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 등 확연하게 ‘남성’적 영화를 만들어온 윤종빈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처음으로 오리지널 드라마를 만들었다. 6부작 <수리남>(영어제목: Narco-Saints)이다. ‘수리남’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남미의 소국 수리남에서 마약 밀매조직을 운영했던 조봉행이라는 실존인물을 잡기 위해 우리나라 국정원이 펼쳤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K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이다. 윤 감독은 절친 배우 하정우에게서 ‘영화’ ‘수리남’의 감독을 제의받지만 한차례 거절했단다. [공작]을 끝내놓고서 다시 제안을 받자 ‘영화’ 말고 ‘드라마’로 찍자면서 넷플릭스와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초 8부작을 찍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6부작으로 완성된다. 요즘 글로벌대세인 K콘텐츠답게 공개 되자마자 글로벌 순위가 쑥쑥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윤종빈 감독을 만나 넷플릭스와의 작업 소감을 들어보았다.
먼저 ‘수리남’측 반응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난 주 외신에 따르면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사업·국제협력부(BIBIS) 장관은 넷플릭스 ‘수리남’이 자기 나라를 마약국가로 몰고 있다면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Q. 수리남 정부관계자가 이 작품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윤종빈 감독: “노코멘트. 넷플릭스 측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Q. 이 작품을 보고는 다들 ‘수리남’이 화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작품을 만들 때 법률적인 검토 같은 것은 하지 않았나? 넷플릭스는 그런 노하우가 많을 텐데.
▷윤종빈 감독: “넷플릭스가 검토했었다.”
Q. 왜 제목을 굳이 ‘수리남’으로 정했나.
▷윤종빈 감독: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보다 더 좋은 제목이 안 떠올랐다. 픽션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서 다른 이름을 사용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Q. 이 영화는 수리남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마약상의 실제 사건을 다룬다.
▷윤종빈 감독: “실제 인물을 세 차례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녹취록도 보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제 기준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3년이란 세월을 국정원을 위해 일했다는 것이.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많이 들었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생존력을 가진 강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 사람 이야기를 작품 앞부분에 많이 녹여 넣었다. 실제에서 가져온 이야기이다.”
Q. ‘수리남’ 작품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윤종빈 감독: “마약, 코카인의 역사부터 공부했다. 그걸 알아야 가짜 이야기를 제대로 꾸며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만약 마약이 미국에 유통된다면 미국은 당사국의 허락 같은 것은 신경도 안 쓰고 들이닥쳐 마약사범을 잡아간다. 깡패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를 이야기한다)
Q. 이미 파블로 에스코바르 이야기를 다룬 ‘나르코스’ 같은 미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수리남’은 이들 작품과 비교하면 확실히 결이 다르다.
▷윤종빈 감독: “애초에 마약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보지 않았다. 평범한 인물이 사건에 엮이는 언더커버 소재의 작품으로 보았다. 시리즈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힘을 빼고, 감독과 작가로서의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극중 홍어 이야기나 사이비목사가 등장하는 등 한국적 요소가 있다.
▷윤종빈 감독: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녹이려고 한 것은 없다. 실존인물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실제 만나보니 그랬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게 돈 벌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냈다. 홍어 이야기도 실제 인물에서 따온 것이다. 홍어는 가난한 아버지의 상징 같아 보였다.”
Q. 이야기는 실제에 어느 정도 가까운가.
▷윤종빈 감독: “글쎄. 수치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투영된 것은 확실하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이야기도. 그런데 이 시리즈의 핵심은 마지막까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저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 믿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믿을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Q. 취재를 하며 반신반의한 부분은.
▷윤종빈 감독: “영화적으로 표현이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극적이고 클리세가 많았다. 실제 K는 머리를 빡빡 밀고 차이나타운에 들어가서 중국 갱과 싸움을 펼쳤단다. 그런데 너무 ‘디파티드’나 ‘무간도’ 같아서 뺐다. 총격전도 했다고 하더라. 처음 이야기를 봤을 때 이 사람 무슨 깡으로 이랬을까 싶었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 남자의 복잡한 전사를 앞에 넣은 것이다. 그가 보통의 사람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깡패에게 두들겨 맞을 때도, 목에 총을 들이대는 군인과 협상할 때도 그런 마인드를 가졌던 남자이다. 이야기가 처지더라도 보는 사람을 납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6부작이 되는 과정은?
▷윤종빈 감독: “내가 이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기획한 적은 없다. 처음에 영화사에서 영화로 만들자고 했을 때 난 안한다고 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비슷한 것 같고,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든다면 강인구 캐릭터를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왜 수리남에 가는지가 중요할 것 같았는데 2시간에 담는다면 액션에 치중한 흔한 언더커버 소재의 영화로 그칠 것 같았다. 그러다가 ‘공작’ 끝내놓고 다시 제안 받았을 때 시리즈로 하자고 했다. 8부작으로 생각했는데, tvN과 이야기할 때 드라마가 되려면 최소한 10부작이 되어야했다. 너무 길고, 할 이야기도 없다고 봤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와 이 작품을 하게 되었고, 6부작이 된 것이다.”
Q.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윤종빈 감독: “수리남 촬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남미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찍었다. 산토도밍고의 대통령궁에서 찍었다. ‘대부2’에서 쿠바라고 나오는 장면도 그곳에서 찍었다고 하더라. 도미니카에서는 촬영 협조가 잘 이루어졌다. 해가 지는 장면 찍을 때 대통령이 헬기 타고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찍을 분량이 좀 남았다고 좀 늦출 수 없냐고 했더니 그렇게 해 주더라.”
