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감독의 [경주] 연출부와 [후쿠오카] 프로듀서를 맡았던 오세현 감독의 신작 [우수](雨水)가 오늘 개봉된다. [우수]는 “나, 오늘 죽을 거야”라고 말하는 노총각 윤제문이 고향 후배 철수의 자살 소식을 듣고, ‘아는 사람’ 김태훈, 김지성과 함께 차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쌍하고 외로운 윤제문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오세현 감독에게 영화의 숨은 뜻을 들어 봐야할 것 같다. 개봉을 앞두고 감독을 만났다. 광화문 근처 카페이다. 옆 건물은 재건축하는지 부수는 소리가 요란했다.
Q. 장률 감독님은 이 영화를 보셨는지, 무슨 말씀 하셨는지.
▶오세현 감독: “장률 감독님께는 시나리오를 보고선 ‘찍는 데는 문제없겠다’ 하셨고, 가편집본을 보시고는 ‘좀 더 해야겠다’ 하셨다. 좀 더 다듬어 보여드렸더니 ‘이제 되었다’고 하셨다. 감독님은 짧게 말씀하신다.”
Q. 철수는 죽은 게 맞고, 윤제문은 죽으려고 하지만 죽지는 않은 것이다.
▶오세현 감독: “그렇다. 대신 철수와 윤제문이 겹치는 부분이 있도록 연출했다. 철수가 윤제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게. 철수와의 과거 회상이거나 환청이 들리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Q. 장률 감독 작품은 소설가 출신이어서인지 문학적이다. 오세현 감독의 경우는 어떤가.
▶오세현 감독: “난 그림을 전공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만 그리다가 대학에서 영상 쪽에 관심을 가졌다. 미디어아트 쪽. 비디오 작업에 매력을 느꼈다. 회화도 하면서 대학원은 미디어아트를 배우고 싶었다. 그 때 학교에 장률 교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경주]와 [후쿠오카] 작업에 참여했었다.”
Q.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경주]와 [후쿠오카]에 출연한다. [경주]에서는 폭주족으로, [후쿠오카]에서는 권해효의 일본 술집에 앉아있다.
▶오세현 감독: “[경주]에서의 폭주족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장면이다. 감독님이 촌에서 자란 것을 아시고는 ‘네가 해라.’해서 한 것이다. [후쿠오카]는 감독님이 자비를 들여 로케이션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구할 수 있는 배우도 없었다. 대사도 많고, 시를 읊어야 하는 장면도 있어서 이번엔 날 안 시킬 줄 알았는데 ‘내일 그 장면 준비 되었지?’하시는 거였다. 급하게 대사 외워야했다.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배우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은 연기지망생도 어려울 것이다. 상대의 눈을 못 보고 귀를 보면서 연기했다. 극중 역할이 10년 동안 말을 안 하기로 결심한 사람인데 그 자리에서 윤동주 시(‘사랑의 전당’)를 읊는다.”
Q. 영화를 찍다가 즉흥적으로 넣은 장면이 있는지, 윤제문이 바에서 술을 마실 때 한 여자가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다.
▶오세현 감독: “즉석에서 넣은 장면은 없다. 춤 장면은 사장이 그 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철수를 보는데, 헛것을 본 것이다. 환청도 들리고. 과거의 대사를 회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개를 만지고(쓰다듬고), 비린내를 맡은 듯 손을 씻고, 이웃집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철수의 장례식에)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하나로 이어지듯 생각하고 찍은 것이다. 윤제문의 의식의 흐름으로 생각했다. 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Q. 세 사람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가끔 차의 뒷모습을 무음(mute)으로 보여준다. 갑자기 소리가 사라져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상황을 음미해 보게 된다.
▶오세현 감독: “대학에서 영상 작업을 많이 했었다. 단편도. 그때 무음, 사운드를 아예 줄이거나, 뒤로 감기 같은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느낌도 좋고 기분이 좋더라. 이번 장편에서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Q. 영화에서 윤제문과 김태훈은 아주 심각하게 ‘철수는 섹스도 못해보고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오세현 감독: “사실 내 친구의 실제 이야기에서 그 설정을 가져왔다. 섹스를 못해 보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았다. 노새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것과 맞아 떨어진다. 설정을 가져온 것이다.”
Q. 영화를 만들면서 장률 감독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오세현 감독: “장률 감독에게 배운 것은 영화에서는 관련된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변의 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자신만의 좋은 영화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평소 이야기에서 동떨어진 이야기를 집어 넣었다. 대머리 독수리나 얼룩말 이야기처럼.”
Q. 장률 감독은 충무로에서 정상적인, 혹은 일반적인 감독수업을 거쳐 입봉한 사람은 아니다.
▶오세현 감독: “그렇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영상 찍고, 환경에 맞춰가는 스타일이다. 영화를 처음 찍을 때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시 소설은 써봤지만 시나리오를 써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대신 시(詩)를 써서 스태프에게 나눠주며 ‘이게 내가 찍을 나의 감성이다’고 했단다. 스태프들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하듯 영화용어만 썼단다. 그래서 감독이 다시 ”미안하다. 시나리오 쓰겠다“고 하셨고 이해하도록 써셨다고 한다. 감독님은 그렇게 부딪치며 영화를 배우고, 만드신 것이다. <후쿠오카> 때는 스태프를 10명만 구성해서 찍어보자고 그러셨다. 그런 게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Q. 개봉을 앞둔 소감은.
▶오세현 감독: “개봉 날짜가 잡힐 때까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장률 감독님을 옆에서 지켜보니 영화란 것은 찍으면 개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굉장히 설레고, 벅차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Q. 배우 이야기. 윤제문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한 것인가.
