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태 감독 - 영화 '대외비' 포스터
<대장 김창수>와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은 지상파TV PD출신이다. MBC에서 <서프라이즈>등을 연출했고, 영화감독으로 전직했다. 최근엔 SBS드라마 <법쩐>으로 다시 TV드라마 연출을 했었다. 캐릭터 선명하고 선 굵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원태 감독의 신작은 영화 <대외비>이다. 이번엔 1992년의 부산 해운대구 국회의원 선거를 둘러싸고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악당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원태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와 드라마 이야기를 함께 물어보았다.
Q. 드라마 <법쩐>이 끝나자마자 영화로 만나게 되었다. 소감이 어떤지
▶이원태 감독: 영화는 4년 만이다. 늘 똑같다. 개봉이 되면 더 걱정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드라마 방송기간과 이 영화 홍보가 겹쳐졌다. <대외비>는 코로나 터지고 나서 촬영을 시작했었다. 조심해서 찍었다. 저희 영화만 그런 게 아니고 전 세계 영화가 다 그랬으니. 지금은 의학이 발달했으니 그렇지 예전에는 펜데믹이 발생하며 꽤 오래 지속되었다. 100년 이상.“
Q. <대외비>가 극장 개봉이 정해지는 어떤 느낌인가.
▶이원태 감독: “경기 날짜가 잡혀 링 위에 올라가려는데 ‘오늘 경기 안 합니다’ 이런 식이 몇 번 되니 힘이 빠진다. 괜찮다. 이렇게 개봉되었으니. <대외비> 촬영 끝내고, 후반작업하고, 다른 시나리오도 썼다.” (OTT로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지?) “저도 그렇고, 제작사도, 배급사도 극장에서 꼭 개봉하자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Q. 스크린으로 봤을 때 느낌은.
▶이원태 감독: 오랜만에 꺼내 조금 손도 보았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그 마음 그대로이다. 배우들은 오랜만에 만나보게 되는 것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시사회에서) 배우들은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시사회 때 다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성민 배우가 제 손을 꽉 잡아주며 ‘너무 좋다’고 말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조진웅 배우도 오래 이야기했는데 만족한다고 했다. 김무열 배우는 촬영할 때는 못 느꼈는데 영화 보니 두 선배가 너무 잘하셔서 버텨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원태 감독
Q. <대외비>는 가제로 시작했다가 정식 제목이 되었다.
▶이원태 감독: “‘대외비’는 일반명사이다. 그래서 ‘힘이 없나?” 생각했다. 부제를 넣어봤더니 군더더기 같았다. ’대외비‘ 문서가 이 영화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고, 모르고 넘어가는 비밀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 제목이 제일 낫겠다 생각한 것이다. 해외 마켓에서는 ’The Devil's Deal‘이다. ’악마의 거래‘, 정확하게는 ’악마와의 거래‘일 것이다. 주제와 잘 맞을 것 같다. ’톱 시크릿‘보다도 이 이야기에 더 맞는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놈들은 나쁜 놈이다. ’악인전‘도 그랬고. 밝고 선한 면보다, 힘들지만 이런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
Q. 작품 구상은 언제 한 것인가. <대창 김창수>, <악인전>을 잇달아 작업한 것 같다.
▶이원태 감독: “작업을 계속 이어가면서 해왔다. 작품 하나 끝내면 쉬면서 다음 작품 준비한 것이 아니다. <대장 김창수> 촬영하기 전에 <악인전> 기획했었고, 후반 작업할 때 시나리오 작업 했다. <악인전> 개봉할 때 바로 각색 시작했다. <대외비>는 제안 받은 것이다. 시나리오 보니 초고가 좋았다. 내가 담고 싶은 주제나 담론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작품 연출 제안도 있었고, 내가 써둔 시나리오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대외비'
Q. <대창 김창수>, <악인전>, <대외비>까지. 모두 하드한 작품이다.
▶이원태 감독: “ 연거푸 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사람 사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인간 세상의 이야기이면서 명확한 주제가 있는 것을 해야겠더라. 시나리오 작업하다가 명확한 메시지가 안보이면 그만 둔다. 반쯤 써다가도 버린다. 재미도 중요하고, 메시지가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제안 받았던 시나리오보다 이게 더 확신이 있었다.”