Q. 나머지 장면들은 다 한국에서 커버한 것인가?
▷윤종빈 감독: “제주도에 조경수 심고 영화처럼 꾸몄다. 수많은 장소의 세트와 CG가 더해져서 극적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차이나타운 장면은 전주에 대규모 오픈세트를 짓고 촬영했다. 국정원 안가 장면은 부산에서 찍은 것이다.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나오는 장면은 무주이다. 세트들은 작품 찍고는 다 철거했다.“
Q. 영화에서 사기꾼이 수리남 넘버원에게 한국의 이순신 이야기랑 삼성과 현대를 들먹이며 비즈니스를 펼치는 장면이 재밌었다.
▷윤종빈 감독: “K씨 녹취록을 보면 ‘조봉행’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쳤단다. 삼성 임원이라고 거짓말도 하고, 한국의 자개장을 선물하며 한국의 보물이라고 했단다. 그런 이야기를 차용하여 재밌게 표현한 것이다.”
Q. 박찬호 야구공(싸인볼)은 진짜인가?
▷윤종빈 감독: “전요한(황정민)이 가진 것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영화에서 소품으로 활용한 것은 박찬호재단의 협조를 받은 것이다. 사인볼을 받아서 사용했다. 하정우와 황정민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둘은 돈에 집착한다. 그 욕망이 강력한 교집합이다. 그래서 사업파트너로 좋았던 모양이다. 아마 전요환은 강인구에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저 놈은 내 과야’(나와 같은 부류야!)라고. 박찬호 싸인볼을 주는 것은 그를 진심으로 신뢰한다는 뜻일 것이다. 야구공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한다.”
Q. 시즌2는 찍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인가.
▷윤종빈 감독: “이거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닫힌 결말이니까. 이것 찍는데 4년을 쏟아 부었다. 시즌2를 한다면 내 인생에서 8년을 매달린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다.”
Q. 황정민이 연기하는 마약왕 전요환은 어느 정도 각색된 것인가. 사이비 목사라는 설정에 대해.
▷윤종빈 감독: “가장 크게 각색한 부분이다. 사이비목사로 설정한 이유는 리얼리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주인공이 마약왕과 엮이게 되는지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목사라는 직업이 안성맞춤이었다. 권위와 믿음 같은 것이 생기니. 사이비 목사라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Q.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과 ‘수리남’에서 하정우가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이 겹친다.
▷윤종빈 감독: “가족을 부양하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나쁜 아버지이면서, 또 한 쪽은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저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나 그리움이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아버지에 대한 어떤 관념이 무의식에 많이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다보니 역으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것이 내 작품에 어떤 식으로 투영되었을 것이다.“
Q. 전요환이 한국에서 사이비목사로 범죄를 저지를 때 마약 난교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굳이 그런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윤종빈 감독: “선정적이었나? 집단 난교장면은 이 사람이 어떻게 사기를 치고 나쁜 짓을 하는지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사이비 목사가 되고 나서는 말로써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한다. 그 이전엔 원초적 본능을 통해 사람을 지배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저는 딱히 선정적이라고는 생각 안했다. (마)약을 몰래 먹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Q. 사이비종교에 사로잡힌 사람들 중 아이는 어떻게 되나. 그런 이야기가 빠졌다.
▷윤종빈 감독: “나는 미드 볼 때 서브플롯이 재미없으면 스킵해 버린다. 처음 8부작일 때는 사이비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재미가 없더라. 메인 이야기가 재미가 있어야한다. 서브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았다. 많이 덜어내었다.”
Q.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공개되었다. 소감이 어떤지.
▷윤종빈 감독: “정말 플랫폼의 힘을 느낀다. 영화를 하며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연락을 받았다. 옛날 친구는 물론이고, 자동차보험 담당자도 잘 봤다고 문자를 주더라. 해외에 있는 친구가 골프 치면서 ‘수리남’ 대단하다고 문자 보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도 SNS에 ‘수리남’이야기를 올리더라. 이런 반응은 처음 본다.”
Q. 이번 작품에서도 여성서사는 없다. 여성 캐릭터도 없고. 이유가 있는지.
▷윤종빈 감독: “제 영화는 남자들이 좋아한다. 여자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내 작품에 여성 캐릭터를 넣어보려고 했다. [공작] 때에도. 국정원 실장을 여자로 하면 어떨까? 리얼리티가 없는 것 같았다. 북한간부 중에 여자를 넣어보려고 했는데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수리남]에서도 메인 캐릭터에 없으니 국정원 팀장으로 여성캐릭터로 할까 했는데 역시 억지 같았다. 양날의 칼 같다.”
Q. 6부작 드라마를 한 편의 영화와 비슷한 회차로 찍었다고 한다. 너무 빡빡하게 찍은 것 아닌가.
▷윤종빈 감독:“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예산 때문이다. 리허설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찍고 수정합시다’ 그러기도 했다.”
Q.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계속 찍을 것인지.
▷윤종빈 감독: “개인적으로는 장르물보다는 미니멀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 영화는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제작사 반응도 시큰둥하다. 내가 하고 싶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찍는 게 제일 좋다. 영화라는 매체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손해 보게 하면 안 된다. OTT가 다양해지면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려고 하는 영화는 좀 더 스펙터클한 영화가 된 것 같다. 완전 판타지나 SF처럼 전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