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이뤄진들 인간의 의식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이 이런 일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자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도 이렇게 카메라가 실물을 따라오지 못하는 배우는 처음이다. 매 작품에서 조연, 단역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역할을 해온 배우 서현우는 평소 카리스마 있는 형사, 유쾌한 비서부터 비리 정치인, 양심 없는 담임선생님, 진상 후배 직원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다소 코믹하거나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해왔기에 실제로 만나면 무서운 아우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 그는 환한 미소, 세련된 옷매무새,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로 인터뷰어의 마음을 제대로 녹였다.
그는 이번 영화 '썬더버드'(감독 이재원)에서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태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 작품은 BIFAN 2관왕을 거머쥐었으며 특히 그는 코리아 판타스틱 부문 장편 배우상을 수상하며 '썬더버드'에서의 활약을 증명했다. 차기작인 '정직한 후보2', '유령'까지, 누구보다도 열일하며 보낼 예정인 그는 안 봐도 블루레이 4K인 근미래의 꽃길을 향해 질주 중이다.
Q.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일단 개봉도 축하드리고 수상도 축하드린다.
영화 촬영하고 영화제도 갔고 개봉까지 순항하고 있다. 그 사이 상까지 받게 됐다. 감사한 일이다. 상을 받을 때도 나 스스로도 그렇고 우리 영화가 응원을 받는 느낌이었다. 고생 많이 하면서 찍었던 영화인데 소중한 보상을 이렇게나마 받는 느낌도 있었고 시상식 올라갈 때 스태프들, 배우들 생각이 많이 났다. 액션을 치열하게 찍었다.
관객분들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촬영할 때 코로나 사태가 거의 최고조였다. 그때 정말 마스크 썼다, 벗었다 하면서 촬영했는데 개봉을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중단될까 봐 위기감까지 있었다. 얼마 전에 무대인사도 하고 기자간담회도 했지만 이 자체가 신기하고 소중한 것 같다.
Q. 작품 속에 '콤푸'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콤푸'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사실 도박과는 (당연하게도) 거리가 멀어서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도 신기했다.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돋보이는데 처음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놀랐던 것이 기존에 다뤄왔던 한국 영화아카데미에서 다뤄왔던 소재랑 다르더라. 신이 구성되는 형식이 리드미컬하고 상업 영화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강원랜드, 콤푸, 이런 소재들이 조금은 들어본 적이 있다. 사촌 누나가 강원랜드에서 딜러로 꽤 오래 일을 했다. 이번에 촬영할 때도 오랜만에 자문을 위해 밥도 같이 먹었는데 극중 태균이 손을 다치고 손가락을 잘릴 뻔한 협박도 받는 장면이 있어서 "누나, 이게 너무 드라마틱한가?"라고 물었더니 누나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 깁스 한 분들 많다"라고 하더라. 사뭇 놀랐다.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사전답사를 많이 하셨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전해 들은 것이 많았고 콤푸라는 것도 나는 몰랐는데 동네 식당, 슈퍼, 전당포 외벽에 '콤푸 팝니다, 삽니다'라고 다 붙여져 있다. 우리나라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새롭고 다른 곳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현장에 가서 촬영을 하는 동안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그 자체가 영화였다.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있으면 옆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도 그렇고 태민과 태균처럼 실제로 많이 싸운다. 태균 분장을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런 것들이 나를 태균 자체로 만들어준 것 같다.
Q. 영화 '썬더버드'는 갈등으로 점철된 관계들이 다수 등장한다. 동생 태민은 감정적인 편이고 태균은 어떠한 모욕을 받아도 참는 편. 연기지만 뺨을 기분 나쁘게 맞는다던가 계속해서 노답인 커플에게 휘둘리는 장면들이 많아서 연기하면서도 기분이 나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접근하는 방식이 배우들마다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역할에 들어가는 편이다. 카센터에서 기철이 형이 뺨을 때리는 것도 그 형님이 안 아프게 찰지게 잘 때려서 괜찮았다. 그 역할을 벗어나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차 안에서 사채업자가 찾아와서 손가락 자르기 전에 뺨을 날리는 장면이 있는데 리얼함을 위해서 자처해서 도전을 했었다. 번개가 한번 치더라.(웃음) 그런데 모니터링해 보니 리얼하게 담겨서 순간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결과물에 흡족했다.
Q. 태민이 "차를 돈으로 사? 용기로 사지"라는 말처럼 좀 현대 사회를 대변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는 대사들이 많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기억나는 대사나 명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차는 용기로 산다는 태민이 대사지만 나도 그 대사가 인상 깊었다. 선뜻 듣기에는 철없이 들리지만 그것이 2022년 현실이다. 나 또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다. 그것이 만약 차라고 한다면 서른 살에 타고 싶은 차가 있다. 하지만 그 차를 쉰 살에, 여든 살에 타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선택이 발생한다. '카 푸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아이러니한 지칭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선택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아이러니한 젊은이들이 현실이고 그것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
명대사보다 명장면을 꼽자면 마지막에 태균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택시 회사 직원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장면이 있다. 보통 걱정해야 하는데 그냥 길바닥에 있는 나를 보고 "한 따까리 했냐?"라고 하면서 술자리에 데려간다.
연기에 몰입하니 굉장히 외롭더라. 이것이 현실같이 느껴졌다. 내가 겪는 상황, 내 아픔, 욕망과 집착은 내 안의 문제인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애써 눈 뜨려고 하는 장면은 그 외로움을 에너지로 이겨내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잘 해보자'라고 생각하는, 겨우 하는 반항이었던 것 같다.
Q. 영화 '썬더버드'는 돈으로 인해 가족이든, 사랑이든, 마음 안에 그나마 존재하던 윤리든, 모든 가치가 붕괴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돈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배우 본인은 돈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인지 궁금하다.
돈은 확실히 필요하다. 어릴 땐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부모님에게 반항한 적도 있다. 부모님이 다투시고 돈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다. 그러기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돈을 받아들이는 시각과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썬더버드' 속 태균이 되어버린다.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도 선배님들이 조언 많이 해주셨다. "좋아하는 일을 책임감 있게 하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말하셨다다. 허무맹랑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고 비판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따라오게끔 태도를 취하려고 하고 그때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Q. 앞으로의 차기작, '정직한 후보2'에서 조태주 역, 마이지아의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 영화 '유령'에서 천 계장 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다. 누구보다도 바쁜 한 해가 될 것인데 남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무엇인가?
굉장히 행복한 시점을 누리고 있다. 촬영했던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개봉이 되고 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나 자신도 기대가 된다. 역할들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다. 관객분들에게 작품 속에서 다채롭고 다른 질감의 역할들을 선보일 수 있어서 설렌다.
그리고 '썬더 버드'이야기를 조금 드리자면 (모든 촬영들이 그렇듯이) 정말 치열하게 찍었고 그런 캐릭터들의 향연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캐릭터들이 치열하고 극적인 상황에 내몰려 있으며 목표가 뚜렷하다. 캐릭터의 앙상블과 향연을 영화관에 오셔서 보시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썬더버드'는 오는 21일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