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감독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4년만의 컴백이다. 감독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06)를 시작으로 <페스티발>(10),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14), <독전>(14)을 통해 자신만의 미장센과 이야기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이해영 감독은 이번에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스파이액션물을 완성시켰다. 우리나라엔 <바람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중국원작(소설/영화)을 이해영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등과 함께 이솜, 이주영이 받쳐주는 스타일리시한 스릴러이다. 감독에게 영화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Q. 영화 [유령]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해영: “처음 제작사 대표님에게 제안을 받고 고민을 했다. 원작소설은 밀실추리극 형식에 충실했다. 누가 ‘유령’인지 궁금하게 만들고, 의심 가는 사람들 속에서 진짜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3~4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했지만 못하겠더라. 거절하고는 신촌에 영화를 보러 갔었다. 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원작의 이야기에서 한 발 물려서니 객관적으로 보이더라. 아마도 밀실추리극이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추리를 배제하면 어떨까. 박차경이란 인물을 앞에 두고 시작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신촌으로 가는 차에서 운전하면서 기본 골격을 세웠다. 추리극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액션 장르로 넘어가는.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었다. 관객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유령’에서는 추리가 배제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더 정확하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
Q. 중국판 영화는 보았는지.
▶이해영: “보았다. 소설 판권을 확보해서 영화화한 것이다. 중국판 영화는 원작소설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중국영화는 원작의 장르를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고, [유령]은 새롭게 재해석해서 출발한 것이다.”
Q.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이해영: “박차경을 먼저 구상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배우를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번엔 달랐다. 박차경을 정해야 그 역할을 선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하늬 배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오랜 팬이기도 하거니와 이하늬 배우는 자기 철학이 있고, 강단 있는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로 발산하는 역을 맡았는데 이번에 거꾸로 안으로 품고, 누르는 정적인 인물이면 새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초고를 제안했다. 이하늬가 아니면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하늬가 출발이면, 설경구 배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하게 견인하는 인물이다.”
Q. 설경구 배우에게서 기대한 것은?
▶이해영: “무라야마 쥰지는 감독이 작품에서 전하고자하는 이야기,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이다. 배우 자체가 존재감이 있어야할 것이다. 묵직한 무게감이 필요하다. 그런 배우가 절실했다. 이하늬 배우에게는 러프하게 초고를 주었고, 설경구 배우에게는 고치고, 또 고치고 해서 완고를 넘겼었다.”
Q. 박소담 배우는 [경성학교]에 출연했었다.
▶이해영: “소담 배우는 졸업하고 <경성학교> 출연할 때는 앳된 외모였지만 선입견과 다른 저음과 단단함, 진중함을 가진 매력적인 배우였다. 이런 배우를 이하늬와 반대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캐릭터를 맡겨 그 쾌감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다들 반대로 보시더라. 이하늬가 유리코, 박소담이 박차경일 것이라고 생각하더라. 역으로 캐스팅한 게 재밌었다.”
Q. 박해수 배우는 일본어 연기로 일단 박수를 받고 있다.
▶이해영 감독: “처음 <유령> 시작하며 그 역할은 일본 배우를 쓸 생각이었다. 내가 일본어를 모르니 일본어 대사를 제대로 디렉팅할 자신이 없었다. 지명도가 있는 일본 배우를 캐스팅했었는데 팬데믹이 터지면서 봉쇄되었다. 비자도 잘 안 나오고 해서 줌으로 준비 작업을 계속했다. 크랭크인 준비를 하는데 그 배우가 건강상 문제가 생겨 출국을 못하게 되었다. 촬영이 곧 시작인데 정말 좌절을 많이 했다. 그래도 영화는 찍어야했기에 급하게 한국 배우를 찾았다. 언어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런 위기를 압도할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절실히 필요했다. 외국어를 습득할 성실한 배우 말이다. 그때 박해수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줬는데 이틀 정도 읽어보고는 아침에 미팅을 했었다. 너무 하고 싶은데 일본어 대사가 많아 거절하려고 했단다. 출연제의 거절을 그렇게 아침에, 미팅을 갖고 직접 만나서 거절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말 성실한 배우이다. 첫눈에 입덕하게 된 것 같다. ‘거절하려고 왔다. 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말은 거절하는데, 얼굴은 ‘이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며 출연을 갈망하고, 자신을 설득해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걸 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고, 캐스팅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일본어 선생이랑 바로 합숙하며 벼락치기로 일본어대사를 공부했다. 자기 대사를 암기하고, 상대 배우의 일본어를 암기했다. 자신의 일본어대사를 한국어로 암기하고, 상대의 한국어 대사도 완벽하게 숙지하더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정말이지 괴물 같은 성실함을 가진, 괴물 같은 연기력의 배우이다.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원래 일본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세트가 시공되었기에 ‘카이토’ 역할부터 찍어야했다. 가장 어려운 장면을 크랭크인하자마자 찍어야했다. 식당 장면 두 개를. 그걸 완벽하게 소화해주었다. 손을 잡고 구원해주어 고맙다. 수호천사라고 말했었다. 아마 관객들은 자막을 보느라 배우들의 연기 진면목을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N차 관람한다면 배우들의 연기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박해수 배우는 장면마다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욕망, 질투, 증오, 저주가 스쳐지나간다. 촬영 현장에서 자주 ‘방금, 너 얼굴에 우주가 지나갔어.’라고 말했을 만큼 감동의 순간이었다.“
