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실화이다!”
허재나 서장훈이 KBL 코트에서 펼치는 ‘라스트댄스’는 아니다. 2012년, 원주에서 펼쳐진 ‘고등학교 농구부’의 이야기이다. 당시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는 팀의 존폐를 논할 정도로 선수가 부족했다. 당시 공익으로 근무하던 ‘강양현’이 이런저런 학생들을 끌어 모아 6명의 선수단을 꾸리고,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대회에 참가한다.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용산고가 버티고 있었다. 대회는 어떻게 진행될까. 중앙고와 같은 행정구(부산 남구)의 대연고 출신인 안재홍 배우가 강양현 코치를 연기했다. 놀라운 싱크로 율을 보여준 안재홍 배우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배우들과 실제 코치, 배우들의 사진이 나올 때 높은 싱크로율에 놀랐다.
▶안재홍: “저도 정말 놀랐다. 이렇게까지 높을 줄 몰랐다. 최대한 가깝게 가져오려고 노력했다. 연기를 하면서 실존인물을 연기할 기회는 흔치 않다. 강양현 감독과는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친형과 동갑이다. 기회를 잘 살리고 싶었다. 작지만 큰 돌풍을 일으킨 그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고 싶었다. 충실히 구현할수록 실감이 날 것이다.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촬영 후라서 감량하려다가 감독님께 ‘비슷하게 맞춰볼까요?’라고 의견 냈다. 감독님은 ‘괜찮을까?’하셨는데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2012년의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가져가고 싶었다. 표정과 제스쳐는 당시 어렸던 코치가 경기 나갈 때 가졌을 떨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강양현 코치는 25살이었다!)
Q. 외모 싱크 말고, 더 준비한 게 있는지.
▶안재홍: “ 너무나 다행이었던 것은 실존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우리 영화의 큰 무기였다. 강 코치님을 자주 만나고, 전화통화도 자주했다. ‘형, 이때 어땠어?‘, ’그때 왜 그랬어?‘하고 굉장히 많이 물어보았다. 밥도 먹고, 사촌누나가 하는 카페도 가고. 장(항준) 감독이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었다. 대회에 출전하면서 선수들 유니폼을 두 벌만 준비한 이유도 알려주더라. 본선진출까지만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으니. 그러다가 연승을 이어간 것이다. 경기를 끝내면 녹초가 되었고, 유니폼 빨아서 걸어놓고, 그 다음날 대회 나가고 그랬다. 어린 코치라서 기죽지 않으려고 구두 신고 경기장에 나갔다. 감독님이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해주셨다.”
Q. 많이 친해졌겠다.
▶안재홍: “코치님 스마트워치 배경에 제 사진이 있더라. ’너가 나잖아!‘하더라. 이런 인연이 또 없을 것이다. 10년 전 자기 모습을 영화로 담는다는 게 자신도 놀라웠던 모양이다. 어제도 통화했다. 싱가포르에 경기 가 있는데도 인터넷 기사를 검색한 모양이더라. 원래 이렇게 (기사가) 많이 나느냐 물어보더라.” (코치는 3x3 농구대회로 싱가포르에 갔었단다.)
Q. 코치의 부산사투리는?
▶안재홍: “코치님은 특유의 억양을 갖고 있다. 그 말투까지 싱크로율로 잡았다. 대화를 많이 나누고, 경기 영상 다 찾아봤다. 인터뷰하는 것까지. 30기가 정도 되는 파일로. 경기장에서 소리치는 것과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하는 것이 다 영화에 녹아있다. 대사뿐만 아니라, 경기장 상황에 맞게 즉각 나와야하는 것이 있다. 그 말투, 억양 등을 최대한 가깝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관객들이 마치 농구장에 와있는 것 같은 친근감이 들 것이다.”
Q. 실제 벌어진 경기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결과를 다 알기에 말이다.
▶안재홍: “그렇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포츠영화를 좋아한다. 이번 작품하면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다 찾아봤다. 영화, OTT,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 등 농구 관련 작품을 많이 찾아봤다. 뭐라도 도움을 얻고 싶어서. 스포츠만큼 사람을 뜨겁게 만드는 장르가 없다. 특성상 결과와 승패가 중요하다.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알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게 스포츠영화이다. 그 점을 잘 살리고 싶었다. 시사회에서 볼 때, 다 알고 봤지만 식스맨으로 급작스럽게 투입되는 허재윤(김민)이 3점슛을 연거푸 터뜨릴 때, 그 결과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손이 저절로 올라가더라. 그게 스포츠영화의 희열일 것이다. 촬영 할 때 그런 부분을 너무 잘 담고 싶었다. 완급조절이 중요했다. 너무 강한 어조로만 가면, 나중에 진짜 쾌감이 필요할 때 그 느낌이 안 올 수가 있으니.”
