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토리트래블러이다. 저를 그렇게 불러 달라.”
이욱정 피디는 미식가이고, 요리연구가이고, PD이고, 피자예찬론자이다. KBS에 시사교양피디로 있을 때 ‘누들로드’(2008) ‘요리인류’(2015) 같은 걸작 음식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가 어느 해 휴직하고는 '르 코르동 블루'(런던 캠퍼스)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로 요리를 제대로 배우러 간다고 했을 때는 "웬 오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괴짜 피디’는 계속해서 ‘음식’과 ‘요리’, 그리고 고급스럽게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이어간다. 수신료로 버티는 KBS가 괴짜 피디의 레시피와 영수증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결국 이욱정 피디는 프리랜서로 나섰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화덕에서 피자를 굽고, 코로나를 뚫고 전 세계 유명 맛집과 비밀의 주방 안을 헤집고 다닌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OTT 티빙을 통해 공개되었다. 8부작 <푸드 크로니클>이다. 이욱정 피디는 음식을 형태에 따라 고찰해 보았다. 감싸거나(Wrap), 동글납작하거나(Flat), 쌓아올린(Layer) 3가지 형태로 맛의 기원을 찾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회현동에서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카페 같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요리인류 검벽돌집’이다. 예전에 KBS시절 상수역 근처의 피자 화덕이 있던 스튜디오가 떠올랐다.
Q. 일단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수 있었겠다.
▶이욱정 피디: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카메라감독님은 ‘음식이 제일 맛있을 때는 카메라가 먹는다’고 표현한다. 맛있게 김이 올라올 때는 일단 찍어야한다.”
Q. 팬데믹 와중에 해외촬영을 이어갔다. 난관이 많았을 것 같다.
▶이욱정 피디: “우리나라에서 PCR검사를 내가 제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자가격리도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입국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허가 떨어지면 바로 떠나고 그랬다. 우린 4~5명의 정예 요원으로 팀이 구성되어 움직였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모든 일정이 어그러진다. 한 번 나가면 2~3주 장기 출장이다. 정말 하늘이 도우셨는지 한 명도 안 걸렸다. 물론 한국 와서 걸리더라. 근데 난 한국에서도 안 걸렸다.”
Q. 코로나 기간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욱정 피디: “다른 사람은 마스크 낀 채로 촬영할 수 있지만 나는 마스크를 벗고 촬영해야했다. 번거롭기도 하고 위험한 요소가 있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도 외국에서 온 촬영팀을 경계한다. PCR 검사한 것을 보여주고 최대한 조심해서 촬영해야했다. 비행기 값도 제일 비쌀 때였다. 기회가 주어지면 바로 완성시켜야했다.”
Q. <푸드 크로니클>은 언제 기획된 것인가.
▶이욱정 피디: “팬데믹 이전이다. 처음부터 글로벌한 스케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들로드’처럼 이번 프로그램도 비교문화적인 시각에서 만들었다. 한국의 음식도 수많은 식(食)문화 속에서 더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문화라는 것은 거대한 나무다. 줄기가 사방으로 뻗친다. 식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가지에서 가지를 타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라서 팬데믹이 큰 난관이었다. 보통 다큐멘터리는 한 나라에서 찍는데 나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담고 같이 다룬다. 이번 ‘만두’ 편에는 여섯 나라가 나온다.“
Q. 팬데믹 때문에 처음 기획한 것에서 바뀐 것이 있는지.
▶이욱정 피디: “없다. 기획안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촬영을 했다. 찍다보니 20편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KBS시절과 비교하면 제작기간이 절반이다. 노하우가 있어서 가능했다. <푸드 크로니클>은 기획부터 2년. 촬영 제작기간 14개월 걸렸다. KBS에서 대형 기획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기획기간까지 합치면 3년 가까이 걸렸다. <누들로드> 7부작 찍을 때 2년 반이 걸린 것 같다. <요리인류> 8부작은 3년 걸렸었다.”
