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정재일 음악 감독이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 데카(DECCA)에서 데뷔 앨범 [리슨(LISTEN)]을 발매(디지털음원) 했다. 정재일은 지난달 13일, 싱글 ‘더 리버(The River)’를 먼저 공개하며 이번 데카 데뷔 앨범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음반 발매에 앞서 오늘(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는 음악평론가 김광현(매거진 재즈피플 편집장)의 사회로 간담회가 열렸다.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정재일은 무대에서 앨범의 타이틀 곡 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했다.
“작곡하고 연주하는 정재일이다. 무대 뒤에만 있다가 이렇게 기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문을 연 정재일은 클래식 음반의 명가 데카와 손잡은 것에 대해 “2004년 싱어송라이터 꿈을 안고 <<눈물꽃> 앨범을 발표했는데 나는 아직 역량이 안 되나보다 꿈을 접고는 20년 동안 무대 뒤에서 다른 아티스트를 보필해왔다. 작년 데카에서 ‘당신만의 것’을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받으며 예전의 꿈이 떠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서 정재일은 자연과 인류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피아노 중심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펼쳐냈다. 그는 “내 목소리와 같은 피아노로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며 “이번 음악으로 내 목소리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을 둘러싼 모든 목소리를 발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데카와의 작업에 대해서는 “데카가 특별히 무엇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해온 것을 바탕으로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처음에는 이런 역할을 해본지가 오래되어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클래식 레이블 데카와 작업하면 전 세계에 제 음악이 알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래식 레이블이라 팝송이나 짧은 곡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재일의 첫 번째 앨범은 피아노 연주로 가득 찼다. “[리슨] 음반이 저에겐 처음이어서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음악을 골랐다. 제일 편한 것이 피아노이다. 내겐 모국어와 마찬가지여서 말보다 피아노가 더 편하다. 첫 음반이라서 큰 편성보다는 오롯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피아노를 선택했다. 앞으로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앨범 제목을 ‘리슨’으로 지은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원래 듣는 사람이고 다른 예술을 위해 작업하는 사람이다. 내 안에서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듣고 싶다. 그리고 지구가 하는 말도 듣고 싶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펜데믹도 겪고 전쟁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슨’ 앨범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오롯이 혼자 연주한 것에 대해 “장점은 컨펌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편했다. 영화의 경우는 감독에게, 노래를 작업할 때는 가수와 이야기해야한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에 대해 정재일은 “내게 많은 일이 벌어졌고 이런 엄청난 기회도 생겼다. 사람들이 정재일은 몰라도 ‘오징어 게임’ 음악은 알더라. 전 세계인이 알게 되는 명예를 얻었다.”면서, “두 작품을 통해 영화음악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영화 ‘브로커’ 작업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집에는 CD플레이어도, 턴테이블도, 텔레비전도 없다고 밝힌 정재일은 “아직 (자신이 출연한) ‘유퀴즈온더블럭’을 보지 못했다”면서, “프로그램 사전인터뷰를 하면서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하였고, 나의 10대와 20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온갖 영화를 보고, 온갖 음악을 듣던 그 때의 경험이 지금 이런 음악을 하게 된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클래식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그 악보를 보며 공부했다. 이후 라벨과 드뷔시도 공부하고. 현대음악도 그런 식으로 배웠다.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이번 앨범 작업에 함께한 스튜디오와 오케스트라도 눈에 띈다. 피아노 연주는 전설적인 녹음실로 유명한 노르웨이 소재 레인보우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현악 사운드는 앞서 <기생충>과 <옥자>, 정재일의 앨범 [psalms(시편)] 작업에 참여했던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정재일은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연주가이자 작곡가다. 17살 나이에 밴드 긱스 베이시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패닉, 박효신, 아이유 등 유명 아티스트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는 대중음악을 넘어 바흐, 브람스, 아르보 패르트와 같은 클래식 작곡가의 영향까지 담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재작년에는 영상 매체에 쓰인 독창적인 음악에 상을 수여하는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The Hollywood Music In Media Awards, HMMA)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하였다.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