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TV+ 드라마로 잘 알려진‘파친코’의 원작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은 소설 ‘파친코’의 개정판 출판에 맞춰 한국을 찾은 것이다. 작가는 12일 예정된 ‘2022 만해문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상태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한국인 ‘한민족-자이니치(재일 교포)’ 가문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은 최근 인플루엔셜 출판사를 통해 재번역, 재출간되었다.
새로운 번역과 출판에 대해 작가는 “내가 오랫동안 쓴 작품이라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다. 개정판은 번역에 대해 많이 상의할 수 있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번역을 이끌 수 있었다”며, “지난번과 비교할 때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1~3부(고향·모국·파친코)로 구성된 영어 버전의 큰 틀이 유지됐고, 챕터별 한국어 제목은 사라졌다. 소설 중간에 사용한 인용구가 그대로 반영된 것도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작가는 ‘파친코’가 전하고자는 메시지와 관련하여 책에 쓰인 자신의 사인과 서명에 대한 설명부터 했다. “저자 사인회를 할 때마다 책의 앞쪽 면지에 ‘우리는 가족이다’(We are a family)이라고 썼다. 그렇게 쓰는 이유가 우리가 가족이라는 개념 말고는 연결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이번 인플루엔셜(출판사) 버전에서는 ‘우리는 강한 가족이다’(We are a powerful family)이라고 썼다. 특별히 ‘파워풀’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한국 사람들이 파워풀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를 바란다. 전 세계적으로 더 인정을 받아야하고, 더 사랑을 받아야한다. 제 책을 읽고, 제 서명을 받은 사람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간에 정말 파워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게 중요하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같은 가족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면 못 해낼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또 하나의 이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인데 세계의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톨스토이를 읽을 때는 러시아 사람이 되어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된다.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 사람이 되고, 헤밍웨이를 읽을 때는 미국 남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감정이 주인공에 이입되어 내용에 더 공감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독자가 한국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민진 작가는 애플TV+ 드라마와 관련한 질문에는 일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드라마에서 보여준 한국 사투리, 오사카 사투리’와 관련하여서는 “사투리는 작품을 쓰는데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책을 쓸 때 많은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뿐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지, 말을 할 때 언제 숨을 쉬는지, 말하는 방식, 몸짓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온 한국인인지, 경상도 사람인지, 이북사람인지. 어떻게 다른지 그 어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영어는 언어의 특성상 존댓말이나 반말이 없어 좀 더 민주적이거나 공평한 언어인 듯하다. 그래서 약간 예의가 없이 들릴 수도 있다. 언어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 사회에서는 비주류인 아시아계, 한국계 작가가 ‘그들이 잘 모르는’ 시대의, 사람들의 가족사를 담은 작품이 널리 읽혀지는 것에 대해 작가 나름의 분석을 하였다.
“2017년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고 북 투어를 할 때 만나는 독자는 한국인도 아니고, 아시아계도 아닌 99퍼센트가 백인과 흑인이었다. 실제로 내 책을 읽은 독자는 백인, 유럽인, 흑인이었다. 나는 19세기 미국과 유럽의 문학을 좋아했다. 그런 책을 많이 읽었고, 그런 책들을 통해 작가의 훈련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책들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내레이션이 펼쳐진다. 그런 스타일이 미국과 유럽의 독자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은 것 같다. 19세기 당시에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화가 많이 난 저널리스트들이 소설을 통해 비판을 많이 했었다. 내가 처음 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쇼핑을 마구 하고, 신용카드를 마구 쓰고 아빠랑 싸우는 내용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월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갔을 때는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인종주의 차별, 계급 차별, 문화적 제국주의 등도 다루고 있는데 이런 게 19세기 영문학에서 많이 다루는 스타일이어서 그런 면에서 제 책을 좋아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백인들만 있어서 내가 뭘 잘못 했나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요즘에는 한국 사람들도 제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나서 엄마가 이해가 간다. 아빠랑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 말을 하는 한국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 의미가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삼촌과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와 북클럽을 만들어 세대 간의 대화를 하게 한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진 작가의 다음 작품은 ‘American Hagwon’이란다. ‘학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파친코’ 소설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 ‘파친코’를 반드시 사용해야한다고 말했었다. 전 세계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본어라고 생각했다. 그 단어를 알아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교육열’과 관련해서 한국 사람이라면 다 이해하는 말일 것이다. ‘아카데미’(Academy)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라고 그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미국 이민 1.5세대이자 역사 전공자인 이민진 작가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비롯해 ‘파친코’, ‘아메리칸 학원’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을 담은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을 써나가고 있다. 지난 4월 문학사상과의 판권 계약 종료로 절판됐던 <파친코>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7월 27일 1권이 출간되었다. <파친코 2>는 이달 말,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올 겨울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이민진 작가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 한국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갖는다. 9일 오후 2시에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사인회를, 10일 오후 7시에는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북토크를 개최한다. 북토크는 2,000석 규모이며, 독자들로부터 사전에 받은 질문과 현장 질문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사진= 인플루엔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