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칸의 여왕'으로 등극한 것은 2007년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숨듯이 밀양으로 온 신애를 연기한다. 아들마저 유괴범에게 죽게 되자 '용서와 구원'의 심판대에 직접 오르게 된다. 전도연은 <밀양> 전에도, 그 이후에도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로 스크린을 빛냈다. 그런 전도연이 <불한당>과 <킹메이커>의 변성현 감독의 신작인 넷플릭스 [길복순]에서 딜레머에 빠진 킬러를 연기한다. 전도연을 만나 '충무로 여배우의 삶'과 '넷플릭스 킬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길복순]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지.
▶전도연: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감독님이 해보자고 했다. 팬으로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전도연이 일할 때의 모습과 집에서의 개인적인 모습을 흥미롭게 느낀 모양이다. 그 간격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시나리오 받아보니 장르적인 멋에 엄마로서의 평범한 길복순의 모습이 잘 밸런스가 잘 나온 것 같다.”
Q. 시나리오는 언제 나온 것인가.
▶전도연: “처음 이야기 나온 것은 드라마 [인간실격](2021) 하기 훨씬 전이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모니터를 좀 해달라고 보내주더라. 그때 드라마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다 쓴 후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었다.”
Q. 시나리오를 보니 어땠나.
▶전도연: “길복순이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 같았다. 감독님에게 그렇게 말하자 ‘선배님이 그러세요’라더라. 감독님이 보시기에 저의 모습이 그랬던 모양이다. 감독님이 저의 집에 자주 놀려 와서 관찰했다. 편한 사람과 있을 때랑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날 것이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Q. 길복순의 액션에 대해서는.
▶전도연: “액션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감독님이 몸을 좀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어디까지 해야 하나. 작품에서 본 그 수준이다. 감독님이 충분하다고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Q. 변성현 감독이랑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전도연: “설경구 배우에게 저의 팬이라고 말했었다. 영화 [생일](2019) 세트장에도 왔었고. 그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작품이 오지 않을 때였다. 그런 시간이 길어졌고. 그래서 젊은 감독들에게 어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변성현 감독에게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거절하시더라.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로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언제 작품을 낼지 모르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 보고는 전도연이랑 액션 같이 할 수 있겠다 생각한 모양이다.”
Q. 액션 연기가 어렵지 않았는지.
▶전도연: “맨손 싸움, 칼싸움, 총 쏘기 등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다. 난 센스가 있는 편인데 액션 합이 쉽지가 않더라. 다른 배우는 한두 번에 쉽게 따라가는데 난 잘 안되어 혼자서 액션 연습을 많이 했다. 테스트 영상 찍어서 보고.”
Q. 킬러의 삶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길복순>의 세계관은 어땠나.
▶전도연: “킬러들의 모습은 많이 보았다. <길복순>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같았다. ‘작품 한다’, ‘슛 들어간다’, ‘리허설’ 등. 배우로 일하는 것과 많이 맞닿아있어서 그런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포장은 킬러와 액션이지만 그 안에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있다. 로맨스도 있고. 그게 재밌었다. 한 작품 안에 여러 장르가 있다는 것이.”
Q. 황정민 배우와 맞서는 것이 첫 촬영이었나?
▶전도연: “첫 액션 촬영이 황정민과 대결하는 것이었다. 황정민 배우는 <수리남> 때문에 연습도 많이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제가 액션을 리드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몇 번 연습하고는 바로 ‘이만 하면 충분해.’ 내가 마음만큼 안 되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그랬다. 그걸 다 받아주셨다. 원래는 그 배역은 일본배우를 염두에 뒀는데 코로나로 여의치 않았다. 누가 어울릴까 하다가 ‘황정민 배우’가 떠올랐던 것이다. 흔쾌히 응해 주셔서 고마웠다.” (전도연-황정민 배우는 2005년 <너는 내 운명>에서 공연했다.) 아주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황정민 배우는 ‘특별출연인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그랬다.“
