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파란만장한 삶을 연극무대에 이어 스크린에 옮긴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미들네임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라틴어 단어로 보면 ‘Amadeus’는 ‘신’(神)을 뜻하는 ‘DEUS’와 관련이 있다. 전작 <사피엔스>로 지적 충격을 안겨준 이스라엘의 박학다식한 유발 하라리 교수의 신간 제목은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이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더 진화된 미래의 인류는 과연 신에 범접한 ‘호모데우스’일까.
이달 초 발간된 <호모데우스>는 6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역사, 철학, 군사, 종교, 문화, 생물, 심리,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인류의 진화를 파헤친 하라리 교수는
먼저 책의 앞부분에서는 그 옛날 동굴에서 돌도끼를 들고 있던 인류가 오늘날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근원에 대해 살펴본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한다. 하라리 교수도 인터넷, 그중 ‘구글’과 ‘페이스북의 괴물 같은 성과에 주목한다.
몇 가지 이야기해 보자. 최근 우리나라 대선 기간에 화제가 된 것 중 하나가 ‘구글 빅데이터’이다. 전 세계 모든 인터넷 이슈를 스캔(크롤링)하는 ‘구글’에서 누가 더 많이 언급되었는지에 따라 인류(네티즌/유권자)의 심리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 메인 언급이냐 가십이냐 등 주관적인 문제까지 다 포함한다. 이미 ‘독감 지도’만으로도 구글(트랜드)파워는 놀라운 능력을 과시했다.
하라리의 언급으로 ‘민주사회의 여론’의 정의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투표’라는 행위보다, 갤럽의 여론조사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실질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그 시점의 인류(네티즌/유권자)의 최상의 선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미래는 그렇게 뽑은 정치가보다 더 나은 선택은, ‘인간 정치가’보다는 차라리 구글(플랫폼)의 수치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의 미래란 것이다. (마블코믹스의 비전 같은!) 구글은 어쩌면 인류(네티즌/유권자)의 판단을 최종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누구를 뽑을지, 어떤 정책을 선호하는지, 기대치가 무엇인지, 플랜비가 무엇인지. 아마도, 가까운 미래엔 어리석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자신 없는 정치지도자 대신 ‘구글의 제시어’에 따라 인류가 움직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AI 자동차에 몸을 의지해서 도로를 달리는 인류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꼭 구글, 페북, 아이폰, HAL이 아니더라도!)
이미 ‘애매모호한 인류’의 결정권한은 인터넷에 넘어갔다. 페이스북의 경우 당신이 ‘좋아요’를 어떤 아티클에 몇 번 한 것에 따라 당신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당신 동료보다, 가족보다, 그리고, 당신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 무슨 영화 볼까?”, “데이트할 때 뭘 입지?” 같은 시답잖은 수준이 아니라, “당신은 이번에 문재인을 찍을 거죠?”라고 농담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라리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미래공상과학소설이나 할리우드 SF가 아니란 사실은 작년 이세돌과 싸웠던 알파고의 최근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구글의 바둑선생님이든, GM의 자동주행차량이든, 애플의 시리든, 아니면 삼성의 빅스비의 10년 뒤 버전이 되었든 ‘호모데우스’는 신에 가까운 존재, 혹은 상황을 의미한다.
이제는 이런 두꺼운 책을 읽을 필요도, 그리고 소개하는 기사를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호모데우스의 스마트폰은 벌써 당신의 독서스타일이나 취향에 따라 600여 페이지의 이 책에서 꼭 필요한 문장이나 단어만을 적당히 알아서 축약시켜 다양한 방식으로 ‘인지시켜’줄 것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유발 하라리는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너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다. ‘미래의 역사’는 인류에게 ‘과정의 고통’을 생략하는 압축의 신으로 다가온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호모데우스 표지(김영사)/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마블)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김영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