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많다. 우선 물려받은 재산이 엄청 많아 수월하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경우, 단편영화부터 착실히 찍다가 영화제에서 상 받으며 상업영화계로 나온 경우, 영화평론하다가 차라리 내가 찍으면 나을 것이라고 나온 경우, CF나 드라마 찍다가 영화로 넘어온 경우 등등. 물론, 옛날 방식도 있다. 유명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고생고생하며 필드를 배우다가 가까스로 입봉에 성공하는 경우. 마지막 경우를 만나보게 된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꾼>이다. <꾼>은 이준익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했던 장창원 감독의 감격스런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지난 주 기자시사회를 가진 뒤 장창원 감독을 만나 그 감격의 순간을 들어보았다. (▶꾼 리뷰 보기)
<꾼>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꾼 조희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이다. 이미 <기술자들>, <마스터> 등 몇 편의 영화가 세상에 선을 보인 상태이라 ‘유사영화, 아류작’의 불안감은 없는지 물어볼 수밖에.
“3년 전부터 준비했다. 시나리오는 2년 전에 완성된 상태였다.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기획하였고 시나리오 작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메인으로 준비 중인 영화는 없었다. 그러니 소재중복의 문제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캐스팅하고, 촬영 들어갈 때까지는. 그런데 <마스터>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개봉 시기가 1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관객들이 기시감을 느끼게 될까 그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소재는 같지만 다르게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 정공법으로 우리가 준비할 것을 충실히 해나가자. 그렇게 촬영했다.”고 말한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 스태프를 10년 이상했다. 이 일이 힘들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님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제 미덕이 있는 영화를 만든다면 입봉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글을 쓰는 동안, 피드백이 없는 그 기간이 힘들고 외로웠다. 영화를 찍을 때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같이 있다는 이유로 시너지가 있는데, 혼자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을 때는 이게 맞는지 불안하고 헷갈렸다. 그리고 생활고도 있고.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제작사는 쉽게 오케이 했나? “10년 이상 같이한 회사다. 나를 10년 이상 보아온 분들이다. 친정인 셈이다. 시나리오를 들고 갔을 때 이준익 감독님도, 대표님도 좋다고 했다. 트랜디한 케이프 무비로 재밌다는 소리를 들었다. 영화제작 들어가기가 쉬웠던 셈이다.”고 말한다.
현빈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신인감독으로서의 불안감은 없었나? 배우들은 어땠는지.
“현빈씨처럼 여러 감독들과 작업을 해본 배우들로서는 신인감독을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현빈씨는 신인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 이런 시나리오, 이 영화를 만들어온 회사, 이 감독이 갖고 있는 생각을 중요시 하더라. 약속보다 빨리 대답을 해 주었다. 타이밍과 운이 맞은 것 같다. 배우들이 비슷한 역할을 연기했었다면, 이번 작품을 할 수가 없을 텐데.. 캐스팅과정도 순조로웠다.”고 밝힌다.
‘이준익 사단’이라고 말하는데 많이 배우셨나? “영화를 모를 때부터 이준익 감독님과 작품을 했다. 영화적으로 많이 배웠다. 시나리오 쓰는 법, 이야기의 구조를 잡는 것, 캐스팅하는 과정, 현장을 컨트롤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준익 감독님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적인 점이다. 담백하고 가식이 없는 것. 그런 인성을 더 많이 배운 셈이다.” (장창원 감독은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 이준익 감독을 멘토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럼, 영화판은 조감독부터 시작한 것인가? “연출부 막내부터 시작했다. 세컨드 2편하고, 조감독 세 편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제 옛날 방식이다. 현장에서 그런 식으로 배우고 입봉하는 경우는 요즘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구누구 사단이라는 도제식 방식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꾼>은 ‘케이퍼무비’를 표방한 작품이다. 처음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다. “케이퍼무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라 주위 사람들이 이런 장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는 통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기꾼을 잡는 사기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필요한 인물을 넣고, 통쾌함을 주려고 구성을 하다 보니 케이퍼무비가 되었고 범죄영화 장르물로 완성된 것이다.”
옛날 <스팅>이 생각날 만큼 사기꾼의 세팅이 꽉 짜여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의 대원칙이 있었다. ‘있지도 않은 인물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을 실재하는 것처럼 만든 것이다. 이 영화의 통쾌함의 본질은 자충수로 스스로 무너지는 복수극이다. 멘탈이 무너질 만큼의 자충수, 변장이라는 코드, 죽음을 가장하여 사라지는 사기꾼 등. 그런 사기꾼이 필요했다.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고,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 그래야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한다.
박성웅이 속고 속이는 판에서 아주 중요한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박성웅 선배는 정말 고수다. 튀지도 않고, 작품에 녹아드는 연기력을 가졌다. 완급조절을 하고, 캐릭터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수월한 마인드를 가졌다. 현장에서 정말 유연하다. 시나리오보다 더 과격하게, 덜 과격하게 요구할 때 원하는 대로 척척 연기해주셨다. 단역부터 조연, 주연급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정말 현장에서 정말 귀엽다. 박성웅 선배의 매력은 의리와 귀여움, 유머러스함이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웃게 만들고, 릴렉스하게 하는 배우이다.”고 증언했다.
영화를 보면, 누가 보더라도 속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속편에 대한 생각은 없다. 아니 할 여유가 없다. 물론 이 영화를 보면 속편을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은 있는 것 같다. 엔딩을 보면 누구한테는 주범이고 공범이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원흉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즌2를 만들 만한 큰 알맹이가 생각 나야한다. <꾼>에 기대서 다음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더 매력적인 것이 있어야할 것이다. 좀 더 영화적인, 창의적인 부분이 채워져야 도전해볼 일이다. 물론, 관객들의 니즈도 중요하고.”
시나리오는 이것 한편만 써뒀나?
“몇 편 진행하다가 엎은 것이 있다. 이 영화 직전에 해 보려고 한 이야기는 내시와 왕의 이야기다. 서로 원한이 있었지만, 서로 우정이 있고... 그런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역린>이 비슷하더라. 그래서 포기하고 구상한 게 <꾼>이다. 사극에 관심이 많다. 현실에 없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다.”
현빈, 유지태, 박성웅, 배성우, 나나, 안세하 등이 나오는 영화, 장창원 감독의 데뷔작 <꾼>은 22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