Q.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이원태 감독:: “조진웅 배우가 편하긴 하다. 그렇다고 편해서 같이 작업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전해웅’에게 누가 가장 어울릴까 생각해보라. 제일 잘 맞는 배우는 조진웅일 것이다. 40대의 보통의 남자. 가정을 지켜야 되고, 40대 중반까지 쌓아온 명분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몰리면서 변해가는 감정이 있다. 부산이라는 지역 특색도 보여줘야 하고. 제가 봤을 때는 조진웅 같은 배우가 없을 것 같다.”
“김무열 배우는 <악인전>할 때 저 배우랑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때는 형사 역할이었는데, 이 배우가 조폭이나 깡패를 하면 또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았다. 조진웅과 김무열, 이 두 친구를 한 스크린에, 한 앵글에 담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둘 다 연기를 잘하고, 그 에너지와 질감이 다르니 한 번도 보지 못한 시너지를 낼 것 같았다. 기대가 컸다. 이성민 배우는 마지막에 확정되었다. ‘이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조진웅과 김무열의 조합에, 뭘 해도 딱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원태 감독
Q. 배우들에게 특별히 요청한 것이나, 디렉션 방향이 있었다면.
▶이원태 감독: “저하고 작업해 보신 분들을 알 것이다. 난 디테일하게 말을 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배우 본연의 색깔이나 자기가 생각한 것을 훼손할 것 같다. 시나리오를 건네주고는 캐릭터 이야기도 잘 안한다. 배우들이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감독이 이렇게 생각 한다’고 말하는 순간 배우에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말씀을 안 드린다. 촬영을 앞두고도 찍을 씬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잘 안한다.”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대사가 맞는지, 톤이 맞는지 보고 있다가. 걱정이 된다 싶으면 의논을 한다. ‘제 생각은, 이런 게 어때요?’식으로. 함부로 배우에게 ‘이럽시다, 저럽시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실패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연기를 주문할 때, 결국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잘 써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색하거나 재미를 못 내면 글의 문제이다. 글 속에 친절하게 잘 되어 있어야 배우가 감정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다.”
Q. MBC 피디로 있을 때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외국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기시킨 이유가 있는지, 연기 디렉팅이 어렵잖은가?
▶이원태 감독: “<서프라이즈>에서 외국인 배우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은 어렵다. 엄청 고민을 많이 했었다. 전문배우도 아니었다. 피디 초창기 때라서, 버거워하면서 만들었다. 첫 회부터 그렇게. 그 프그로그램이 20년 이상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때 내가 영화감독 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서프라이즈> 연출할 때 두 군데에서 영화감독 해보자는 제의가 있었다. 영화를 하고 싶었다. 솔깃했었다.”
Q. 최근 SBS드라마 <법쩐> 연출을 맡았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작업해 본 소감은.
▶이원태 감독: “드라마는 분량이 많다. 빨리, 많이 찍어야하니 당연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 그렇다고 연출스타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늘 하듯이 찍는다. 많이 찍어야하니 아쉬움은 있다. ‘이거 더 잘 찍고 싶은데..’ 하면서도 포기하고 빨리 찍어야하는 것이 있다.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감독에게도 드라마 제안이 들어온다. 드라마 수요가 많아지니까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이건 내가 골라서 한 작업이다. 한 언덕을 넘고 나니 뭔가를 배운 것 같다. 영화와 드라마를 해보니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 '대외비'
Q. 이제 현장이 ‘주 52시간 촬영’이 일반화 되었다.
▶이원태 감독: “영화감독이 된 것은 영화같이 찍어보고 싶어서였다. 드라마 한다고 연출스타일이 바뀌진 않는다. ‘법쩐’ 드라마 현장에 영화 스태프들이 많이 들어왔고, ‘52시간’ 지켜야죠. 그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규정은 필요하니까 생긴 것이다. 스태프가 기계가 아니니까. 더 하는 것은 가혹하다. 또 그렇게 작업해서 나온 아웃풋이 좋을 리가 없다.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펜데믹 지나면서, OTT가 득세하고 소비 패턴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 시장구조 속에서 영화도, 드라마도 같이 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Q.(‘서프라이즈’ 연출했던 친정) MBC가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옮기지도 꽤 된다. 상암동 가 본 적은 있는지.