Q. 박진감 넘치는 경기 모습을 찍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안재홍: “경기하는 장면과 코치가 지시내리는 장면 등 따로 촬영해야했다. 그런 부분을 일치시키는 디테일한 과정이 있었다. 지금 어떤 선수가 점프슛을 했다면, 그게 몇 쿼터에서 이뤄지는 슛이고, 양 팀의 전세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팀이 이길 것 같은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 세밀하게 생각하고, 그에 맞게 치밀하게 설정을 해야 한다. 감독님과 많이 의논했다. 그래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가벼운 레이업 슛을 했을 뿐인데 내가 미친 듯이 좋아하는 장면이 이어진다면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볼 때는 휙 지나가지만 촬영할 때는 치밀하게,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Q. 3점슛 장면은 당연히 ’슬램덩크‘를 떠올리게 한다.
▶안재홍: “실제 경기내용이다. 아, 그리고 제 인생만화가 <슬램덩크>이다. 전 권을 소장하고 있고 거실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포스터가 걸려 있다. 나도 울컥한 장면이 안경 선배가 3점 슛 하는 장면이었다. 뛰어난 사람 사이에서, 나의 노력으로 뭔가 해냈을 때 그 쾌감은 더하다. 우리 작품에서 허재윤 선수가 그 슛을 하는 순간이 그렇다. 시나리오 처음 볼 때부터 좋았다.”
“그런 장면 촬영할 때는 옛날에 [스펀지]에서 실험할 때 사용하던 그런 카메라로 찍었다. 촬영감독님도 따로 모셔 그 장면만 찍었다. 장비도, 조명도 다 새롭게 세팅하고 찍었다. 초당 800플레임의 초고속 촬영이었다. CF찍을 때 간혹 투입되는 카메라이다. 영화 보면서 그 장면 너무 좋았다. 촬영할 때부터 공을 들인 장면이다. 그게 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장면이다.”
Q. <족구왕>을 했었다. 농구는 실제 잘 하는지.
▶안재홍: “발로 하는 것은 잘 하는데 손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트레이닝 하면 영화에 보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족구왕>때 생각 많이 났다. 이번 영화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지만 선수들만큼 잘하기는 쉽지 않다. 구기 종목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배우들이 맘처럼 안 될 때가 있다. 그때 심정 알겠더라. 10년 전에 제가 그 또래일 때 겪어본 것이니. 그땐 꿈에서까지 족구 하는 꿈을 꿨었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지금은 클로즈업 하는 것이니까 현란하게 드리블 하다 것보다는 얼굴표정을 살려야한다. 풀 샷일 때는 정말 잘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Q. <리바운드>에 합류하게 된 과정을 좀 말해 달라.
▶안재홍: “장항준 감독이 출연한 <유퀴즈온더블럭>을 보았다. 그 때까지는 장 감독님이랑 연이 없을 때였다. 유재석 선배가 차기작 질문을 하였고, 그 때 감독님이 거의 지금 영화 내용을 다 이야기했다. 중앙고가 돌풍을 일으킨 실화를 영화화하는데 공익근무요원이 팀을 이끈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나한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바람이 컸다. 신기한 것은 사흘 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시나리오가 있다고, 장항준 감독 작품이라고. ’농구?‘ 어떻게 아냐고 그러기에 ‘유퀴즈’ 봤다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신기했다. 시나리오 빨리 받아보고 싶었다. 그날 바로 다 읽고, 책을 덮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난 중앙고 실화를 몰랐다. 검색을 해 보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너무 하고 싶다고, 너무 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Q. 실화가 바탕이라서 그런지, 더욱 극적이다. 그런데 마지막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재홍: “그렇게 여운을 남기는 게 좋았다. 농구는 5:5로 겨루는 경기이다.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하면 교체선수로 채워지는 스포츠이다. 그런데 우리 중앙고는 후보 선수가 없어서 마지막엔 세 명의 선구가 뛴다. 드라마로 쓸려고 해도 너무 드라마 같다고 할 것이다. 울컥한 여운을 주면서 엔딩을 맞이한다. 3,4쿼터를 뛰기 위해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나올 때 조금은 달라진 표정들이다. 상대인 용산고에는 정말 많은 후보 선수가 있다. 카메라가 올라가며 보여준다. 그 컷이 좋았다. 용산고와 중앙고. 앞으로 부딪쳐나갈 세상의 벽 같은 것이다. 중앙고는 무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제는 즐겨볼래’하는 것 같았다.”
