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때는 비싼 스시를 못 먹어 억울해 하더니 영화 '육사오(6/45)'에서는 무려 로또 1등 당첨 종이를 잃어버리는, 그야말로 억울 대참사에 빠졌다. 억울한 연기를 잘해도 세상 잘 하는 이 배우, 이번 작품을 통해 '억울한 연기 1인자'라는 훈장이 달리지 않을까.
영화 '육사오(6/45)'(감독 박규태, 이하 '육사오')는 바람을 타고 최전방까지 날아든 로또 1등 당첨 용지를 갖게 된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 분)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1등 당첨액은 무려 약 57억 원. 졸부의 꿈을 안고 제대 후 황금빛 미래를 꿈꾸던 천우는 잠깐의 방심으로 인해 용지를 바람에 날려버리게 되고 이는 야속하게도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북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된다.
이를 되찾기 위해 천우는 고군분투하지만 이미 용지는 북한 병사 용호(이이경 분)에게 들어간 후. 결국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천우와 용호는 협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남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이 바르게 돌아갈 리 만무하고, 그들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북측은 벼랑 끝 전술을, 남측은 계략을 꾸미며 서로에게 으르렁대기 바쁘다.
하지만 북한에서 남한의 로또 1등 당첨 용지를 들고 있어 봤자 소용없는 상황, 그리고 남한에서도 로또 용지가 없다면 당첨금을 못 받기에 남북한 군인들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들은 당첨금을 반으로 나눠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동료들과 함께 사상 최초 '로또의 불시착'으로 인한 남북연합 대작전에 나선다.
'육사오'는 남북한 군인들과 그들의 관계를 중심에 둔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그러기에 캐릭터의 힘이 무엇보다도 강해야 했던 작품이었고, 박규태 감독은 그 목표를 제대로 성공시켰다. 처음 로또 용지를 발견한 병장 천우부터 이후 만나게 되는 북한 병사 용호,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로또를 둘러싼 연합작전에 합류하는 다양한 남북한 측 캐릭터들의 등장은 극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버릴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게 제 역할을 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의 연속적인 등장 덕분이다. 새 인물들이 남한과 북한에서 펼치는 서사는 극에 생동감을 더한다. 특히 박세완 배우가 맡은 용호의 여동생 캐릭터가 가장 인상 깊다. 위기에 처했을 때 백마 탄 왕자의 도움을 받는 클리셰를 떠나 당당하게 서사의 중심에 선다.
더불어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실제 현재 남북 관계처럼 그들 또한 협상이라는 거대한 과제, 그리고 당첨금을 얻으려는 연합작전에 있어서 예측 불가한 황당한 사건들을 맞닥뜨린다. 보통 코미디 영화들은 황당한 사건을 제시하며 무리수를 두곤 하는데 '육사오'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 전반에 웃음지뢰가 될 사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후 떡밥을 회수하는 것마냥 그때 그때 터뜨리며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한다.
이에 배우들의 티키타카 또한 한몫한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코미디 장르에 진심인 그들은 (애드리브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신들린 코미디 연기를 펼친다. 특히 배우 음문석의 윽박지르는 연기, 고경표가 원치 않았던 결과에 웃픈 표정을 짓는 연기, 이이경이 독일어를 눈물지으며 해내는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코미디 영화 '육사오'는 여느 역사를 배경으로 한 남북 관계 관련 전쟁 영화보다도 북한에 관한 현실적인 고증이 잘 되어있다. 특히 이전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대해서도 지적했던 점이었던 '북한 사람들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무지하게 표현하는 편견 섞인 연출'이 이 작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남한 측 인물들은 북한 측 인물들을 연민하지 않으며 협상 내내 그들은 대등하고,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주한다. 더불어 실제 북한 내의 정치적 상황(고난의 행군 관련 이야기), 계급 체계가 담긴 서사와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대북 삐라(전단지), 독일 전쟁 영화를 보는 모니터, 대북방송에 쓰이는 스피커 같은 소품까지도 현실적인 고증이 갖춰졌다. 이는 이때까지 남북한 사이의 이슈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올해의 작품 속에서도 드물게 연출된 부분이다.
최근 영화를 보며 이렇게까지 웃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현재 8월, 연말이 아직 가까워지지도 않았지만 2022년 최고의 코미디 영화 TOP3에 감히 이름을 올려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영화를 미리 재단하거나 평가절하하지 말고 극장을 찾아가 필자처럼 2005년작 '웰컴 투 동막골'을 봤을 때 느꼈던, 그 17년 전의 감동을 부디 '육사오'에서 느낄 수 있길 바란다. 8월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