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휘트브레드 상을 수상하고, 이후 10여 권의 비범하고 전위적인 장편 소설로 현대 영국 문학의 첨단을 대표해 온 소설가 지넷 윈터슨의 신작 장편 소설 『프랭키스슈타인』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지넷 윈터슨은 그 자신 성소수자로서 작품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젠더, 현재 영국의 정치 사회적 테마를 깊이 탐험해 온 작가로, 이번 신작은 낭만주의 시기 영문학의 역사와 젠더 유동성, 현대 과학-AI와 신체 개조-의 가능성과 이슈를 결합한, 가장 뜨겁고도 현재진행형인 작품이다.
'프랭키스슈타인'은 1816년 메리 셸리가 쓴 영국 최초의 SF 장편소설이자 고딕 소설의 걸작인 『프랑켄슈타인』의 21세기 응답판이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쓴 19세기의 영국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한 산업혁명과 이에서 비롯된 노동 조건의 변화로 인해 사회적으로는 러다이트 폭동이 일어나고, 의학과 수학, 물리학 등 과학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일어나 사회 기반 자체가 뒤흔들리던 시기였다. 메리 셸리는 도래한 과학의 시대가 인간과 그 존재 조건에 미칠 영향에 대한 혜안을 『프랑켄슈타인』에 투영했다.
지넷 윈터슨은 메리 셸리의 선구적 소설에 대한 21세기의 응답을 남긴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 조건과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고, 의학이 인체의 개조를 넘어서서 복제까지도 탐구 중이며, 수술이나 성형, 자기표현을 통해 젠더마저 뒤바뀌는 세상이 왔다. 메리 셸리가 통찰했던 근대 과학과 인간의 정신, 그리고 존재 조건이 모조리 재정의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윈터슨은 이 두 시대를 한 작품 안에서 병렬로 동시 진행시킨다. 메리 셸리가 작품을 쓰기 시작한 1816년의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두 축으로 나란히 진행된다. 19세기의 이야기는 메리 셸리가 서술자로 등장하여 『프랑켄슈타인』의 집필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그녀가 빚어낸 작품 속 등장인물인 ‘빅토르(Victor)’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마치 그가 탄생시킨 괴물처럼) 작품 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명을 획득하여 움직이기 시작하고, 메리 셸리는 삶의 중요한 지점들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 빅토르와 조우한다.
한편 21세기의 이야기는 의학박사이자 트렌스젠더인 라이(메리의 애칭) 셸리가 서술자로 등장한다. 브렉시트 시대의 영국. 페미니즘, 게이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와 트랜스휴먼 이슈가 일상화된 현대. 젊고 유망한 의학박사인 라이는 한 엑스포에서 세계적인 AI 개발자 ‘빅터’ 스타인을 만난다. 비밀로 둘러싸인 이 ‘빅터(Victor)’는 과연 누구인가. 성별을 초월한 존재 라이와 빅터는 곧 사랑에 빠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련된 바이런이 역으로 환생한 듯한 저속한 섹스봇 제작자 론, 자유분방한 19세기의 클레어와 달리 경직된 기독교 광신자인 클레어, 집요한 기자 폴리 D. 등 메리 셸리 시대의 인물들이 이 운명의 기계 장치 속에서 마치 뒤집힌 거울상처럼 되살아난다. 사랑과 운명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지넷 윈터슨의 소설을 한글로 옮긴 김지현 번역가는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하는가, 기계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생명은 어떻게 창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메리 셸리의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윈터슨은 이 질문들을 한층 현대적인 주제들로 번안한다."로 소개했다.
▶프랭키스슈타인 지은이:지넷 윈터슨 옮긴이:김지현 민음사 2023.3.5출간 4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