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김상경은 ‘왕’으로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형사’도 적격이다. 아마도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이리라. 그가 다시 한 번 형사로 돌아온다. ‘살인의 추억’으로 스타트를 끊은 뒤 ‘몽타쥬’, ‘살인의뢰’에 이은 네 번 째 형사 역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형사가 지겹지 않느냐”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5일 삼청동 카페이서 이뤄진 인터뷰이다.
김상경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영화담당 기자들과 라운드인터뷰를 성실히, 솔직하게 진행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이날도 기자들과 허심탄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김상경 바로 앞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왜 여긴 안 앉죠? 노트북에 뭘 쓰나 궁금해서 보고 싶은데. 기자분들 타자 진짜 열심히 치시더라. 근데 오타도 많더라...”며 분위기를 푼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왼쪽으로는 청와대 가는 길목, 오른쪽으로는 북촌마을이 있는 곳이다. 김상경은 10여 년 전에 이 동네에서 살았었단다. “처음 이사 와서 살 때는 조용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사람들이 많이 찾더라. 그리고 또 얼마 있다가는 중국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살 곳이 못 되더라.”라고 말한다.
최근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이 기사화 된 것에 대해 “내가 왕도 아닌데 내 아들 태어난 게 뭐라고. 아이의 인권도 있는데. 8개월 되었다.”고 말한다.
7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밤>은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신예 이창희 감독이 한국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잘난 아내’(김희애)에게 눌려 살던 ‘못난 남편’(김강우)이 결국 아내를 독살하는데, 부검을 위해 국과수에 안치했던 그 시체가 한 밤에 사라져 버리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 김상경은 남편을 의심하고, 밤새도록 취조를 펼친다. 비 오는 날, 국과수 건물에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스릴러이다.
“영화 어땠어요?”라고 직접 물어본다. “뭐랄까. 지난 달 개봉한 ‘일급기밀’은 평점이 높게 나왔지만 흥행하기는 쉽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방산비리를 다뤘다는 것이 의미 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라진 밤’은 아주 좋은 스릴러이다. 지금 극장가는 큰 영화 위주이다. 너무 편중적이다. 이런 재미있는 중소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언론시사회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덧붙인다. “배급이 중요하다”고.
김상경은 이창희 감독을 신뢰한다. “함께 술 마시며 그 이야기는 했다. 이 정도 완성도면 다음 영화는 보장된 것이라고.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올 것이다. 이 영화가 흥행까지 되면 더 좋겠지만.”이라고.
이창희 감독은 꽤 효율적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필름에 담았다. “홍상수 감독 빼고, 이렇게 적게 찍는 감독은 처음 본다. 홍상수는 한 달 예정하고 찍다가도 28일 찍고는 그만 찍자고 그랬다.”고 말한다.
“이창희 감독은 신인감독이지만 정확하게 계산한다. 스릴러를 찍을 때 과거 회상 장면을 연결할 때 주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 보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찍었고, 편집했더라. 시나리오 점수도 높았는데 완성작은 더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상경은 ‘형사’ 연기의 달인이다. “그러게 말이다. 형사 이미지가 짙은 모양이다. <몽타쥬> 할 때 또 형사에요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살인의 추억>이후 10년 만에 한 형사인데 말이다.”며 “시나리오를 택할 때 이야기 위주로 본다. 이번 작품에서는 보기에 헐렁한 형사가 나와 사람을 속이는 식이다. 예측을 못하게 하고, 뒤에 반전을 안겨준다.”
형사 역을 맡으면 연기도움을 위해 취재는 많이 하는지. “이젠 안 한다. 혹시 다른 배우들이 원한다면 상담을 해 줄 수 있다. 추리는 이렇게 하고, 옷은 저런 식으로 입으라고.”
김상경 배우는 <사리진 밤>의 원작인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안 봤다고 한다. 스페인 영화 속 형사는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였다고 하자 김상경은 “감독이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데 형사 캐릭터가 너무 무거우면 문제가 있다. 영화는 어두운 실내에서 계속 펼쳐지는데 형사까지 그러면 재미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무게를 잡는 형사였다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김강우가 연기하는 진한이라는 캐릭터가 워낙 비밀을 지키고, 무게를 잡고 있으니 상대역인 형사까지 그런 식으로 끌고 가면 영화가 어려웠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김상경 배우는 “처음에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시나리오를 봤다. 보통 스릴러 영화는 처음 한 열 페이지 정도 읽으면 냄새가 난다. 뒤에는 이렇게 되겠구나하고. 그런데 쭉 읽으면서 국과수에서 시체가 사라진 게 흥미로웠다. 형사 캐릭터가 재밌었다. 3분의 2가 넘어가며 진상이 밝혀질 때, 앞부분을 다시 봤다. 이렇게 속은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며 “원작에서 부족한 개연성, 복수의 이유 등을 보충한 것이 우리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김상경은 김강우의 학교선배이다.(중앙대 연극과) 학생시절 김상경, 김석훈, 그리고 교수가 된 다른 친구 한 명과 ‘학교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펼쳤다. “그 때? 강우는 참 잘 생겼었다. 홍콩배우 같고 말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배우들은 작품을 할 때 곧잘 메소드 연기에 빠져든다. 김상경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빠져드는 스타일이다. “‘일급기밀’ 때는 술 한 잔 안 마셨다. 배우들은 캐릭터에 밀착된 삶을 살아야한다. 말투도. 그렇게 군인역할에 충실했다. 그런데 이번 중식 역을 맡으면서 늘 술 마시고, 옷도 영화 속 옷을 입고 지냈다. 옷을 몸에 길들이는 것이다.”고 말한다.
어찌 하다 보니 김상경이 출연한 ‘일급기밀’, ‘궁합’, ‘사라진 밤’이 연이어 개봉된다. 그중에 <사라진 밤>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현재 시점에서는!
김상경은 방송진행에 대한 야심도 내보였다. “영화프로그램 바뀌어야한다. 주말에 영화를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것 말고는 없다. 다 좋게만 이야기하잖은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한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처음엔 툭 내던졌다가 제법 심각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이를 먹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영화계 선배로서의 후배에게, 영화 쪽에 받은 만큼 돌려줄 게 있어야하지 않을까. 총대 맬 사람이 있어야한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프로그램에 대해 조금 밝혔다. “지금 영화판, 극장은 너무 불균형하다. 투자배급라인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쪽으로 몰린 것 같다. 이러다보면 영화산업이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인터뷰하는 날이 90회 아카데미시상식 진행하던 날이라서, 영화상 이야기를 하다 깐느 이야기가 나왔다. “전, 깐느 불러도 안 갈 것이다. 오랜 전통의 영화제라지만 직접 보니 그만큼 나쁜 권위도 있더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 때도 안 간 것이다.”고 말한다. 물론, 좋은 작품으로 다시 가서 스포트라이트 받기를 기대한다.
김상경은 마지막으로 자기 영화를 다시 한 번 홍보했다. “<사라진 밤>은 오아시스 같은 작품이다. 장르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영화적 재미를 채워주는 작품이다.”고.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 주연의 영화 <사라진 밤>은 3월 7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