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 ⓒ BH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긴 공백기를 깨고 극장가에 상륙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에서 하와이행 항공기 내에 갇힌 딸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아빠 역으로 등장한 이병헌 배우는 극 중심에서 단단한 뿌리 같은 역할로 자리 잡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 재혁처럼 실제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기에 재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재혁은 평범한 캐릭터"라는 그의 말처럼 비행기 내 승객들 모두를 대변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서의 재혁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Q.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긴 공백기를 가졌다. 이번 작품을 선보이게 된 소감은 어떠한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분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긴 시간 관객들과 만나기 힘들었던 상황인 것 같다. 오랜만에 무대 인사하면서 새삼스럽게 이런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처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항공기 내에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 재혁 역을 맡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재혁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재혁이라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특별한 트라우마가 있고 과거가 있다. 직업적으로도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캐릭터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평범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다. 나는 재혁이라는 역할을 그렇게 해석했다. 평범하지만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선에서 봤을 때 그 항공기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배우 이병헌 ⓒ BH엔터테인먼트 제공
Q. 전작 '싱글라이더' 때 아버지 연기가 인상 깊었는데 이번에도 딸을 지키기 위해 애절하고 측은한 상황에 처하는 아버지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이전에 맡았던 아버지 연기와 차별화를 두려고 했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싱글라이더' 때도 내 아이가 있었지만 이제는 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고 '비상선언'에서 딸로 나오는 친구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이기에 연기하는 것에 대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부모로서의 입장, 그리고 내가 이 비행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는 사람의 입장, 그 두 가지가 부딪히고 갈등하고 더 고민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그것이 제일 다른 것 같다.
Q. 실제 아이를 둔 아빠로서 연기에 도움이 됐던 부분이 있는가?
배우들이 가장 확신을 가지고 것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연기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이 많이 나온다. 상상해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운좋게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 연기할 경우에는 확신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다. 아기 아빠로 연기한다는 것이 내게 그런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는 아들이지만 극중 자녀는 딸이다. 딸이 있는 다른 지인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확실히 딸이 있는 아빠들과 아들이 있는 아빠들의 대화 방식이나 놀아주는 모습이 달랐다. 그런 것들이 참고가 됐다.
Q.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실제로 공황장애를 겪어봤다고 언급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촬영이 지속됐을 때 힘듦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다 낫는 게 힘들다고 그러더라. 상황에 따라 증상들이 발현이 될 때가 있다. 재혁처럼 공황장애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텐데 비상약이 있다. 항상 가지고 다닌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도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다. 비행기는 처음 세트장 갔을 때 봤는데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것을 360도 굴리기 위한 장치들이 되어있고 할리우드에 비교했을 때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 장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배우들이 몰입할 수 있었다. 폐쇄 공포까진 느껴지지 않았다. 상황에 이입하려고 해도 세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Q. 답변을 듣다 보니 엄청난 스케일의 세트라는 것이 느껴진다. 긴장도 많이 됐을 것 같다.
그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를 돌리는 것은 잘 못 본 것 같다.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승객 중에 안전벨트를 꼼꼼하게 안 매서 떨어지는 사고가 생기거나, 그런 것에 있어서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기에 긴장했다. 처음 시작할 땐 매번 돌리기 전마다 긴장했지만 며칠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아~ 돌아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했다.
배우 이병헌 ⓒ BH엔터테인먼트 제공
Q. '비상선언' 이후 차기작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팬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을 텐데 어떠한 논의가 있는가?
늘 작품에 대해서 나와 논의를 한다. 프로젝트가 들어왔을 때 여부를 물어본다. 가끔 오게 되면 보통은 작품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거나 시간 스케줄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정말 너무 빠르게 우리나라 콘텐츠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 지금보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면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좋은 작품으로 만나 뵙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