▶이원태 감독: “MBC에서 한 10년 정도 일했다. 상암동에도 가봤다. 와이프가 드라마 작가상을 받을 때 꽃다발 들고 들어가 보았다.” (이 감독의 아내는 드라마 <마마>(2014)의 작가 유윤경이다)
Q. 인터뷰할 때마다 노트를 꼭 지참한다. 평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나?
▶이원태 감독: “이런 노트가 많다. 책 읽다가 좋은 문구 있으면 써놓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적어둔다. 작품 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신을 정리하기도 하고, 추상적으로 글귀를 써두기도 한다. 대사가 막히면 옛날 노트를 뒤적인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Q. 음악도 즐겨듣는다고 했는데.
▶이원태 감독: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곡들이 빼곡하다. 작품마다 내가 듣는 곡이 다르다. <대외비> 작업할 때는 하드락을 많이 찾아 들었다. 글 작업할 때는 도움이 된다. 음악을 들으면 몰입이 잘된다.”
Q. <대외비>에서는 ‘해운대연가’과 ‘환희’가 흘러나온다.
▶이원태 감독: “영화의 질감이란 게 있다. <대외비>는 1992년의 질감이 있어야했다. 시대적 정서를 주는 것은 공간, 의상, 소품과 함께 음악이 맞아야한다. 딱 꽂히는 음악을 찾아보았다. 수백 곡을 들으며. 그때는 송골매가 인기 있을 때였다. 고민을 오래하다 팝송까지 들어보았다. 그러다가 ‘해운대연가’가 마음에 들었다. 가사가 이런 식이다. ‘하얀 모래밭에 영원히 사랑해’라고 맹세하지만, 파도에 밀려 사라지는 허약한 사랑, 믿음이 이 영화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노래는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노래이다.”
이원태 감독
Q. <대외비>를 통해 감독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이원태 감독:“이 작품을 하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의 믿음, 위기에 몰리면 허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욕망 앞에서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를 소재로 했지만 인간 세상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역사를 좀 더 깊이 있게 담으려고 각색했다. 장르라는 그릇 안에 담아야하니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원래 정치는 이런 것입니다’라고 강의를 할 수는 없으니. 각색하면서 변해가는, 타락해가는 해웅의 모습에 신경 썼다. 해웅에게는 세속적인 욕망에 빠져드는 이중적인 모습을, 순태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누군지 몰라도 타인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담으려고 했다. 필도를 통해서는 눈에 보이는 폭력과 보이지 않는 폭력을 대비시켜 지배하는 힘, 권력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Q. 1992년 부산, 해운대가 배경이다. 혹시 시대나 지역을 바꿔볼 생각은 안 해봤는지.
▶이원태 감독: “지역을 바꿔볼 생각은 했었다.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래서 서울로 옮길까? 해운대 말고 전라도는 어떨까. 그런데 <대외비>는 정치색을 보이려고 한 게 아니다. 단지 공간이 필요했다. 주제를 흐릴 것 같았다. 저한테 더 중요한 것은 1992년이란 시대적 배경이다. 올림픽도 끝났고, 정서적으로 희망에 차 있던 때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고, 전국적으로 재개발 붐이 일던 때이다. 1970년대에 강남개발하고 세월이 또 한참 지나 다시 개발의 시기가 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총선과 대선이 있으니. 그 이야기는 시나리오 초고에는 없었다. 시대적인 상황설정이 없었다. 그래서 시대 상황을 더 많이 넣었다. 그 시대여야 하는 명분을 많이 넣었다. ‘1992년의 이야기를 합니다’가 중요했다. 부산은 다이내믹하다. 부산은 제일 남쪽이고, 전쟁 뒤 북에서 많은 사람이 내려와서 정착했다.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 미국 사람까지.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넘치고 비극의 역사가 관통하는 부산이라는 것이 상징적이었다. 그런데 해운대가 이렇게 많이 바뀌어버렸으니. 개인적으로 재수를 부산에서 했는데,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너무 많이 변했다.”
Q. 다음 행보는?
▶이원태 감독: “지금은 여유가 별로 없다. 다만, 영화가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센 이야기는 안하고 싶다. 너무 힘이 들었다. 조금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성민, 조진웅, 김무열이 직조해내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1992년의 대한민국 의정사의 한 챕터인 <대외비>는 지난 3월 1일 개봉되었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