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코코순이]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미얀마(버마) 미치나(Myitkyina)를 점령한 연합군이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함께 사로잡힌 ‘여성’들의 행방을 밝히는 ‘진실추적 르포무비’이다. 당시 연합군은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일본계 미군통역병을 통해 이들 ‘여성’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바로 미국 전시정보국(Office of War Information, OWI) 심리전팀이 작성한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서 49호〉이다. 이 문서에는 한국출신인 20명의 명단이 있다. 그중 ‘KOKO SUNYI’라고 기재된 인물을 좇는다. 이 조선의 여인은 어떻게 저 먼 미얀마의 전장으로 흘러 들어갔을까. ‘코코순이’ 이야기는 2018년 KBS 시사탐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에서 다루었던 내용이다. 그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던 이석재 기자가 후속보강취재로 극장판 다큐멘터리 ‘코코순이’를 완성한 것이다. 이석재 기자를 만나 ‘코코순이’의 역정(歷程)을 들어보았다.
Q. [코코순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우선 그 과정부터 소개해 달라.
▷이석재 감독: “2018년에 ‘시사기획 창’에 있을 때 특별취재팀이 2부작(광복절특집 위안부2부작-국가는 그들을 버렸다)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취재를 더 할 것이 있었고, 후반작업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에도 계속 미련이 남은 것이다. 더 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취재를 계속 해 나갔다. 재(再)제작은 할 수 없을 것이니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는 틈틈이 취재를 한 것이다. 그러던 중 김형진 피디(KBS미디어)를 만나게 되었고, 영화판 제작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틈틈이 취재한 것과 2018년 방송분을 조합해서 영화 [코코순이]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김형진 피디는 ‘코코순이’의 일등공신이다. 배급 문제도 해결하고. 구성과 연출에 있어서 내 편을 많이 들어주었다.”
Q. 2018년 방송된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아쉬움이 있었는지.
▷이석재 감독: “광복절 특집으로 2부작을 준비했는데 제작기간이 2~3개월로 촉박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 당시 행정기관의 제적부(除籍簿)를 통해 ‘박순이’라는 인물을 찾았다. ‘49호 문서’의 ‘코코순이’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100퍼센트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확인을 못한 것이다. 이번엔 그걸 확인한 것이다. 그런 아쉬움.”
Q. 경남 함양에서 ‘코코순이’가 박순이임을 찾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석재 감독: “‘49번 보고서’에는 이름과 나이,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곳은 진주였다. 네 분이 진주 출신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진주에서 보관하던 행정문서가 소실되었다. 그 다음에 ‘함양’ 지역의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경남 함양군 석봉면 구룡리’에서 박순이라는 기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박순이의 사망신고를 한 박원학 씨를 찾아낸 것이다. 일단 이름을 찾아내고, 함양의 노인단체 명단과 대조하며 찾는 작업을 이어갔다. 노인정도 다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그 분이 제주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 봤더니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파고들어 결국 박수이 할머니의 딸과 외손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적부는 개인정보이다. 일반인의 개인 열람은 불가능하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학술목적으로 열람이 가능했다. 함양 행정관청에 협조요청하고 조사를 이어갔다.”고 취재 과정을 전한다.
Q. 동사무소 캐비닛에 쌓여있는 옛날 서류 더미를 뒤져 이렇게 누군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실제 가능한 모양이다.
▷이석재 감독: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딸의 확인을 받았다. 제적부를 통해 박원학 씨까지 찾은 것이다. 당시 ‘순이’라는 이름은 흔했다. (함양) 석국(면)에만 열 명 넘게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이로 분류하고 그 대상을 압축시켜나간 것이다. 2018년에는 딱 거기까지 취재할 수 있었다.”
Q. 해외 취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이석재 감독: “2018년 취재 때는 ‘시사기획 창’의 다른 기자들과 분담했었다. 저는 미국을 집중 취재했다. 다른 기자들이 미얀마, 스위스, 영국, 일본을 취재하고. 이번에 추가 촬영을 위해 미국을 다시 갔다. 원래는 미얀마와 중국을 취재하려고 했었는데 중국은 코로나 때문에 막혔고, 미얀마는 쿠데타가 일어나서 불발에 그쳤다.”
Q. 49호 보고서 작성자와 당시 관련인물들을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이석재 감독: “2018년에 보고서 작성자인 원-로이-챈(Won-Loy Chan) 대위의 후손을 먼저 찾았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장교와 병사들의 자료는 잘 보관되어 있었다. 살아 생전에 그리고 나중엔 그들의 후손이 그런 자료들을 출신 대학이나 지역 박물관에 기증을 했다. 후손을 한 분 찾았는데 인터뷰를 거절했다. 챈 대위의 직계후손은 못 찾았고, 대신 작품에 나오는 그분이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Q. 미국에도 그런 유튜버가 활개를 친다는 것이 놀라왔다. ‘텍사스 대디’란 인물을 취재한 과정은.
