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빛낸 KBS드라마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녀의 법정>(극본 정도윤, 연출 김영균)이다. 제목처럼 ‘법정’을 다룬다. 하지만 정치나 재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사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흔치 않은 소재를 정공법으로 전개하며 시청자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마녀의 법정>의 성공에는 배우 정려원이 있다. ‘마녀’ 정려원을 만나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달 초 가진 인터뷰를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올린다.
<마녀의 법정>을 끝낸 뒤 정려원은 “하염없이 잤다. 자고, 쉬고, 운동 좀 하고, 만나고 싶은 만났다.” 그렇게 지냈단다.
드라마에서 단발머리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는데? “캐스팅되자마자 캐릭터를 위해 머리를 잘랐다. 이번에는 똑단발! 너무 짧아도 안 되고, 쇄골 라인까지 자르면 어울릴 것 같았다.” 정려원은 옷도 ‘단벌’이 어울릴 것 같았단다. “그런데, 감독과 제작진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하더라.”란다. 패션 피플이니깐!
정려원은 초반에 캐릭터 설정과 드라마 전개에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드라마 캐스팅 되고 나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었다. 나도 이걸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엔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다. 검사드라마가 유행인데 이번 드라마는 결이 많이 달랐다. 마이듬은 비교대상이 없을 것 같았다. 레퍼런스가 없는 셈이다. 저도 검사연기가 처음이라 초반에 경직되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편집이, 음악이 잘 해주셨다.”
법정드라마의 어려운 점은? “대사가 많았다. 입에 붙지 않는 말이 많았다. 이전에 메디컬 드라마하면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니 패닉이 몰려오긴 했다.” 정려원은 마이듬 검사의 캐릭터 분석을 하는데 친구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정려원은 '여성과 아동 대상 성범죄'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이기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드라마를 보며 피해자들이 두 번 상처받지 않을까 연기에 신중을 기울였다고 밝힌다.
<마녀의 법정>에는 ‘여성아동범죄전담부(여아부)’라는 가상의 부서가 등장한다. “실제로 여성아동범죄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 작가님이 리서치 많이 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 진술을 받을 때. 피해자가 불려갈 때마다 담당하는 분이 바뀐다고 하더라. 피해자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한명의 검사가 피해자 조사에서 공판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부서가 있어야할 것이다. 검사가 힘들겠지만 피해자를 위해서라면, 가해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되어야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여배우로 현실에서, 현장에서 느끼는 ‘성범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어찌 보면 성범죄란 건 숨 쉬듯 존재하는 것 같다. ‘이게 성범죄였구나’하는 걸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현장에선 성희롱 발언일 수 있는 것들이 만연해있다. 너무 일상화 돼버렸는데 여자배우의 경우 참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책임감도 많이 가졌다.”고 말한다.
여배우에게 피부관리나 미용법을 안 물어볼 수 없다. “에스틱에서 피부관리 하는 게 필요하죠. 요즘 TV화면이 워낙 적나라하잖아요.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지는 편이라. 이번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촬영하다가 캐릭터 잡아가니 살이 찌더라고요.”란다.
절친 한예슬 이야기도 나왔다. “예슬이가 해외에서 촬영 중이다. 서울에 오면 함께 여행을 갈 거에요. 후보지가 몇 군데 있는데. 예슬이는 추위를, 나는 더위를 더 많이 타는 편이다. 적당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두 여배우는 만나면 무슨 이야기할까. “전시 보러 자주 가고, 밥 먹고, 그냥 이야기 나누고, 음악 듣고 그런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교회에서 가장 많이 만난 것 같다.” 그러더니 서로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라마 초반에 이 친구를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줬어요.”란다.
연말시상식 관련. “KBS드라마 중 올해 잘된 드라마가 많다. 그리고 KBS 시상식은 처음이다.”면서 “이번엔 인기상을 받고 싶다. 인기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넌 연기 말고 인기 많아.’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정려원은 이번 드라마를 하며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고. “노래방 장면에서 혼자 방방 뛰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장면 찍을 때 나 혼자 하면 힘들까 봐 다른 검사들이 한 편에서 함께 신나게 뛰어주었다. 화면에 안 잡혀도 배우들이 미친 듯이 열심히 뛰었다. 그 장면 이후 겁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마녀의 법정'과 '풍선껌'의 오디오 감독님이 같은 분이었다. 내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하시더라. 사실 낯을 가리고, 촬영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는 스타일이었다.“고 덧붙인다.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 <마녀의 법정> 시즌2는 어떨까.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배우들은 다 참여하겠다고 했다. 작가님이 리서치를 오래 하셨다. 그래서 대본이 튼튼하다. 소스도 많을 것이다. 작가님은 완성도를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이듬이를 그냥 이렇게 보내긴 너무 아깝잖은가“
정려원의 다음 계획은?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시트콤도 좋아했었다. ‘안녕, 프란체스카’처럼 코미디로 호흡을 맞추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 호흡이 잘 없다. ‘오버 아냐?’ 하는 것들도 해 보고 싶다.”
오래 전, ‘샤크라’라는 걸그룹으로 ‘한국’ 연예계에 데뷔한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에서 인생캐릭터와 인생드라마를 만났고 지금은 다음 작품을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단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키이스트/ 드라마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