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일) 오후 9시 4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 잘살아 보세⑤ 작전명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라> 편이 시청자를 찾는다.
1971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1975년까지 사거리 200km의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극비 메모를 전달한다. 하지만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이어지던 당시 대한민국의 무기 제조 기술은 그야말로 제로였다. 1971년, ADD의 첫 임무였던 번개 사업을 거치며 이제 겨우 우리 손으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4년. 과연 대한민국의 미사일 개발은 성공할 수 있을까?
4년 만에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무리한 요구. 대한민국의 열악한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체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일까? 그 이유는 요동치고 있던 국제정세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색이 짙었던 미국은 베트남 철수의 명분으로 아시아 국가에게 스스로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공산주의인 중국과 교류까지 하는 상황에 박정희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미사일 개발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국제정세를 자세히 알아보자.
● 방위성금 모금 행사
미사일을 만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어디서 충당할까?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모금이었다. 정부는 1968년 1. 21사태 이후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반공 성금을 걷기 시작한다. 이 모금 운동은 1973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름하여 ‘방위성금 모금 운동’! ‘반공’하면 눈에 불을 켜고, ‘자주국방’이 모두의 염원이었던 시절, 과연 방위성금은 얼마나 모일 수 있었을까? 그때 들려오는 뽀빠이 이상용의 시그니처 멘트?!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국군 장병 여러분 필! 승!” 군인이 사랑한 남자, 이상용이 들려주는 그때 그 시절 방위성금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일, 백곰! 하지만 백곰의 탄생은 순탄치 않았다. 4년 안에, 그리고 북한과 미국 몰래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에서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들은 과연 어떻게 연구를 이어갔을까? 백곰 사업에 참여했던 전 국방과학연구소장 안동만 박사가 들려주는 그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방위 산업 이야기는 4월 2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04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 잘살아 보세⑤ 작전명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라>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