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카터’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원래 넷플릭스와의 작업을 염두에 둔 것이었나.
▷정병길 감독: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끝내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었다. 당시 서울에서 시작하여 북한으로, 그리고 중국까지 내달리는 리얼타임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 때는 넷플릭스가 없었을 때였다.”
Q. 게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정병길 감독: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겨했다. 게임이 주는 긴장감, 재미가 이 영화에 투영된 것 같다. ‘카터’가 공개되고 코지마 히데오가 제 영화를 보고 게임 같다고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영화는 주원을 중심으로 원테이크 액션의 묘미를 잘 살렸다.
▷정병길 감독: “서울, 평양, 중국까지 돌진하는 것을 리얼타임으로 만들면 어떨까 계속 생각했었다. 원테이크로 만든다면 현장감, 사실감이 있을 것 같았다. 계속 한 테이크로 가면 루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카메라워킹을 좀 더 빨리 진행시켰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Q. 제목 ‘카터’에 대해서.
▷정병길 감독: “시나리오를 쓴 뒤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 친구에게 보여줬다. 적합한 제목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부탁했더니 10개 정도를 보내주더라. 설명도 곁들여서. 한국 사람에게도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있잖은가. 촌스럽다거나 세련되었다든가. ‘카터’는 자체가 운반자라는 뜻이 있다. 극중에서 주원은 목숨 걸고 하나(김보민)를 운반하는 셈이잖은가. 그 느낌이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카터’라고 하면 한국 사람에겐 날렵하고, 빠른 느낌이 좀 들어서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 “목욕탕신은 원래 SF영화에서 사용할 장면이었다”
Q. 목욕탕 신을 이야기해보자. 초반에 주원의 파격적인 노출 장면이 계속 이어진다. 이 장면 찍을 때 어땠는지.
▷정병길 감독: “처음 생각했던 것은 목욕탕 신이 아니었다. 조폭들이 있는 곳에 떨어지고, 그곳에서 고문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장소 헌팅을 하다가 문을 닫은 목욕탕을 발견했고, 이전에 쓴 시나리오 장면이 오버랩된 것이다. 그래서 주원 씨에게 내용을 말했더니 좋다고 했다. 자신도 몸을 만들고 있고 그런 장면이 신선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노출장면은 찍기가 쉽지가 않았다. 스턴트맨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무술감독에게 이야기했고, 스턴트 팀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흔쾌히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목욕탕 바닥이 미끄럽고, 옷을 벗고 해야 하니 보호대를 착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목욕탕 바닥 전체에 쿠션을 깔았다. 안전을 위해서 깔았는데, 습기 때문에 쿠션이 떨어지고, 미끄러지더라. 그래서 촬영을 중단하고 깔아놓은 쿠션을 다시 다 제거했다. 제거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리는데 스턴트 팀이 다 달라붙어 작업했다. 한 시간 만에. 이걸 메이킹 다큐로 찍었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뭉클했었다. 어쨌든 목욕탕 장면을 이번에 써먹어서 다음에 쓸 수 없게 되었다.”
Q. 그 장면은 어떤 시나리오를 위해 쓴 것인가. 밝힐 수 있는지. 호불호가 갈리지만 가장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라서.
▷정병길 감독: “SF 영화의 한 장면이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옥상에서 떨어지는 두 남자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 목욕탕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총격전을 벌인다. 그 시나리오에서는 여탕으로 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뛰쳐나가고 그런다. 한국적인 SF인데 무척 만들고 싶은 영화이다. 예산도 좀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다. 좋은 장면인데 ‘카터’에 넣어버린 셈이다. 후회는 없다.”
● ‘카터’는 거친 먹으로 그린 수묵화
Q. 영화에 사용된 음악에 대해서.
▷정병길 감독: “나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 날 것 같은 수묵화를 많이 그렸다. ‘카터’는 거친 먹으로 그린 수묵화라고 생각한다. 수묵화에 어울리는 음악이 뭘까 고민했다. 태평소나 꽹과리의 힘이 세더라. 어떤 음악을 넣어도 뚫고 나온다. 처음부터 국악을 베이스로 한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일렉으로 들어오더라도 국악의 느낌을 가질 것이다. 여자의 목소리가 악기처럼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주원이 목숨 걸고 북으로 호송하는 하나(김보민)가 등장하는 장면은 어떤 식으로 촬영이 진행 되었는지. 그 어떤 위험한 액션에도 항상 등장한다.
