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괴물 생명체의 놀라운 종족번식의 욕구를 담은 영화 <에이리언>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1982년 내놓은 <블레이드 러너>는 암울한 묵시록적인 미래를 담은 SF걸작으로 손꼽힌다. 무려 35년 만에 영화의 속편이 만들어졌다. <블레이드 러너>는 전설적 SF작가 필립 K. 딕이 1968년에 발표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꽤 기이한 제목의 소설이 원작이다. 필립 K. 딕의 소설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각색되었으면, 2017년 속편에서는 어떤 DNA가 남아있는지 다시 책을 펼쳐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은 읽지 마시길)
1982년 만들어진 영화의 배경은 2019년이라고 나오지만, 원작소설의 시간설정은 1992년 1월 3일이다. (이날 하루 릭 대커드는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내야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핵전쟁이 일어난 뒤 지구는 온통 핵 낙진에 뒤덮이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대부분 화성으로 떠나간 상태이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낙진의 폐허 속에, 여전히 짙은 진눈깨비만 내리는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릭 대커드’는 샌프란시스코 경찰서 소속수사관이다. 그의 임무는 지구로 숨어들어오는 안드로이드를 찾아 ‘퇴역’시키는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이다.
안드로이드는 ‘인간형 로봇’이다. ‘로즌 조합’(로즌 어소시에이션)이 개발한 안드로이드는 넥서스6 모델까지 만들어져서 거의 인간과 흡사하다. 릭 대커드 같은 현상금 사냥꾼은 ‘보이트-캠프 기법’으로 안드로이드를 판별한다. 일종의 거짓말탐지기 같은 장치를 이용한다. 적당한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 갓난아기의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선물하고 싶다”고. 인간이라면 움찔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평이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런 질문을 연달아 10여 차례 던지면서 짧은 순간 일어나는 반응을 체크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벨6에 이른 안드로이드는 이식된 기억, 후천적 학습에 따라 인간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노련한 현상금 사냥꾼이 필요한 것이다.
이날은 화성의 지구 식민지에서 8명의 안드로이드가 탈출하여 지구로 잠입했다. 두 명은 데이브가 퇴역시키다 치명적 부상을 입는다. 나머지 놈들을 색출, 퇴역시키는 일에 릭 대커드 투입된다. 릭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낙진에 뒤덮인 지구에서 사는 ‘특수인’이라 불리는 지구인의 문제, 안드로이드를 퇴역시켜야하는 현상금사냥꾼의 심리, 그리고, 종말론적 지구현실에서 경도되는 종교문제(머서교) 등 다양한 현상과 마주치게 된다.
영화에서는 릭 대커드가 안드로이드냐 아니냐가 흥미로운 접근법이지만 원작소설에서는 릭의 정체성보다는 안드로이드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이 더 큰 관심사항이다. 자신이 안드로이드인 것을 모르고 있다거나, 특수인보다 덜 인간적인 순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릭과 안드로이드(레이첼)과의 육체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는 다양한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릭의 동료경관이 종이학이나 유니콘을 접는 것을 반복하여 보여주면서, 무언가 심각한 의미를 주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에서는 그런 상징적 방법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취미활동을 보여준다. 지구인들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사치로 ‘동물’을 키우는 것을 낙으로 여긴다. 하지만 핵 전쟁이후 대부분의 생물은 멸종한 상태이고 아주 조금 살아남은 생물은 초고가이다. 그래서 대부분 전기동물을 애완동물처럼 키운다. 주인공 릭 대커드도 전기양을 키우다가 현상금으로 진짜 염소를 사서 키울 생각이었다.
필립 K. 딕의 소설 제목 <안드로이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도 인간처럼 전기양을 키우고 싶어 할까라는 말이다. 종말에 다다른, 폐허에 사는 인간들은 소박하게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한다. 영화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안 된 소설 속 설정은 애완동물 키우기와 관련된 이야기와 정신감응장치와 결합된 종교활동이다. 머서교 같은 유사종교에 심취해 있고, 정체가 불분명한 영적지도자에 매달린다. 그렇게나마 정신세계로의 집착이 힘든 지구인들의 마지막 정신적 피양처가 된 것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