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영 감독 -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공효진, 신민아가 출연한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보셨는지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고, 2009년 4월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2만 여명의 관객이 들었단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주 좋게 평가한다. ‘한국 역대급 반전 영화’라는 평도 있다. 무슨 깜짝 반전이 있기에? 이 영화는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지난 달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마침내 오늘(22일) 극장에 선보이게 되었다. 물론, 2009년이나 지금이나 이런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은 제한적이다. 분명한 것은 찾아서 보는 수고가 아깝지 않은 영화이다. 부지영 감독을 만나 10년 도 더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지영 감독은 염정아, 도경수가 나왔던 [카트]를 감독하기도 했다.
Q. 2009년 개봉작이 지금 이 시점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한다. 그동안 김기영 감독이나, 클래식 영화들이 디지털리마스터링 되었는데, 이 작품은 조금 의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작년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 이어 올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9)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해서 영화팬을 기쁘게 했다.)
▷부지영 감독: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OTT에는 없고 불법사이트에서 나돌더라. 디지털 변환작업을 하려니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영상자료원에 보관된 프린트(필름)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이 있어야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이었지만 저작권자는 아니었다. 그 당시 저작권이 뭔지 잘 몰랐고, 감독 데뷔가 중요했으니. 이번에 내가 저작권을 사오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이번에 좋게 해결이 되었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Q. 데뷔작이다. 데뷔작에 공효진과 신민아가 출연했다. 데뷔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부지영 감독:“첫 번째 영화로 부산영화제에 가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고. 영화제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당시에도 워낙 핫한 스타였던 두 배우였기에 생각지도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해운대에서 무대인사를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도 갔었다.”
Q. 영어제목이 ‘Sisters On The Road’이 마음에 든다.
▷부지영 감독: “영어제목은 내가 직접 지은 것이다. 사실 우리말 제목 정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처음엔 ‘자매여행’이런 것이었는데 너무 심심해 보였다. 그게 영어제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이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Q. 감독 입봉 전에, 홍상수 감독(오! 수정) 연출부와 이재용 감독(스캔들)의 스크립터를 거쳤다. 꽤 오랫동안 충무로를 지켜온 셈이다.
▷부지영 감독: “그렇다. 짧게나마 그분들의 장점을 배운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을 통해 연기 디렉션 하는 법에 대해 새로 알게 되었다. 이재용 감독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쏟으시는 분이었다.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
Q. 공효진과 신민아는 이미 스타였다. 현장은 어땠나.
▷부지영 감독: “그 친구들이 나보다 어리지만 이미 연기를 해오던 배우이다. 많은 부분 의지할 수 있었다. 공효진은 연기 잘 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고, 신민아는 그때 연기변신을 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었다. 그들과 만나 시너지가 생겼다. 연기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부지영 감독
Q. 처음엔 아빠가 다른 자매가 오랜만에 만나 티격태격하며 정이 든다는 흔한 가족드라마인줄 알고 보다가 뒤로 가면서 꽤 묵직한 설정이 있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했는지.
▷부지영 감독: “첫 영화였다. 시나리오 작법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옆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작법 책에서 배운 것은 ‘어느 시점에는 캐릭터가 좌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한다’도 있었다. 일반적인 구성은 그런 식이다. 많이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가족의 형태에 대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 같다. 제가 ‘모계가족’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 가족구성이 익숙했다. 그렇게 살아도 문제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그런(여성가족) 게 신경이 쓰였는지 어머니는 딸들이 반듯하게 자라도록 더 단호하게 가르치신 것 같다. 보통 가족이라면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의 4인 구성을 생각하고, 그런 모습을 은연 중에 강요하는 것 같다. 많은 감독들은 자신의 첫 작품에 자기만의 고민을 담아내려고 한다. 그게 가족 이야기이고, 아빠를 찾는 이야기가 되었다.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 1995)을 좋아한다. 모계가족의 이야기를 하는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이런 결론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반전 영화처럼 홍보가 되어 아쉬웠다.”
Q. 작품의 배경이 제주도다.
▷부지영 감독: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고, 첫 영화를 제주도에서 찍었다. 보통의 감독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첫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Q. ‘이모’를 연기한 배우에 대해.