▷이석재 감독: “‘텍사스 대디’(토니 모라노)란 인물도 2018년에 인터뷰를 시도했었다. 그때 일본의 아베 정부와 친일학자, 그 뒷단에 존재하는 극우친일 유튜버가 있었는데 그들의 활동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었다. 당시에 그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번에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미국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동영상을 많이 찍었다. 트럼프에 대한 것도. 그래서 우익단체 유튜버를 취재한다고 접근했다. 질문을 몇 가지 건넸더니 자신이 옛날에 ‘위안부’에 대해서도 찍었다고 말하더라. 그때부터 질문을 그쪽에 맞췄다. 발끈하였지만 끝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취재관련해서 말자하면 미국에서는 주마다 법률이 엄격하다. 전화녹취나 문을 막고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따라 들어가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램지어 교수 인터뷰 시도 장면이 그런 식으로 그친 것이다. ”
Q. 국사편찬위원회와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이석재 감독: “그렇다. 편찬위원회에서 한시적으로 위안부문제와 전쟁범죄 조사팀을 꾸려 그 문제를 파고들었다. 전쟁포로 심문보고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었고, 그 결과를 우리와 공유하며 취재가 이뤄질 수 있었다. 2018년에도 동행취재를 많이 했었고, 이번에도 황병주 박사님이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했다.”
Q. 그동안 꽤 많은 위안부 관련 영화/다큐멘터리가 나왔었는데, ‘코코순이’에서 특이했던 것은 피해자, 즉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육성 인터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랬는지 궁금하다.
▷이석재 감독: “그렇다. 처음부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배제하려고 했다. 주변 인물만 통해서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물론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넣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코코순이’에서는 관련자로서의 위안부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 뺀 것이다. 소녀상도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기존의 위안부 관련 다큐와 극영화들은 절절한 증언이 등장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할머니의 일생을 표현하는 것을 떠나 드라이하게 접근하고 싶었다. 아마, 그래서 2시간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조금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코코순이’를 취재하고 다큐멘터리를 완성시킨 이석재 감독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호주에서 언론정보학을 공부했단다. KBS에 입사한 후 사회부, 정치부, 그리고 법조 출입기자를 거친 뒤 대부분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근무했다.
Q. 이런 역사적 아이템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는지. 지금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이석재 감독: “‘시사멘터리 추적’에서 취재하고 있다. 지난 5월 시작한 KBS 탐사프로그램이다. ‘시사멘터리 추적’은 2~30분짜리 아이템을 두 세 개씩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시사기획 창’에서 ‘쪽방촌 계급사회’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여기로 넘어왔다. ‘9시 뉴스’처럼 데일리에서도 탐사를 할 수 있지만, 호흡이 긴 것을 하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기자라면 대부분 위안부나 베트남 양민학살 같은 현대사의 민감한 부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KBS 이석재 기자가 그동안 취재한 아이템을 찾아보았다. 그동안 ‘기획보도- 환경운동연합, 기업 관공서 상대 장사’(2005), ‘현장추적-위험천만 수입타이어’(2007), ‘‘급발진...그들은 알고 있다’ (2012) 등의 취재로 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였다. ‘기자협회보’ 기사에 따르면 ‘한우안전성 논란’이라는 기사제목도 눈에 띄었다.
Q. 그럼 데일리 뉴스와 비교하여 ‘긴 시간’ 다루는 탐사프로그램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울러 탐사프로그램 기자가 갖추어야할 자질이 있다면.
▷이석재 감독: “끈질겨야할 것이다. KBS는 광고에서 자유롭고, 공영방송이니까 좀 더 취재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아. 아니다. 그 말은 취소한다. 광고를 하는 다른 언론에서도 우리보다 뛰어난 취재물을 내놓은 방송사, 신문사가 있으니 그 말은 취소한다.”
이석재 기자는 말을 줄였지만, 취재과정에서 송사도 많이 겪어야했다. 실제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최근 ‘시사멘터리 추적’에서 방송된 '얼굴들, 학살과 기억'(8월 7일 방송)편과 관련하여 베트남전 참전용사 관련단체가 여의도 KBS를 찾아와 시위를 벌였다.
Q. [코코순이]의 후속이야기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석재 감독: “그렇다. 아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순이 할머니가 살았던 내몽골의 조선인 집단거주마을(고성촌)을 취재하고 싶다. 따님 말씀에 따르면 박순이 할머니와 같이 사셨던 분들이 있다. 젊었을 때 다 같이 그곳으로 오셨다고 말했다. 그들이 서로 ‘대구댁’, ‘진주댁’이라고 불렀다는데 ‘49번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Q. 일본이 패전하고, 조국이 해방되었는데, 그 이국만리에서 고생한 그들이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얀마에서 그곳까지 흘러가게 되었을까.
▷이석재 감독: “슬픈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선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당시 미얀마에서 싱가포르로 갔었다. 그곳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가 유일했다. 생존하신 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고향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박순이 할머니는 싱가포르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통해 중국까지, 그 곳까지 가신 것 같다.”
Q. ‘코코순이’가 개봉하다. 개봉을 앞둔 소감.
▷이석재 감독: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된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동안의 작품과 비교하여 이 작품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실지 궁금하다.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좋게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꼭 한 번씩은 봤으면 한다. 학생들을 위해 다시 제작이라도 하고 싶다. 역사교재로 쓸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주었으면 한다.”
KBS 이석재 기자의 진실추적 르포무비’ ‘코코순이’는 오늘(8월 25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