▷정병길 감독: “어린 아이이고, 대역을 쓸 수밖에 없다. 어려 보이고, 보민이처럼 키가 작은 대역을 구하긴 쉽지 않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스카이다이빙하는 분 중에 작은 분이 있었고, 스턴트 팀에도 아담한 분이 계셨다. 아역 대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다. 스카이다이빙은 실사로 찍고, 보민이 얼굴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열차에 매달리는 장면, 카 체이싱 장면에서도 대역을 썼다. 물론, 멈춰 있는 장면 등에서는 본인 얼굴로.”
Q. 스카이다이빙 장면은 CG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이다. 어떻게 촬영하였는지.
▷정병길 감독: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할리우드에서 진행하려고 알아보니 비용이 꽤 높았다. ‘카터’는 ‘190억 언더’의 영화라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한국의 스카이다이빙 단체와 접촉해서 프리비주얼 작업한 것도 보여주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의욕만 앞선 것일 수도 있어 검증이 필요했다. 용인에 가면 실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닥에서 바람을 불어 스카이다이빙 효과를 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해서 되는 것이라면 하늘에서도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습하고, 막상 하늘에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결과가 너무 절망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낙하 시간이 더 짧은 것이다. 한 번 뛰어내릴 때 담을 수 있는 분량은 3~40초밖에 안되었다. 한 번 찍고, 또 올라가야했다. 비행기 정비, 준비과정이 있어야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하루에 10차례 이상 찍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 10번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찍을 수 있는 것은 고작 5~6분밖에 안 된다. 스카이다이빙 하시는 분이 처음이라 긴장해서 실수를 하기도 했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지만 몇 달을 지상의 시설물에서 연습한 것을 알기에 그렇게 촬영하기로 했다. 그런 방식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비주얼 앵글을 잡아 주었다. 몇 회 차를 진행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스카이다이빙의 매력에 빠졌다. 정식 교육받고, 자격증 따서 혼자 뛰어 내리려고 한다.”
● 뛰어내리면서 찍은 샷 “드론이 손보다 빠르지 않더라”
Q. 정신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워킹을 보면서. 촬영감독이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핸드헬드도 아니고, 드론으로 날아다니면서 찍은 것도 아니고, 뱅뱅 돌아가는 촬영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정병길 감독: “일단 문용군 촬영감독은 전체 그림을 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찍고 싶은 샷을 디자인하면 카메라 장비를 선택하게 했다. 드라마 부분을 찍었고. 나머지 액션장면은 스턴트맨이 아니면 찍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스턴트맨과 무술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와이어를 달고, 뛰어내리면서 찍었다. 드론을 많이 활용한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생각보다 손으로 찍은 앵글이 많다. 드론이 손보다 빠르지 않더라. 사람이 와이어를 타고, 뛰어내리고, 붕 떠오르며 찍었다. 돼지가 실린 트럭 체이싱 장면과 낭떠러지에서 돌아오는 장면은 드론이 아니라 와이어를 맨 무술감독이 찍은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한 장면이라 많이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
Q. 존 윅을 연출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해 달라.
▷정병길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존 윅3’을 찍을 때 ‘악녀’의 오토바이 신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내 작품을 좋게 평가하시고는 자기 작품에서 오마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감사하게도 인터뷰에서도 그런 걸 언급해주시고, 찬사를 보내주셔서 몸돌 바를 모르겠더라. 그 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있을 때 그가 제작을 맡고, 내가 연출을 하는 블록버스터 논의가 있었다. 둘이 만나면 좋은 시너지가 있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위험하다고 만류하더라. 나의 할리우드 입봉작으로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 말에 따랐다. 내가 쓴 ‘카터’ 시나리오를 보고는 이것부터 찍어야한다고 그랬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었다. 자기는 제작사가 있고 언제든지 프로듀서로 참여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넷플릭스와 연락해서 ‘카터’를 찍게 된 것이다.”
