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정식종목의 하나인 육상경기 중 ‘경보’라는 것이 있다. TV를 통해 처음으로 운동선수들이 이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보면 - 선수들에게는 많이 미안하지만 - 조금 장난스럽고, 웃겼다. 오리궁뎅이처럼 실룩거리며 걷는 것이 과연 스포츠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운동경기가 그렇고, 모든 선수들이 그렇듯이 이 운동 또한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저마다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경보’를 다룬 영화가 오늘 밤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 시청자를 찾는다. 백승화 감독의 2016년도 작품 <걷기왕>이다.
주인공 만복이(심은경)는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고질병이 있었다. 멀미가 심하다. 버스를 타도, 경운기를 타도, 하다못해 집에서 키우던 소를 타도 멀미를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버스도, 택시도, 당연히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봤다. 학교를 갈 때에도 2시간을 걸어서 가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공기 좋은 강화도에 산다는 것. 우리 만복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강화도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단다. 그런 만복이에게 담임선생님이 최적의 운동을 소개한다. 바로 ‘경보’였다. “너 잘 걷겠다!”가 이유이다. 만복이는 이날부터 경보에 열을 올린다. 공부에는 별로 소질이 없고, 미래도 그렇게 밝은 것이 아니니. 이제 그의 또 다른 생이 펼쳐지는 셈이다.
<걷기왕>의 매력은 강화도 고등학교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순정과 인심이 느껴지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조화이다. 평범한 시골집의 다정다감한 아버지(김광규)-어머니(김정영), 학생들에게 각자의 꿈과 열정, 간절함을 이야기하는 담임선생님(김새벽), 재능이 있든 없든 어깨를 두드려주는 육상코치(허정도), 그리고, 끝까지 좌절하지 않은 육상부 선배(박주희), 공부에 재능이 없지만 끝까지 책을 붙들고 공무원의 꿈을 키우는 단짝(윤지원). 아, 빠졌다. 오토바이 배달을 하면서도 힙합의 꿈을 잊지 않는 이재진까지.
<걷기왕>은 심은경이 전국체전에서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느냐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스포츠영화이냐 아니냐는 더더욱 중요하지 않다. 육상부 선수들끼리의 동료애, 브로맨스가 돋보이고, 입시지옥 학교 교실 풍경이 애처롭지만, 다들 그런 이상한 경쟁의 시간 속에서 자라고, 강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영화음악이다. 중간에 ‘학생의 자질을 무한 긍정 시각’으로 바라보는 담임이 리코더(피리)를 든 학생 하나에게 “넌 음악을 잘 하겠구나”며 격려해주면서 영화음악은 ‘타이타닉’의 선율이 흐른다. 그 리코더의 불협화음이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다.
이 영화에 안재홍이 특별출연했단다. 끝내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자막에 ‘소순이’란다. “음메~ 헐”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간절히 원한다면 전 우주가 도와줄 것이고, 승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다들 아는 그런 뻔한 주제를 다루지만 심은경의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처럼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다. 독립영화가 다들 그렇듯이 간절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7월 4일(화) 밤 24:30 방송.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