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이 지는 밤'(감독 김종관, 장건재)이 극장가를 찾아온다. 무주산골영화제의 기획, 제작, 제공에 의해 탄생된 이 작품은 김종관, 장건재 감독의 단편 영화를 묶어 만든 옴니버스영화이자 장편영화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 1부, 장건재 감독의 작품이 2부이며 각자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삶의 인연에 관해 다룬다. 무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잔잔하게 존재하는 일상 속에서 희극과 비극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통해 깊은 여운을 전하는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어보기 위해 작품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이하 '김'), 장건재 감독(이하 '장)을 만났다.
Q. 영화 '달이 지는 밤'은 단편 영화를 두 개 이어서 만든 방식의 영화다. 하지만 두 감독님이 만든 영화라고 하기에는 묘하게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김 - 주제적인 것들은 비슷하게 가져갔다. '조제', '아무도 없는 곳', '페르소나'의 '밤을 걷다' 등 '최악의 하루' 때부터 계속 해오던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Q. 두 감독들이 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라니, 굉장히 흥미롭다. 이 작업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장 - 독립 영화를 하더라도 관객들이 많이 봐야 하는 보편성을 염두에 두곤 했는데 이번 기획 자체는 아주 자유로웠다. 이때까지 안 해봤던 것들을 해볼 수 있는 자리를 깔아주셨기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봤다.
Q.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기획, 제작, 지원된 프로젝트 영화다. 무주를 배경으로 한 환상이나 풍경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무주의 삶들 중 어떤 부분을 신경 써서 담아냈는지 궁금하다
장 - 이번 작업은 영화제에서 제작 의뢰를 받아서 만든 두 번째 작업이다. 그전에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도 영화제 기획으로 만들어졌고, 이번 작품도 공교롭게 그랬다. 김종관 감독님과 공간을 공유하며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 무주의 공간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영화를 만들고 그에 지역성을 담아내는 것에 목표가 있었다.
김종관 감독님은 옴니버스 영화 작업에 대한 경험이 많다. 그런 감독님과의 협업하는 방식, 공동 연출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같이 만드는 것처럼 소통하면서 완성하는 작업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며 작업했다.
Q. '달이 지는 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영어 제목인 'Vestige'를 검색해 보니 자취, 흔적이라는 뜻이더라. 한국 제목과 영어 제목이 다르다.
김 - 처음에는 둘이 따로 제목을 지었다. 장건재 감독님은 '달이 지는 밤'이었고 나의 경우에는 영어 제목인 'Vestige'였다. 그래서 한국 제목은 달이지는 밤으로 하고 영어 제목은 'Vestige'로 했다. 이야기 자체가 흔적, 삶의 이면에 있는 죽음에 대한 것이기에 인연에서 삶을 느끼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로 지었다.
장 - 두 이야기 모두 하룻밤 혹은 이틀 밤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달이 지는 시간, 깊은 새벽, 깊은 밤에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비밀, 그것들이 드러나는 순간을 묘사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달이 지는 밤'이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Q. 무주산골영화제가 기획, 제작, 제공한 작품인 만큼 무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주의 아름다운 배경과 이야기가 어우러져 보내는 이야기의 힘이 강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장 - 이번 작업은 무주의 공간을 찾아야 했다. 랜드마크인 공간 이외에도 랜드마크가 될만한 공간이 있었다. 일상적인 공간, 무주에 사는 시민들에게 익숙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관점으로 장소들을 찾고 촬영했다.
김 - 장건재 감독님 영화가 먼저 촬영됐다. 내가 촬영하기 전에 무주의 여름을 먼저 찍으셨다. 1차 편집본을 촬영하기 전 봤는데 감독님 영화와 내 영화를 연결 지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 좋은 공간들을 많이 찾아내주셔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여름은 모든 것이 진득하게 살아 있는 계절이기에 계절의 힘, 생명의 힘이 느껴지더라.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라진, 겨울에 있는 쓸쓸한 묘미가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촬영 들어갔을 때 코로나 시작이어서 무주가 텅 빈 공간이 됐다. 같은 공간들이라도 대비가 되어 색다른 느낌도 났던 것 같다.
