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실업계(특성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 실습생으로 일하다 자살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의 많은 사건사고가 그러하듯이 이때 일도 잠깐 시끌벅적하다가는 어느새 묻혀버리고, 망각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두 건이 아니었다. 정주리 감독은 그 사건파일을 들추어 영화로 만들었다. <다음 소희>이다. 극중 희생자는 ‘소희’이고, 이런 상황이 고쳐지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자 ‘다음 소희’가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는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룬다. 그것은 교육부와 노동부의 관할을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작년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정주리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급적 사실적인 것들로만 채워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속에 실제 사건의 주인공도 있지만, ‘유진’이라는 인물은 허구다.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실제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며, “너무 늦었지만 내가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건 전후의 일을 알아가면서 나 역시 그 일을 반복하게 하는 사회 전체의 일원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라고 밝혔다.
배두나는 극중에서 소희의 죽음을 파고드는 형사 오유진을 연기한다.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그 내막의 부조리와 불법성을 알고는 분노하는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극중에서 유진은 형사이지만 사실은 TV 시사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의 마음이다.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피해자의 말을 듣는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듣고 있는 앞모습이 유진의 얼굴이다. 연기를 해보니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했다.”며 "오유진은 수사를 하며 콜센터, 학교, 교육청을 돌아다니며 화도 내보고, 답답하고 막막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모멸감도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런 유진의 회한을 담고 있다. 내겐 소희가 유진을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시은은 지방 특성화고 졸업반으로 콜센터에서 ‘수습’으로 일하게 된 소희를 연기한다. “소희는 춤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표현할 줄 알고, 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친구이다. 그런 소희가 콜센터에서 좌절하고, 고립되어가는 과정들을 겪게 된다"고 자신의 역할을 소개했다. 이어 "이 영화가 이렇게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해외에 가서 관객들을 만나보니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 곳곳에도 수많은 ‘소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시나리오를 써주시고 세상에 알리도록 도와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다." 말했다.
정주리 감독과 배두나 배우는 '도희야'(2014)에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다. 정 감독은 “첫 영화 이후, 아무하고도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 배두나 배우에게 이 시나리오를 보냈을 때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받은 배두나는 그동안 내가 이민이라도 간 줄 알았다더라. 배두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볼 것이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줄지 확신했다”고 밝혔다.
배두나는“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정주리 감독님이 또 좋은 작품을 썼구나’싶었다. 소재와 주제의식 모든 것에서 다시 한번 반했다. 감독님 곁에서, 감독님이 무슨 역할을 시키든 서포트하고, 내가 필요하면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라고 참여 계기를 밝히며 "이번 작품을 계기로 감독님과 더 깊은 동지 의식, 끈끈한 감정이 생긴 것 같다. 믿음과 신뢰가 돈독해졌다. 감독님의 팬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의 전반부는 김시은이, 후반부는 배두나가 이끌고 간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확실히 어려운 연기였다. 두 여자 캐릭터가 나오는데 전, 후반을 각기 끌고 가는 독특한 구조이다. 제가 두 번째에 등장한다. 관객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봤고, 제가 거기서 한 번 더 되짚을 때 제대로 섬세하게 연기하지 않으면, 관객이 느낄만한 것이 아니면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티 내면서 열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담담하게 관객과 페이스를 맞추려고 했다.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부분에서도 예전처럼 참지 않고 쏟아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주리 감독은 “비록 영화는 허구의 이야기가 됐지만 어쩌면 많은 '소희'들이 영화를 통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소희를 연기한 김시은은 "제가 연기한 소희가 많은 분들께 닿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영화 <다음 소희>는 2월 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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