랑이하는 장면 보여주잖은가. 그게 신의 한 수 같다. 이름이 석근인 이유가 있구나 생각하도록. 원래 노출씬이 하나 있었는데 감독이 뺐더라. 잘 선택한 거다.”고 말한다.
오리지널 체코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당구장에서의 이엘의 ‘의욕 넘치는 장면’에 대해. “이병헌 감독은 뭔가 과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괜찮은 것도 같다. 그게 이병헌 감독 코미디의 특징일 것이다. 처음 그 장면 찍을 때 불편했었다. 이걸 하라고? 그런 마음.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이병헌 감독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회상한다.
이성민은 <보안관>을 부산(기장)에서, <바람 바람 바람>을 제주도에서 오래 찍었다. “지금 찍는 것은 주로 서울과 경기권에서 찍었다. 촬영 끝나면 집으로 퇴근한다. 와이프는 내가 지방에서 찍는 걸 더 좋아하더라.”며 현실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그러더니 조금 미안한지 결혼의 장점에 대해 설을 푼다. “결혼을 하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이다. 집에서 푸대접받아도 결정적인 일이 생기면 내 편이 되니까. 지금 집안에서 내가 서열이 꼴지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나 후회가 되겠지만 큰일이 생기면 다들 나만 보더라.”며 가장의 체통을 세웠다.
딸이 고2란다. “걔가 날 좋아했지. 근데 중2가 되니 돌변하더라. 그래도 날 무시해도. 날 존경하지. 하하하”란다. “오늘 아침에도 딸은 와이프가 아니라 내가 깨웠다.” 대한민국 아재 맞다.
경상도 아재, 딸 이야기가 나와 이성민 출연한 영화 <로봇, 소리>로 이어졌다. “원래 그 영화는 대구 지하철참사가 배경이다. 그 사고로 잃은 아이(딸)가 실종되었을 뿐이라며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배경 설명이 좀 부족했던 것 같고, 세월호 때라서 영화홍보하기가 예민할 때였다. 많이 드러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지점이 아쉽다.”고 말한다. “로봇디자인도 너무 알투디투를 닮았다. 그거 아직 영화사무실에 있다. <로봇,소리>는 지나고 나니 아쉬운 작품이다”고 말한다.
이성민은 윤종빈 감독의 첩보영화 <공작>과 조규장 감독의 스릴러 <목격자>,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으로 잇달아 영화팬을 찾을 예정이다. “어떤 순으로 개봉될지 모른다. <공작>은 무거운 영화라서 현장에서 까불고 다닐 영화가 아니다. <마약왕>은 송강호 영화이고, <목격자>는 거의 혼자 고생하는 영화다.”란다.
이성민은 <바람 바람 바람>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들의 평을 이렇게 했다. “송지효는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인 배우이다. 털털하고 여러 사람 잘 챙기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인간이다.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다. 이어 “이엘은 묘한 외모 뒤에 숨은 허당스러움이 쟤도 사람이구나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여배우다. 어쩌겠나. 그게 배우의 숙명인데. 신하균은 사실 허당이다. 맨날 그걸로 놀렸다.“
이성민은 촬영하면서 끈끈해진 감정을 가족의 유대감으로 다시 한 번 비유했다. “내가 맏이다. 위엄도 좀 있고, 내가 하자 그러면 다들 따라온다. 신하균은 조금 이기적인, 절대 지가 밥은 하지 않을 것 같은 동생이다. 지효는 집안 살림 다하는 스타일이다. 밥도, 설거지도. 이엘은 시골 살면서 매일 거울 쳐다보며 ‘서울 갈 거야’하는 동생. 아 이병헌 감독은 서울에서 내려온 사촌동생 같다. 핸섬하게 생겼지만 뭔지 모르고 그냥 서울사람 느낌난다. 어쨌든 맨날 힘든 것은 송지효였다.”고 말한다.
그나저나 <바람 바람 바람>은 어떤 영화인가. “영화 처음 들어갈 때는 그런 생각 안했는데, 사회적으로 예민한 시기가 되다보니 개봉을 준비하면서 신경이 쓰였다. 이 영화는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 귀여운 코미디이다.”라며 “사회의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을 끄집어내어 풀어가는 것이 블랙코미디라면 이게 그런 작품이다. 웃으면서 보고 털어내면 된다. 덤이라면 가족과 연인과 부부와 소중한 사람끼리 같이 보면 좋을 영화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부부답게 아내의 관람평을 이야기한다. “우리 와이프는 더 나가고 될 것 같았단다. 더 도발적이고, 더 야하게. 더 심한 게 현실이니라고.”
그럼, 마지막으로 올해 소망은? “<바람 바람 바람>을 시작으로 <공작>,<목격자>,<마약왕> 등이 좋은 결실 맺었으면 하는 게 올해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이성민은 올해 무척 바쁜 한 해를 보낼 것 같다. 따로 ‘바람’이 없을 만큼 말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