Q. 티빙이랑 작업하면서 몇 개 국가를 다녔나.
▶이욱정 피디: “이번에 약 10개 나라를 다녔다. 음식 테마로 촬영했기 때문에 맛없는 나라는 잘 안 간다. 물론 모든 음식이 맛있다. 자원이 풍부하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나라 위주로 갔다. 음식재료가 많고, 음식에 얽힌 신화나 전설이 많은 그런 나라는 자주 가게 된다.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운 나라는 농업이 어렵고, 식재료가 단순하다. 단지 생존을 위한 식문화가 있을 뿐이다. 북극이나 사막지역을 가는 것은 대조를 위해서 가는 것이었다.”
Q. 제목부터 거창하다. 음식에 대한 ‘크로니클’(연대기)라니.
▶이욱정 피디: “제가 원래 거대한 작명을 좋아한다. '요리인류'도 그렇고 '누들로드'도 그렇다. '푸드 크로니클'은 끝판왕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정도 속도로 만든다면 5년에 50편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시리즈를 하면서 그 다음 시리즈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이번 시리즈는 오래 전 '누들로드'에서 시작된 셈이다. ‘면’이라는 건 왜 길고 가늘까를 생각하다가 이번 시리즈까지 이어진 것이다. 피자를 포함해서 8가지 음식을 형태로 나눠본 것이다. 그런 호기심들이 축적된 것이 이번 기획이다.”
Q.최근 몇 년 사이 ‘먹방’과 음식 프로그램이 그야말로 홍수를 이룬다.
▶이욱정 피디: “먹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먹방은 사람이 외로워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던 존재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바쁘기도 하고 여러 사람 모이는 게 부담이 된다. 그런 과정에서 먹방 프로그램이 들어온 것이다. 한국 사람은 혼자 밥을 먹지 않았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사이에 그런 게 일반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내 반대편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면 먹방을 하는 것이다. 먹으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Q. 먹방은 대화다.
▶이욱정 피디: “제가 지금 하나 해 보려는 게 있다. <고독한 미식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리메이크 되는데 다큐멘터리 <고독한 미식가>를 같이 만든다. 일드에서는 드라마 뒤에 짧게 만화 원작자가 나와 배경이 된 식당에 가는 장면이 있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50분짜리 다큐 형식이다. 드라마 보는 사람이 다큐도 보는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 만화와 드라마가 왜 인기가 있을까. 먹는 것에서 행복감을 얻는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아늑한 즐거움이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요즘 음식콘텐츠가 넘쳐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한국에서는 <누들로드>가 그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욱정 피디: “그런 과정에서 푸드멘터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변화되어야한다. <누들로드>는 지상파 시절이었다. 그때는 다큐의 전성시대였다. <요리인류> 나오고, 급속도로 채널이 다양화되었고 시청자도 변했다. 다큐의 미덕이 뭘까. 인간은 지적호기심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궁금한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답을 얻고자 한다. 피자를 먹을 때도 ‘이게 왜 이렇게 작지?’ ‘올라가는 게 뭐지?’ 그런 걸 알고 먹으면 더 맛있고 재밌다. 먹방 숏폼이 다 못해주는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Q. 음식 다큐멘터리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욱정 피디: “음식을 통해 더 큰 세상을 이해하는 욕구를 채워준다. 인간은 먹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여러 가지 삶의 레이어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게 충족되어야만 행복을 느낀다. 그 안에는 ‘의식주’가 다 있다. 물질적인 것도 있고 정신적인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왜 사라지지. 이런 큰 질문이 우리 안에 있다. ‘타코’ 편에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타코라는 서민적 음식 안에 여러 가지 스토리와 인생의 질문이 담겨있다. 그게 푸드멘터리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Q. 3회에서는 피자를 다룬다.