Q. 장항준 감독은 본업을 잊을 만큼 요즘 예능에서 발군의 입담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는 어떤 편인지.
▶안재홍: “제가 이 영화 찍으면서 다들 물어보는 게 그것이다. ‘장 감독님 진짜 그렇게 재밌어?’ 정말 그렇게 재밌어요. 똑같아요. 예능프로그램 그대로의 현장 분위기이다. 농구영화는 육체적으로 힘들다. 쉬지 않고 공수전환을 해야 하는 체력소모가 큰 스포츠이다.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하다. 공진단 먹으면서 뛰었다.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데 감독님 덕분에 마음은 너무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작업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감독님을 너무 좋아했다.”
Q. 연기를 하면 힘들었던 지점이 있었다면.
▶안재홍: “나는 코치여서, 경기장에서 직접 뛰지를 않는다. 그래서 저들과 같이 호흡하고, 저들 이상의 온도를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코치는 벤치에 한 번도 앉지를 않는다 . 또 한 명의 선수처럼 경기를 치른다. 이런 느낌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그 온도를 못 맞추거나 다르게 느껴지면 스포츠가 줄 수 있는 뜨거운 부분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더 열기를 내려고 했다. 후배 선수에게 에너지를 많이 줬다. 이 친구들이 영화가 처음이니. 저도 실제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그랬다.”
Q. 촬영 쉬는 동안에는 배우들끼리 농구시합 하거나 자유투 게임을 했을 것 같다.
▶안재홍: “당연하다. 그런데 난 자유투 내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공을 던지면 스태프가 날 만만하게 볼 것 같아서.(하하하) 그러면서 스태프와 친해진 것 같다. 이번 촬영에는 농구 좋아하는 스태프들이 많이 참여했다. 자기들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현장이었다고 생각하다. 촬영을 해보니 웬만한 액션보다 합이 더 중요했다. 공이 날아가는 방향, 선수들 각각의 동선이 있어야 하고, 그 합이나 포지션에 따라, 공이 누구 손에 있는지, 리바운드된 공이 어디로 튈지, 동선이 정말 많더라. 정말 다들 많이 노력했다.”
Q. 안재홍 배우는 부산 출신인데, 억양이 정통 부산사투리가 아닌 것 같다.
▶안재홍: “강 코치님 억양이 특징이 있다. 부산이나 경상도 사투리는 다양하다. 악센트를 세게 하는 사람도 있고, 부드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강 코치 억양을 따라 하는 게 작품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대모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하고 싶었다. 작품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다. 작품에 맞는 그 톤을 유지한 것이다. 사투리만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인물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다고 생각했다.”
Q. 영화 끝나면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강양현 코치와 당시 선수들이 한 장면씩 나온 모양이다.
▶안재홍: “양 코치는 고깃집 회식 장면에서 사장님으로 나온다. 저랑 투샷 장면도 찍었는데 긴장을 많이 하셔서 영화에 나온 게 그것이다. 영화 쪽에 어떤 향기, 자취를 남긴 셈이다. 사장님 대사도 있다. 주의를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Q. <슬램덩크>에 이어 <리바운드>다. 극장가에 농구붐이 일었다.
▶안재홍: “<슬램덩크>는 내 인생만화이다. <리바운드> 찍을 때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다. 작년 여름에 이 영화 촬영을 마쳤다. 겨울에 극장에서 슬램덩크 광고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요즘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늘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뜨거운 열기가 우리 영화에도 나비효과를 주었으면 한다.“
Q. <슬램덩크>에는 채소연이라는 유명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다.
▶안재홍: “이 작품에 여성 캐릭터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실제 여자 캐릭터가 없었고, 그런 설정을 부여하는 것이 실화의 리얼리티가 훼손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Q. 개봉하는 주에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안재홍 배우감독전’(7일 금요일 밤)을 마련했다. 안재홍 배우가 연출한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가 방송되는데 소감 한 마디.
▶안재홍: “독립영화관에 내 작품이 방영되는 것은 영광스럽다. 그 영화는 큰 꿈을 가지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영화학과 워크샵 과정에서 만든 것이다. 저는 연기전공인데 연출을 해보았다.
그 때 그 작업들을 해복 싶었다. 스스로 상쾌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소규모로, 울릉도에서 찍었다. 뜻깊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연출도?)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 만약에 또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