▷부지영 감독: “김상현 배우는 당시 성우로 활동했었다. 단편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제가 염두에 두고 있던 연기 톤과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 찾아보니, 김상현 배우는 ‘헤어질 결심’에도 나온다. 서래(탕웨이) 스마트폰 통역 앱 목소리를 맡았다 *
Q. 작품에서 명은이(신민아)는 ‘이모’가 만들어주거나 건네주는 옷을 싫어한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든가, 냄새가 난다는 식으로.
▷부지영 감독: "명은이는 도시로 가고 싶어하는 아이이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회사 취직해서 도시생활을 한다. 자기를 잘 모르는 세계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고향집을 생각하면 꾸질꾸질할 뿐이다. 엄마의 직업도 마음에 안 들고, 아빠도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언니는 미혼에 아이가 있다. 어릴때 맡았던 좀약 냄새를 떠올리면 올드하고 구태의연하다."
부지영 감독
Q. 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꾸었는지, 감독이 되려고 한 계기가 있는지.
▷부지영 감독: “영화보다는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도 아니다. 선배가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영화사에 취직한 것이다. 생계 문제도 있고, 이해관계도 있었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재밌을 것 같았다. 호기심에서 시작했는데 직업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때 사무실에 오고가던 분들이 감독님들이었다. 첫 직장이 영화사라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고,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맡은 일이 홍보업무였는데 저랑 안 맞는 것 같았다. 영화는 좋은데, 영화홍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 때가 언제인가?) 1996, 97년 즈음. 심재명 대표님이나 이런 분들이 활동하며 충무로에 새로운 한국영화가 나오던 시기였다.”
Q. 그러다가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영화감독이 되었다.
▷부지영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연출부 하기 전에 영화아카데미 시험을 쳤다. 그때는 절박했다. 난 영화 비전공자였기에 나 같은 사람을 현장에서 써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학교(영화아카데미)라도 나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두 번 떨어졌고, 한 번 더 시도해 결국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이다.”
Q.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보니 꽤 많은 영화의 [지도교수]로 나온다.
▷부지영 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초빙교수로 2018년부터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Q. 요즘 영화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1990년대 영화학도와는 여러모로 다를 것 같다. 보는 것도 다르고, 다루는 미디어로 차이가 있으니.
▷부지영 감독: “그렇다. 요즘 학생들은 워낙 콘텐츠가 많은 시대에 자라났다. 접하는 것도 많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개성, 깊이, 통찰. 이런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평균이상은 하지만, 거칠어도 개성 있다는 느낌은 예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전한 선택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Q.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부지영 감독: “신작은 드라마이다. OTT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대본 작업 중이다.”
(최근 OTT로 재밌게 본 작품은?) “‘베터 콜 사울’. 변호사 이야기인데 재밌더라.”
Q. 참, 이 영화 개봉 당시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 기억하나.
▷부지영 감독: “하하. 2만 여명? 그 때 워낙 강력한 작품이 같은 시기에 개봉되었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13만 관객이 들었었다. ‘똥파리’는 확실하게, 용기 있는 영화였다. 진정성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저도 재밌게 보았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Q. 아, [카트]에 도경수(디오) 배우가 나왔었다. 도경수는 곧 KBS드라마(‘진검승부’)에 출연한다. ‘꼴통검사’ 컨셉이란다.
▷부지영 감독: “도경수 배우는 아주 유순한 이미지의 배우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강력한 캐릭터를 맡게 되었을까. 연기 변신이 기대된다.”
Q. 2009년 놓친 관객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에게 한마디.
▷부지영 감독: “처음 공개되었을 때 보았던 분이 이번에 다시 보고는 ‘14년 전에는 자매의 로드무비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가족의 형태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고 하더라. 이런 것도 나름 재발견 아닌가. 영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읽혀졌으면 좋겠다. 관객 수만큼 다르게 보더라도 말이다. 이 영화가 낡은 영화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은 1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의 연기를 확인해 보면 즐거울 것이다. 그 배우들의 청춘을 만나보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개봉당시 (네이버영화)
Q. 여성서사가 확실한 영화이고, 가족영화이다. 그리고 당연히 퀴어 무비이다. 감독님 좋아하시는 퀴어 무비를 몇 편 꼽자면?
▷부지영 감독: “당장 생각나는 게 ‘캐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리고 ‘윤희에게’이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좋아하는 영화이다.”
Q. 참, 작품에 쓰인 음악이 좋았다.
▷부지영 감독:“선곡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Danny Boy’ 그리고 ‘Wayfaring Stranger’는 저작권이 없는 곡이다. 가사를 붙이거나 연주로 유명한 곡이다. 영화 안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Wayfaring Stranger’를 부른다.”
부지영 감독
공효진, 신민아, 추귀정, 김상현, 문재원, 배은진(아역 승아)이 출연하는 부지영 감독의 ‘내 아빠는 어디있는가’ 진실추적극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오늘(22일) 개봉한다.
[사진=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