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인기드라마 <모래시계>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랐다.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이라는 캐릭터 아우라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모래시계>에는 이들 외에도 많은 캐릭터가 생생하게 시청자에게 각인되었다. 물론, 그 시절 그 드라마를 직접 본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종도’를 기억하는가. 배우 정성모가 맡은 종도는 길이길이 기억될 비열하고, 비루하고, 야비하고, 치사한 악당이었다. 뮤지컬 ‘모래시계’에서 그 역할을 강홍석이 맡았다. 최근 한 예능에 출연하여 무지 웃겼던 그 배우 강홍석! 강홍석을 만나 ‘모래시계’와 ‘유쾌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18일 오후, 공연이 없는 강홍석을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강홍석은 자신만의 종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성모가 연기한 종도와 나의 종도는 다르다. 드라마와 뮤지컬의 차이와도 같다. 24부작 드라마에서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종도의 매력을 보여줄 곳이 많다. 그 배우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 셈이다. 나는 덩치도 크고, 생긴 게 나쁜 놈같이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나쁜 놈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점점 고민하다가 변해가는 그런 인간, 조직에서 1인자가 되려고 남의 등에 칼을 꽂는 그런 악인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강홍석은 유쾌했고 눈에서는 장난기가 넘쳐흐른다. “악당이 비열해야지 하는 것은 옛날 방식인 것 같다. 관객들이 받아들일 때 입체적이길 원했다. 고등학생 때 태수를 처음 만났고, 이후 점차 악의 길로 빠져드는 종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홍석은 그런 남자 종도를 위해 바지춤도 줄이고, 좀 센 모습을 보이려했단다. “근처에 있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위압감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2막에서 태수가 카지노를 정리한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버려진 카드’라는 넘버를 부른다. “캐릭터 설정이 어려웠다. 뮤지컬에서는 종도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변곡점이 없다. 상상으로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혜린이 태수을 두고 ‘결혼할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그 때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고 말한다.
강홍석은 작품분석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 “‘킹키부츠’도, ‘데스노트’도 다 허구인 셈이다. 그러니 배우는 상상력이 좋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우들이 뮤지컬을 직접 관람했단다. 기분이 어땠을까. “왕이 왔다! 그런 느낌. 굉장히 들떠있었다. 그날 정말 공연을 재밌게 한 기억이 난다.”며, “본인이 나왔던 드라마가 세월이 흐른 뒤 무대에 오르고, 그것을 객석에 앉아서 지켜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눈물이 날 것 같다. 부러웠다.”고.
무대에서 죽을 때 심정은 어땠나? “사실 죽는 모습이 너무 불편했다. 그런 자세로 숨을 참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연출이 종도는 다리를 올리고 죽어야한다고 했다.” 강홍석은 죽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고. “관객들이 실소가 나오게 해야 한다. 최대한 가벼운 죽음이 되어야한다”고. 나까지 무거워지면 안 되겠더라. 나쁜 놈은 나쁘게 죽어야한다. 쌤통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그런 죽음은 성공했다. “어머님 관객들이 ‘저 나쁜 놈, 어머어머’ 하면서 마치 드라마 보듯이 리액션 해주시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1986년생인 강홍석은 드라마 <모래시계>를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오디션 제의를 받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 싸워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고 한다.
강홍석은 뮤지컬에서 감옥에 갇힌 태수를 찾아간 장면에 대해 또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연출이 정면을 보고 연기하라고 주문했다. 사실 서로 마주보고 연기해야 호흡이 맞는데. 둘 다 관객 쪽을 바라보고 연기한다. 그 장면은 태수를 놀릴 수 있어 재밌는 장면이다. 연습할 때 몇 번씩 바꾼 것 같다. 음악도 넣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대사도 바꿔보고. 여러 시도를 하였다.”
다시 비열한 종도. “이런 배역은 만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만나서 감사할 뿐. 분량대비 임팩트가 있는 캐릭터라고 다들 말하더라.”
강홍석은 뮤지컬에서 뚜벅뚜벅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흔들릴 때마다 아내가 중심을 잡아준다고. “하나만 생각하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으면 기다리라고. 뒷일은 걱정하지 말란다. 애도 없으니. 자기가 커피숍 알바하면 된다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재미없으면 하지 말라고 그랬다.”
강홍석은 관객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생긴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킹키부츠’의 이미지가 강해서 계속 비슷한 배역의 오디션만 들어온다.”면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어떻게든 기억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강홍석이란 사람만을 기억해주시면.”
강홍석은 가수가 되려고 준비를 했단다. “뮤지컬 배우는 가수가 아니다. 연기도 잘 해야 하고, 노래도 잘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연기가 우선인 것 같다. 정서와 감정을 잘 전달해야한다. 물론, 노래를 신경 안 쓸 수 없잖아요.”
강홍석은 마당극을 좋아한다고 한다. “봉산탈춤 잘 춰요. 데뷔작 <스트릿 라이프>를 위해 한동안 댄스학원도 다녔다”며, “제가 사실 공부를 진짜 안했어요. 이 직업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뉴스를 본다. 1도 안 보던 사람이.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모래시계>를 위해, ‘광주민주화항쟁’을 이해하기 위해 1986년 생 강홍석 배우는 열심히 조사했다고 한다. “그 시대 입었던 옷부터 알아 봤어요. 유튜브도 찾아보고. <나폴레옹>할 때는 외국드라마까지. 영어라서 처남한테 번역해달라고 부탁했죠.”란다.
강홍석 배우가 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배경지식이 없이 올라가는 게 의미가 없더라. 작품을 분석할 때 그 시대를 배워야한다고 이야기 들었다. 그래야 대사 하나를 하더라도 자신감이 있다.”
<모래시계>가 다시 무대에 오르면, ‘종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다시 종도를 하게 된다면, 고민하고 갈등하는 느낌이 더 들도록 연기할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밖에 살 수 없나, 분량이 조금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뮤지컬 <모래시계>는 2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이후 지방공연이 이어진다. 당초 대구에서도 공연될 계획이었지만 공연장에서 난색을 표하며 무산되었다. 배우의 심정을 어떨까. “아쉽죠. 무대에 서는 배우는 관객을 만난다는 게 너무 행복한데. 대구 사람 만나서 박수 받고 싶었는데. 약속이 깨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광주공연(2월 23일~25일)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데. “저에겐 지방투어도 처음이고, 광주는 또 남다른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기대된다. 저도 광주 출신이에요. 경기도 광주출신!” 하며 웃는다. 덧붙인다. “<택시운전사>보면서 화가 났어요”라고.
웃기만 잘 웃을까. “잘 우시나요?” 물어보니, “예. 제가 강울보입니다.”란다. 인터뷰 내내 활기찬 강홍석은 의외로 자신은 조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와이프 웃겨줄 때, 흥이 필요할 때만 빼면.
<킹키부츠>의 그 활달한 롤라도 생각나고, TV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강홍석도 생각난다. <모래시계> 다음 작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단다. 이번엔 한없이 비열하고, 한없이 가볍게 죽는 강홍석이지만 곧 활달한 그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