▶오세현 감독: “[후쿠오카]때 지척에서 뵈었다. 영화작업 끝나고 알고 보니 근처에 살더라. 자주 만났다. 영화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르다. 귀찮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영화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는 같이 하자고 먼저 말씀해 주셨다. 평소 모습이 자연스럽게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선배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상이 가더라. 선배가 저렇게 받아치겠지 하는 상상이 가더라. 다른 톤의 윤제문이 보이지 않았다.”
Q. 김태훈 배우는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설정이었나.
▶오세현 감독: “이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드라마 찍다가 십자인대를 다쳤다. 촬영 전에는 나을 것 같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얼마 뒤 ‘계속 쩔뚝거릴 것 같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 설정으로 가자고 했다. 현실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태훈 선배는 [경주] 때부터 알고 있었다. 제가 사석에서 본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다. 이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은 장률 감독의 후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인맥은 장 감독님 통해서 아는 사람들뿐이다. 평소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신 덕분이다. 저는 넉살도 없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친하다고 할만한 배우는 윤제무. 박해일 선배 밖에 없는 것 같다. 박해일 배우는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과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 나왔다.”
Q. 그들이 향하는 곳은 광양의 우수천 근처에 있다는 장례식장이다. 우수천은 실재하나?
▶오세현 감독: “‘우수’는 장률 감독의 ‘망종’을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이다. 프리 프로덕션 때 스태프들이 진주 쪽에 ‘우수천’이 있다면서 가볼까 그러더라. 그런데 가볼 필요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건 꿈이니까.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Q. 그런데 광양으로 향할 때, 회상이나 환상처럼 들어가는 장면에서 ‘평택’의 장례식이 나온다.
▶오세현 감독: “촬영은 그곳에서 했는데 처음에는 CG로 다른 이름을 넣을까도 생각했었다. ‘우수장례식장’처럼. 그런데 편집하면서 보니까, 어쨌든 이건 꿈이고 하니. 그냥 둬도 될 것 같았다.”
Q. 결국, 마침내 철수의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오세현 감독: “윤제문은 철수의 죽음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장난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하는 것이다. 꿈처럼. 실제로 친구가 그렇게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모임에 부르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그 마음을 꿈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좋을까...”
Q. 영화에서는 윤제문이 사진관을 운영한다. 장사가 거의 안 된다.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오세현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나의 생활과 전부 연관이 되어 있다. 인쇄소는 내가 프리랜스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거래하는 곳이고, 갤러리도 그렇다. 원래는 연남동의 후배 사진관을 염두에 뒀었다. 그 친구의 사진은 독특하다. 극중 윤제문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후배가 ‘코로나 때문에 사진관 접었다’고 하는 것이다. 어쩌지? 직업을 바꾸나? 기원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사진관이 영화에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울리는 다른 사진관을 찾았고, 서대문 근처의 사진관을 영화에 담았다.”
“김태훈의 핸드폰 가게도 후배가 하는 곳이다. 가게에서 중국음식 시켜먹을 때 ‘형, 문 열어 놔.’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실감난다고 하더라.”
Q. 영화에 마지막 대사에 “얼마나 잘못 온 거야?” “많이 잘못 온 것은 아니고 덜 온 것 같애”라는 대사가 있다. 심혈을 기울인 대사 같다.
▶오세현 감독: “그렇다. 영화를 보면 관객에게 질문하듯이 던지는 대사가 조금씩 있잖아요. ‘우수’에서는 그 부분이 관객에게 던지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분을 신경 써서 봐 주셨으면 한다.”
Q. 극중에서 윤제문이 김지성의 갤러리를 찾아갔을 때, 관장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송해성 감독’이 연기한다.
▶오세현 감독: “권해효 배우 소속사의 최길수 대표와 송해성 감독이 아주 친하다. 송해성 감독도 많이 도와주셨다. 관장 역할을 부탁드렸고, 그렇게 출연한 것이다. 그런데 촬영하던 날 권해효 선배도 현장을 찾아 왔었다. 크레딧에 특별출연/우정출연 어떤 것을 붙여야하나 고민했는데 감독님이 단칼에 ‘그냥 출연진의 하나야. 이름 넣어’라고 하셨다. 송해성 감독은 [고령화가족]을 감독하셨고, 윤제문 박해일 배우와 그렇게 연결이 되었다. ”
Q. 시시콜콜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인물이 있다. 우선, 여권사진 찍으러 온 손님이 두 번째 등장할 때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다.
▶오세현 감독: “[후쿠오카] 때문에 도쿄 갔을 때 어린 여자 친구가 큰 가방을 들고 난간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아마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는 모양인데 그 느낌이 좋았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까. 도쿄 한복판에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영화에 한 번 꼭 사용하고 싶었다.”
Q. 영화 초반에, 사진관 신에서 윤제문이 거리 맞은편을 바라볼 때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오세현 감독: “나는 영화 초반에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제문이 ‘나 죽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뒤에서 빵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영화야’라고 밝히고 싶다. 윤제문은 저런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야한 차림의 여자를 본다. 노총각의 외로움, 욕망의 눈길인 셈이다. 처음 콘티에는 ‘문이 살짝 닫히고 그때 밖을 쳐다본다’ 식이었는데, 시사 때 그 장면 보니 너무 오래 쳐다보는 느낌이 들긴 하더라.”
“개봉을 했으니 이미 제 손을 떠났다. 이젠 각자의 뜻대로 봐주셨으면 한다. 바람은 제 영화를 좋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장률 감독의 숨결이 느껴지는 오세현 감독의 괜찮은 독립영화 [우수]는 24일 개봉되었다. 윤제문, 김태훈, 김지성이 출연한다.
[사진=인디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