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470여 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일제 치하에 편찬된 고종/순종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책은 꽤 많이 나왔다. 인터넷에는 실록의 전문(한문과 한글번역본)이 올라와 있다.
200만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박영규 작가가 이번에는 실록에서 ‘반역’과 관련된 부문과 추려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조선반역실록>이다.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조선의 왕도 대단하고, 신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사이트에서 ‘반역’을 검색해 보았다. ‘叛逆’이 351회, ‘反逆’이 197회 등장한다. 일반명사이니 많을 수 있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반역’과 관련된 문장은 왕의 안위와 왕조의 운명, 그리고 신하의 생사와 관련되었다. 500년의 조선역사에서 수십 차례의 반역행위가 있었고, 그에 연루된 사람이 수백 명, 그리고 그 역모의 발각으로 영향을 받았을 사람(가문)이 부지기수일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왕권을 틀어진 채 말이다.
역시 조선사에 있어 반역의 역사의 서장은 이성계가 차지한다. 고려의 무신으로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왕조를 끝장내고 조선을 세운 조선 태조 이성계. 이 책에서는 이성계가 고려 우왕과 최영을 배신하고, 창왕을 내쫓고 허수아비 공양왕을 세우더니, 그 공양왕까지 내쫓고 왕위를 찬탈했다.
그러한 반역자/혁명가 이성계도 반역의 칼날 위에 선다. 그것도 골육상쟁의 상황에서. ‘반역’에 있어서는 청출어람이라고 할 아들 이방원의 휘황찬란한 반역의 칼날을 지켜봐야했으니 말이다.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이 조선의 역사를 ‘반역’으로 문을 연 이래 수많은 왕들이, 장군들이, 사색당파의 신하들이 역모를 꾸미고, 백성을 꼬드기고, 군사를 움직인다.
역사서를 보면 반역의 과정이나 그 분쇄 과정이 거의 비슷하다. 왕이든 신하든 어떤 목적을 갖고 기치를 내건다. 그런데 고변하는 하는 자가 있고, 상소하는 무리가 있다. 던져진 주사위마냥 돌진하는 칼잡이가 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을 쥔 임금은 추국(推鞫)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해진 답을 얻는다. 당대의 사법 시스템은 압슬(壓膝)형과 모진 매로 대표되는 자백시스템이 있으니 말이다.
왕이 만족할 때까지, 반대쪽 당파가 받아들일 때까지 반역의 하수인과 수괴들이 잡혀 들어오고, 고문당하고, 자복하고, 죽어나간다. 물론 그들이 끝이 아니다. 어제까지 당당한 권문세가의 부인이며 딸이지만 애비가 반역자면 노비로 전락하다. 아들은 유배가고, 죽기는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당파가 절단난다.
이 책에서는 이성계와 이방원을 시작으로 많은 ‘반역자’ 혹은 ‘반역자로 몰린’ 역사적 인물을 소개한다. 이성계-이방원 그 부자간의 전쟁에서 복위전쟁에 나섰던 조사의를 비롯하여 ‘토사구팽’에 다름없는 피의 숙청작업, 그런 과정에서 영문도 모르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심온의 이야기가 조선역사의 핏빛 역사를 수놓는다.
물론, 조선의 역사는 반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이시애, 남이, 정여립, 이괄 등 무사들의 반역행위와, 허균의 이야기도 핏빛으로 펼쳐진다.
TV드라마로뿐만 아니라, 충무로 영화판에 무한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조선반역실록’은 여름날 읽으면 더 재밌을 ‘왕좌의 게임’ 텍스트이다. <조선반역실록> 박영규 지음, 김영사, 332쪽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