Q. 서현우 배우는 전작 <독전>에도 나왔었다.
▶이해영 감독: “서현우 배우는 선 굵은 장르에서 남성적인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하는데, 이 친구 저변에는 귀여움이라는 포스가 깔려있다. 난 그 불꽃을 알고 있었는데 아무도 안 꺼내주는 것 같다. 저걸 꺼내면 천지를 뒤흔들 귀여움일 것이다. 시나리오에는 동글동글한 거대고양이 느낌이 있다. 드라마 <악의 꽃> 하면서 살을 홀쭉하게 뺀 상태였다. 살이 다시 붙기를 기다렸다. 그가 <헤어질 결심>에서 다시 살을 붙인다는 첩보를 듣고는 그 작품 하는 김에 이것도 하자고 했다. ‘일타쌍피’, 패키지로 성사된 셈이다. 서현우 배우는 약간 어려워하기 했지만 편한 마음으로 오라고 그랬다. ‘살만 빠지지 말고!’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유령>을 통해 우리 서현우 배우 귀여운 것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Q. 감독님이 생각한 일제강점기 경성은 어떤 곳인가.
▶이해영 감독: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를 꽤 많이 공부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들의 찬란함이었다. 치열한 삶으로, 찬란한 희생을 한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찬란함을 영화로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란 것은 비주얼로 색깔로, 미장센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전작에서 스타일리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비주얼과 미장센으로 다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투쟁을 했는지, 영화적으로 보여드리려고 했다.”
Q. 이솜이 연기한 난영이라는 캐릭터는 출연 분량에 비해 꽤 임팩트가 있다.
▶이해영 감독: “난영은 박차경(이하늬)의 행동을 견인하기도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유지시키는 정서적인 캐릭터이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영화 전체에 영향을 주는 임팩트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솜 배우에게 어렵게 부탁했다. 이솜의 등장부터 허투루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극장 앞에서, 비는 내리고, 간판에는 디트리히가 있고,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내가 비극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둘이 접선하는 모습이 찬란한 비극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슬픈 뉘앙스로 영향으로 주기를 바랐다.”
Q. 음악에 대해,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이해영 감독: “사실은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디트리히가 직접 부른 노래를 사용하고 싶었다. 독일어 노래 버전이 있는데 이 영화와 시대가 맞지 않다. 디트리히 노래 판권 푸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디트리히의 노래에 영감을 받은 선곡 작업을 했다. 재즈가수 문혜원이 독일어를 열심히 트레이닝 해서 완성시킨 것이다. 참, 독일가수도 많이 알아봤는데 우리와 감성이 조금 다르더라. 좀 더 센티멘털 했으면 좋겠는데 딱딱한 느낌이 들더라. ‘카이토의 일본어’와 비슷했다. 독일어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가창력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재즈 보칼리스트 문혜원을 추천받았고, 그가 독일어로 부른 것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독일 사람에게 물어보니 굉장히 잘 불렀다고 하더라. 디트리히 음악은 처음 두 사람(이하늬,이솜)이 접선할 때 나오고, 플래시백에 나오고, 엔딩에도 나온다. 박차경이 행동에 나서는 동기가 만든 테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견인하는 찬란한 승리에까지 이르게 한 감정이다.”
