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감독 김오안, 브리짓 부이요)는 물방울 화가로 불려오던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의 시선을 통해 예술가 김창열이자 인간 김창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들인 김오안만이 파헤쳐 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브리짓 부이요 만의 통찰력 있는 시선을 통해 한 편의 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예술적인 영화로 탄생했다. 작품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에 내한한 두 감독, 김오안(이하 '오안')과 브리짓 부이요(이하 '브리짓')을 인터뷰로 만났다.
Q. 김창열 화백에 대한 이번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
오안 -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 좋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하고 싶었다. 나는 더 사적으로 영화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의 인터뷰가 작품의 뼈대가 됐다.
Q. 두 감독 다 주업은 사진작가다. 작업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감독의 협업인 만큼 어떻게 함께 영화 작업이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오안 - 이전에 브리짓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10년 전에 큰 사진전을 했다. 브리짓은 시노그래퍼(공연과 전시에 사용하는 시각 디자인을 하는 직업)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취향과 배경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대부분의 영화 작업은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이뤄졌다. 덕분에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작품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우리가 의견에 있어서 서로에게 자유를 많이 줬고 신뢰가 있었기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짓 - 그의 사진 작업을 너무 좋아했다. 그의 작업을 만났을 때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작업에 대해 편안하고 친밀한 감정이 들었다. 공동 감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하게 됐다.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뢰나 감정 같은 요소에 있어서 (작업하면서) 매우 편한 감정을 느꼈다.
Q. 아들인 김오안 감독의 시선으로 김창열 화백을 바라보는 관점도 신기했지만 완전한 제3자의 시선으로 김창열 화백을 바라보는 브리짓 부이요 감독의 시선도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 작품을 촬영, 편집했는지 궁금하다.
브리짓 - 아빠와 아들 사이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임무는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고 그 사이사이에 디렉션을 하는 것이었다. 김창열 화백에게 과거를 말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소리를 반복하긴 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몰랐다. 사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한테도 같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역사를 발견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Q. 아들인 김오안 감독이 내레이션을 하는 구성도 무던한 감동을 줬던 것 같다. 처음부터 내레이션을 통해 작품 흐름을 전개시킬 생각이었는가?
오안 - 우리가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안타깝게도 그가 너무 늙고 그의 프랑스어 실력이 낡아서 그의 목소리를 많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구현할 방안이 필요했다. TV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내는 것 대신, 내 내레이션을 넣어 작품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더 영화 같은 느낌을 낼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전혀 할 생각이 없었는데 설득당했다.(웃음)
Q. 작품 속에는 많은 명장면들이 등장하는데 김창열 화백이 젊은 시절 남북한의 경계를 넘어가려고 할 때 달리기 전 기도를 시작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나를 도와주세요(Mon Dieu, si vous existiez, aidez-moi)"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기에 누구보다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아버지와 연결됐다고 느낀 신이 있었는가?
오안 - 지금은 이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작품을 보면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다. 영화 프리미어 행사에 갔을 때 많은 게스트들이 왔었고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풍경이) 나에게는 영화보다 더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아버지가 두 곡을 노래했는데 한 오래된 장면이 나오는 신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데 얼굴이 나오는 신이 있다. 침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신은 나에게 중요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늙었고 그런 모습을 영상에 많이 담을 수 없었다. 엄마는 그 영화를 봤을 때 좋다고 했지만 우리는 결과물을 아버지에게 (돌아가셨기에)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그 신을 영상에 담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Q. 이 작품은 그저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창열 화백이 살아왔던 세상과 역사의 흐름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을 그의 인생과 예술과 연결 지어 볼 때 많은 감정들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오안 - 사람들은 그를 아주 조용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뒤에 더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오해를 많이 사는 인물이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산다. 엄마 쪽 친척들도 그와 깊게 연결되지 못했다. 장벽이 있었다. 이민자이기에 사회에서 소외된 것일 수도 있다. 고립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이 영화를 설명하고 보여줘야 했다. 아버지가 인간으로서 많은 결을 지니고 있고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들었고 그의 과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점도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그가 전쟁과 이민을 겪은 것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을 찍는 것이 내가 그의 피부를 뚫고, 그에 대해서 좀 더 느낄 수 있는 생각이었다.
Q. 영화 속에 그의 작품과 함께 그의 인생 이야기가 나열되는 것을 보다 보니 큐레이션이 훌륭한 미술 전시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인생, 그리고 그로부터 태어난 작품들의 이야기들은 미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꽤 매혹적인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극장가를 통해 이 영화를 찾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브리짓 - 방금 기자님이 말한 그대로가 메시지다.(웃음) 사람들이 원하는 것, 특별하거나 혹은 평범한 것들, 슬픔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감정이 들어있다.
오안 - 그의 작업들을 아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저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티스트로서의 관점보다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