Q. 연출에서도 조금은 비슷한 지점이 보인다. 빛을 쓰는 방식 또한 익숙하고 그로 인해 두 작품이 더욱 잘 이어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김 - 나의 경우, 쉽게 말하면 느리다, 하나의 것들을 자세히 확대해서 느긋하게 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연출 스타일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두 영화 다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장건재 감독님의 영화는 삶과 죽음이 일상적으로 붙어있는 것 같고 일상적인 묘사다. 내 영화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삶을 느끼는 과정이고 죽음과 삶이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다.
더불어 장건재 감독님이 여름이란 공간의 무주를 다뤘다면 나는 겨울의 무주를 다뤘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에서 오는 그런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것도, 삶도, 공간도 그렇고. 비슷한 듯 다른 것들에서 작업하면서도 재미를 느꼈고 관객들에게도 그런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장- (김 감독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다.(웃음) 김종관 감독님의 관객으로서 어떻게 이 조건들을 다루고 있고 공간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해 느낀 바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옴니버스 작업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을 선호하는데 영화적인 최소한 장치를 통해 대화 안의 비밀들 같은 것들을 담아보고 싶었다. 김종관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이미지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명하지 않지만 영화적인 언어로 이미지화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Q. 그 말처럼 영화적인 언어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해 김종관 감독님의 작품 중 기억나는 연출이 있었다. 1부에서 배우 안소희의 경우 행동에 슬로모션이 걸린 것 같은데 그 반대편에 걸어오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왠지 빠르게 걷는 느낌이 들었다.
김 - 일상적인 것을 묘하게 보는 시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내 영화 속에서는 일상적인 곳이 빈 집이 되고, 사람들이 안 다니는 곳이 된다. 그러한 묘한 시간대에서 죽음이라는 전제가 끼어드는 것이다. 걷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해석하신 것이 맞다. 노인들은 그냥 정상적인 속도로 걷지만 배우 안소희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그런 것들에서 드러나는 비일상적인 지점들이 보이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
Q. 두 감독님들이 만들어낸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배경과 소품에 담긴 진심이라는 점인 것 같다. 호프집은 진짜 호프집 같고 폐가는 진짜 폐가 같고, 마치 소품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이 미술적인 배경이 뛰어나다.
장 - 호프집의 경우 무주 시내에 있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가게다. 우리 회식 장소로도 쓰고 촬영 장소로도 썼다. 허름하고 장사가 잘 안되는 곳 같은 느낌으로 꾸몄다. 대체적으로 일상적이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기에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던가 빈자리가 담겨 있는 것 같다.
Q. 앞서 말이 나왔듯, 이 영화는 연출 방식에 있어서 상업적인 보편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어떻게 보면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넣든 해석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기에 스코어를 넘어 이러한 지점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김 - 처음부터 우리가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작업이고 깊은 관계의 관객이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작은 관객들이 보더라도 그 안에서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에 욕심을 내는 것보다는 이 과정 자체를 잘 그리고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시작되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 다른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장 - 숫자보다도 이 영화를 잘 봐주시는 좋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Q. 영화제를 통해, 그리고 앞으로 극장가를 통해 이 작품을 만나게 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 - 무주산골영화제에 오신 분이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작지만 내실 있고 좋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영화제다. 올해 10회를 맞이했고 10년 동안 작은 영화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데 그러한 영화제가 만든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영화다.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귀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개봉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관람하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개봉관을 잡지는 못하겠지만 배우님들과의 대화를 준비하고 있으니 극장에 오셔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
김 - 무주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계절조차도 아름답다. "영화제는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제다. 진솔하고 편하고 소박하다. 관객분들이 오셔서 그 기운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한편, 영화 '달이 지는 밤'은 오는 9월 22일 극장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