** 문혜원이 부른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노래는 ‘Das Lied Ist Aus’이다.*
Q. 독일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영화 <상하이 익스프레스>와 <드라큘라> 포스터를 특별히 선택한 이유는.
▶이해영 감독: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상하이 익스프레스>(상해특급)이다. 영화보다는 그 배우가 더 중요했다. 디트리히는 박차경하고도 닮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은 대부분 섹시 심벌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여성성으로 소구하는 배우가 아니라 어떤 ‘멋짐’을 가진 배우를 택하고 싶었다. 가끔은 성별을 초월한 그런 디트리히의 멋짐을 담아내고 싶었다. <상해특급> 내용도 이 영화와 닮아있다. 액자구성인 셈이다. 저만이 아는 재미이다. 이 영화는 상해 육삼정에서 실제 있었던 흑색단의 의거부터 시작한다. 그때 의거는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상해 육삼정 의거가 미수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경성에서 누군가가 그 미완의 싸움을 이어나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Q. 후반부는 액션이 화려하게 스크린을 장식한다.
▶이해영 감독: “중후반은 화려한 액션을 영화적으로 구성하고 설계했다. 처음 쥰지와 박차경의 격돌을 컷으로 잘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두 배우의 물리적인, 신체적 부딪침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배우가 직접 해야 하는 액션씬이다. 성별 다 떼어놓고, ‘남녀’라는 것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두 사람이 동등하게, 동물적으로 팽팽하게 맞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배우가 열심히 잘 해주었다. 합을 맞추기 보다는 동선에 주의했다 ‘‘여기서 때리고, 여기서 얼굴을 강타하고...’ 식으로 러프한 동선만 잡았다. 두 배우의 팽팽한 대립이 잘 살아난 것 같다.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Q. 영화 후반에는 이주영이 등장한다.
▶이해영 감독: “영화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성별이 개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남성’ ‘여성’을 의식하면 자연스럽게 위계 같은 게 생기는데 그런 게 없었으면 한다. 성별로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어쨌든 당시에는 유령이 누가 되든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랐다. 이주영이 바통을 받은 것이다. 그가 여성이어서라기 보다는 그곳에 이주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극장의 직원(매표소)이었다. 만만한 인물이었다가 어느 순간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있는 것이다. 쥰지가 ‘대를 이어가며 싸워봐라.(조선이 이기나...)’라고 말하는데 그걸 뒤엎는 역할인 셈이다. 세대교체하며 대를 이어가며 싸우는 것이다.”
Q. 설경구 배우가 인터뷰에서 감독님의 디렉팅이 꼼꼼하다며 ‘모자를 1밀리만 내려 써보라’고 했다는데.
▶이해영 감독: “하하,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 기사로 보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장면 찍을 때 최고로 화기애애했었다. 가장 화목하고 행복했었다. 선배가 농담을 좋아하셔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 물론 연출할 때 꼼꼼한 것은 사실이다. 이하늬가 저한테 ‘감독님 일생생활 하기 힘들죠?’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 때 상황은 이랬다. 경무국에서 좌천되었던 쥰지가 원직에 복귀하게 되는 순간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이제 지휘권을 받고 제복을 입고 모자를 꼼꼼하게 쓰는 신이다. 설경구 선배가 거울을 비스듬히 보면서 모자를 쓴다. 한 번에 딱 써야 멋있다. 그래서 그런 디렉션이 있었던 것이다. 몇 번 주문을 드린 것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맞춰요? 선배님이 힘들 것이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이건 모두 선배님을 위한 것이었다. 설경구 배우의 미모에 손상이 가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제가 결벽을 떨면서 설배우에게 1밀리의 손상도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하하)
Q. 일부 캐릭터는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해영 감독: “캐릭터는 고심했다. 관객들이 보기에는 어떤 캐릭터에 더 감정이 이입되고, 어떤 캐릭터에는 덜 중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인물들이 앙상블을 이뤄야 하는 이야기이다. 조화와 앙상블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도 있더라. 천계장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왜 사라지냐고. 난 관객들이 그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일찍 빼고 싶었다. 그럴 때 생기는 텐션이 천 계장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Q. 난영(이솜)과 박차경(이하늬)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중국영화에서는 비슷한 캐릭터가 남자인데, 여기선 여자(이솜)이다.
▶이해영 감독: “영화 개봉 전에 모니터시사회를 했는데 관객 분들의 반응이 다양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했다.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 분들의 몫이다. 차경이라는 캐릭터는 쉽게 속단할 수 없는 존재, 좀 더 큰 사람이기를 바랐다. 조금 더 생각하고, 읽게 되는 캐릭터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중요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주는데, 영화를 다 보시고 천천히 받아들이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명시하였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 '유령'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등이 출연하는 이해영 감독의 항일첩보액션추리물 <유령>은 18일 개봉했다.
[사진= CJ ENM 제공]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부르는 ‘Das Lied Ist 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