Q. 상가 식당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어떻게 찍은 것인가.
▶전도연: “가장 오래 걸렸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찍은 것이다. 배우들 스케줄이 계속 있었고, 한 장소지만 시퀀스마다 달랐다. 액션 전문배우들이랑 하는 게 아니어서 극도로 조심하고, 긴장하며 찍었다. 서로 다치게 할까봐. 작은 부상은 많았다. 정말 촬영 들어가면 배우들끼리 ’미안해요‘, ’괜찮아요‘, ’죄송해요‘, ’괜찮아요‘의 연속이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지만 서로 최대한 배려를 하면서 찍었다. 세트 문제로 다친 것이지, 다들 이만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Q .마지막 설경구와의 대결 씬 촬영은 얼마나 찍은 것인지.
▶전도연: “네버 엔딩. 정말 안 끝나는 줄 알았다. 대본에 수 싸움을 펼친다고 나왔지만 그게 어떻게 구현될 줄은 몰랐다. 촬영감독님이 카메라를 360도 돌리면서 찍었다. 배우들은 결과물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너무 많이 찍었기에. 엔딩 씬만 한 1주일 찍었다. 그래도 턱 없이 부족한 것 같다. 감독님은 커트를 잘라서 편하게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치열하게 찍었다.”
Q. 마지막 장면을 보니, 속편이 만들어지면 딸아이도 액션을 펼칠 것 같다.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전도연: “그럴 생각 전혀 없다. 저도 액션영화는 더 이상 못할 것 같고, 감독님도 다시는 못 하겠다고 하더라. ’길복순2‘ 들어온다면, 액션은 빼달라고 할 것이다. 딸을 응원하는 걸로만. (넷플릭스 제안 들어왔는가?) ”이야기 들은 것도, 제안 받은 것도 없다. 제안받게 되면, 조건을 따져봐야겠죠.“
Q. 재영이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차민규(설경구) 인가?
▶전도연: ”나도 궁금해서 감독님에게 물어보았다. 감독님이 아니라고 말했다.“
Q. 딸 아이 이름이 재영이다. 작명에 얽힌 뒷이야기가 있는지.
▶전도연: “원래 시나리오에는 제 이름은 길복순이 아니라 길재영이었다. 감독님은 작품 속 이름을 주변 사람 것으로 한다더라. 연출부 누구, 친구 이름처럼.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하루는 감독님이 집에 왔을 때 전화가 왔다. 이모였다. 이름이 복순이다. 감독님이 ‘느낌 왔다’라며 내 이름을 ‘길복순’으로 하자고 그랬다. 너무 촌스럽지 않냐고 그랬더니 괜찮다고 그러더라. 친이모다. 자기 이름이 타이틀로 올라가는 게 너무 영광스럽다고 했다.”
Q. 길복순에게 차민규(설경구)와 한희성(구교환)은 어떤 사람인가.
▶전도연: “아마도 민규에 대한 감정은 존경심이지 않았을까. 민규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가는 길이, 인생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선택을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갖고는 다른 삶을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다. 희성은 육체관계도 있지만 동료이다. 민규에게는 말 못하는,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Q. 변성현 감독이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전도연: “감독님 GV나 인터뷰를 보면 재밌다. 은유한 게 많더라. 출연한 배우로서 재밌었다. 색깔의 대비도 생각하셨다. 초록생과 붉은 색. 초록색은 복순이가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다. 반찬을 보면 시금치와 빨간색 반찬이 나온다. 대비적인 모습이다. 나중에 ‘나도 시금치 싫어.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하며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예전에 찍은 <밀양>이 생각났다. 감독들은 이런 생각이었구나 하는.”
Q.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 배우에게서 끄집어낸 새로운 모습이 있는가.
▶전도연: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길복순>도 감독님이 생각하지도 못한 내 모습을 끄집어낸 것이다. 배우는 이미지적으로 소모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모습의 전도연에서 저런 모습의 전도연을 끄집어내고 소모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계속 소모당하고 싶다.”
‘킬러’로 소모된 전도연의 <길복순>은 지난 달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존 윅’이 도착하기 전까지 복수의 칼을 맘껏 휘두르고 있다. “휙~ 휙휙!”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