Q. 예전에 성룡이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도 배우가 위험한 액션연기를 직접 하는 것에 대해 스튜디오의 반대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턴트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정 감독 영화의 액션 장점이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병길 감독: “‘내가 살인범이다’와 ‘악녀’를 찍고 나서는 비주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내가 만든 작품은 대단한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들고 나서 반성한 작품이다. 그런데 ‘악녀’의 오토바이 비주얼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 같다. 조금 신기했다. 에이전트들이 날 만나러 한국에 왔고, 계약하자며 미국으로 초청했다. 만날 수 없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존 윅’에서 액션 작업을 했던 제이제이 페리(J.J. Perry)와 친해졌다. ‘존 윅’ 사격연습장에 가서 몇 백 발 실탄사격을 해보기도 했다. 그때 내 액션에 대해 다들 궁금해 하더라. CG가 아니란 사실에 놀라고, 카메라 기종에 대해 물어보더라. 오토바이 체이싱을 하며 칼싸움을 펼치는 게 신선하다고 그랬다. 제이 제이 페리는 곧 넷플릭스 작품으로 정식 감독 데뷔를 한다. 이 자리를 빌려 응원한다.”
(제이 제이 페리 감독의 작품은 제이미 폭스가 주연을 맡은 ‘데이 시프트’이다. 지난 1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Q. ‘카터’의 주연으로 주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정병길 감독: “카터가 눈을 떴을 때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눈을 가진 배우로 주원이 적합했다. 눈망울이 우수적이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할 수 잇다. 예전에 악역도 잘 한 것도 기억나고, 포텐이 있다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움, 두려움, 의심해야하는 상황들. 그런 것이 카터에 투영된다면 보는 관객들도 응원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원테이크로 액션을 찍으면 클로즈업에 한계가 있다. 풋 샷이든, 웨스트 샷 (Waist Shot)이든 눈이 느껴지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어질어질한 액션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
▷정병길 감독: “이런 액션을 왜 하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나느 새로움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앵글로 비주얼을 만드는 안정적인 작업보다는 도전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작가나 화가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거리감이나 괴리감으로 내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새로움을 갈구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만화책, 만화영화를 보면서 많이 소진된 느낌도 들고,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액션을 그림으로 보고, 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연출을 했다.”
Q. 마지막 장면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폭발하는 장면이 담겼다.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식으로 연결될 것인가.
▷정병길 감독: “속편이 나온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단둥으로 가서 중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고, 과거로 돌아가서 마이클 베이의 삶을 조금 그려볼까? 카터가 북에서 한정희를 만나는 것을 스파이물처럼 찍을 수도 있다. 그때는 원테이크라기 보다는 액션스릴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Q. 목욕탕신과 관련하여, 영화가 무엇인가. 비주얼을 위해 내러티브를 희생시키는 감독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병길 감독: “데뷔작 ‘우리는 액션배우다’은 다큐멘터리이다. 따듯한 시선을 가졌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치밀한 구성에 액션을 가미한 치밀한 구성을 지녔다. 그 때는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악녀’를 찍으며 이야기가 중점이 되는 것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담이지만 그림을 그렸을 때도 그러했다. 사생화대회 나가면 예쁜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나는 배수로에서 본 나무, 하늘을 그린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 때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 평범한 신이나 안정적인 영화보다는 도전하고 싶다. 기존 것을 답습하기는 싫다. 도전 이것이 없다면 영화하는 게 무의해지는 게 아닐까.”
“목욕탕 신도 그렇다. 카터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카터는 낯선 목소리이지만 듣고 따라야한다. 이 여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낯선 사람이 다가온다면? 관객들은 카터가 어떤 심정일지 믿어야할 것이다. 초반에는 판타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넷플릭스 ‘카터’가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했던 영화고 가장 힘들었던 영화고 가장 행복했던 영화”라고 말한 정병길 감독은 조만간 할리우드로 진출할 것 같다. 오우삼이 될지, 박찬욱이 될지는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