▶이욱정 피디: “피자를 좋아해서 피자를 더 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계에는 피자 성지가 세 군데 있다. 나폴리,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다. 아마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포함된 것에 놀랄지 모르겠다. 사실 전 세계에서 피자를 제일 많이 먹는 나라가 아르헨티나이다. 가장 많은 피자집이 몰려있다. 드디어 이번에 가장 유명한 피자가 공개된다. 3편을 통해 피자의 뿌리를 찾아간다.”
Q. 음식, 특히 피자에는 진심인 것 같다.
▶이욱정 피디: “그래서 피자의 계보를 찾아가봤다. 피자는 특별히 두 편으로 만들었다. 재밌을 것이다. 피자든 타코든, 매니아는 이 프로그램을 세 번은 보게 만들자 생각했다. 정보의 깊이가 필요하다. 보통의 다큐, 지상파 다큐와는 다를 것이다. 그때는 남녀노소 모든 시청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니까. 너무 깊이 못 들어간다. 그러면 채널 돌아가니까. OTT는 젊은 층이 많다. 젊은 층도 집중해서 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티빙에서 <푸드 크로니클>을 보는 사람은 관심을 있고, 호기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OTT에서 살아남으려면 깊이 있는 정보를 주되, 흥미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장치가 있어야한다. 차별화 포인트이다. 자막도 상당히 많이 넣었다. 특히 피자에선.”
Q. 요리 말고, 피자 말고 요즘 생각하는 아이템이 있는지.
▶이욱정 피디: “‘마인드앳플레이(MIND at PLAY’라는 제작사를 차렸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병원’이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데 푸드에서 머물지 않는다. 제목은 ‘휴먼 크로니클’이라고 했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기관들을 장기간에 걸쳐 관찰해보는 프로그램이다. 6개월째 찍고 있다. 병원을 다룬 이전 다큐와는 다를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병원의 인사이드 스토리이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휴먼스토리를 담을 생각이다. 내년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큰 작품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 만들 다큐의 중심도 디자인이 될 것이다. 건축이나 옷, 음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모든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똑같은 밀가루로 만들지만 민족마다 형태가 다르다. 사람 모습은 같지만 다른 형태의 집에서, 다른 형태의 옷을 입고,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왜 이렇게 다를까. 예술적이면서, 다이내믹한 다큐가 될 것 같다.”
Q. 이욱정 피디의 마지막 만찬, 마지막을 장식할 요리는? 그게 프로그램이라면.
▶이욱정 피디: “뭐, 마지막은 한참 남았다고 생각한다. 글자 그대로 ‘최후의 만찬’도 생각 중이다. 전 세계 제사음식은 어떨까. ‘타코’ 편에서 잠깐 나온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난 냉면을 좋아하니 냉면을 대접해주고 싶다. 상갓집에 오시는 분들이 즐거워해야할 것 같다. 나의 최후의 만찬은 즐거워야할 것이다. 사람들이 장례식에 왔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다. 다큐제작자로서는 <망자의 식탁>을 만들고 싶다. ‘인간은 죽어서도 먹는다’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만드는 다큐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Q. 티빙 [푸드 크로니클]에서 직접 내레이터를 한 이유가 있는지.
▶이욱정 피디: “한국 다큐멘터리는 조금 특별하다. 영국에 있을 때 BBC 다큐를 많이 봤는데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이 내레이터, 프리젠터가 대부분 프로듀서가 직접 맡는다. 그 이유는 분명할 것이다. 내용을 제일 잘 알고,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제작 현장에 있었기에 살아있는 생생한 정보를 건네줄 수 있는 것이다. 다큐는 그곳에 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는 스토리 트레블러가 필요하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방식을 계속 추구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출연료를 절약할 수도 있다.”
이욱정 피디가 직접 보고, 맛본 만두, 쌈, 타코, 피자, 팬케이크, 샌드위치, 초밥, 케이크 등 세상을 바꾼 8가지 음식은 티빙 오리지널 '푸드 크로니클'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사진=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