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은 한 남성의 변사 사건이 일어난 후 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주요 용의자 서래(탕웨이 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해일은 극 중 미묘한 감정을 통해 연민과 애정을 서래에게 느끼는 감정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Q. 영화 '헤어진 결심'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칸 영화제에 갔을 때 영화인을 환대해주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고 더불어 한국 영화가 많이 소개되고 알려졌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든 감독과 배우분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일궈놓은 것을 잘 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룰을 정확히 몰랐는데 전날 관계자분들에게 폐막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거기서 수상의 기대가 커지고 (만약 연락을 받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고 했다. 가차가 없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는 상황이었다.(웃음) 폐막식에 갔을 때는 안도감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님의 대부분의 작품이 칸에 초대를 받아서 수상을 했으니 이번에도 수상을 해야 내가 민폐가 안 되는 것이고 일조를 한 것이지 않냐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에 마음을 졸인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수상을 했을 때 "이제 됐다!"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동시에 송강호 선배님도 같이 수상을 하셔서 국내 영화제인가 생각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해준은 어떤 캐릭터인가?
이야기의 순서에 따라 감정이 변하는 캐릭터다. 잔잔했던 캐릭터에게 해일이 몰아치는 느낌으로 감정이 몰아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자신의 직업의 자긍심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순전히 서래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그런 것들이 서서히 모래탑에 금이 가듯, '붕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인물이다. 배우로서는 쉽지 않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다.
Q. '헤어질 결심'의 해준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형사처럼 평범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감정선을 가진 특이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특별한 부분이 있는가?
수많은 양복을 입어봤다. 해준스러운 느낌이 뭘까 생각했다. 의상들이 대부분 클래식했다. 직업적인 특성상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고 스마트 워치로 증거 자료를 모으는, 클래식하지만 테크놀로지도 활용하는 두 가지 측면을 부각했다.
해준이라는 캐릭터는 형사라는 역할과 충돌되고 모순되는 말의 내용과 말투, 단어 선택이 특이했다. 이것이 박찬욱 감독님의 색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설정이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고 흥미롭고 호기심이 강한 질감으로 다가왔다. 대사를 하면서 불편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새롭고 매력적이었다.
Q. 극 중에는 해준이 서래에게, 서래가 해준에게 쌓아나가며 뱉어내는 명대사들이 많이 나왔다. "마침내"라는 구절도 그렇고, 대사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던만큼 그것을 전달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자신의 대사는 무엇이었는가?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인 것 같다. 감독님만의 장르를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의 문장이라고 본다. 시사회를 본 분들도 그렇고 지인분들이 그 표현을 곱씹으시더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대사다. 그리고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들 수 있는 거야"라는 말도 기억난다.
Q. 바닷가에서 사라진 서래를 해준이 찾는 신, 박찬욱 감독의 말로는 탕웨이 배우는 거저 먹고(웃음) 박해일 배우는 정말 고생해서 찍었다는 신이 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등산도, 범인 추격도 해야 했는데 여러모로 힘들지는 않았는가?
감독님이 (촬영 전) 고생 좀 해야겠다고 했다.(웃음)
Q. (웃음) 함께 호흡을 맞춘 탕웨이 배우와의 연기는 어떠했는가?
다른 문화권에 있는 배우와 긴 호흡을 맞춘 것은 처음이었다.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탕웨이 배우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긴장과 궁금함이 있었다. (만나 보니) 자신의 고집이 있는 배우더라.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배우였다. 나한테 해준의 대사를 녹음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리딩을 할 때 만났는데 언어가 다른 세 버전의 대본을 내려놓는 것을 보면서 바로 한국어 녹음을 해줬다. 이때다 싶어 나도 중국어로 녹음을 해 달라고 했다.(웃음) 감정을 연결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줬다.
탕웨이 배우도 감정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들이 있었다. 어느 날 낮에 촬영하다가 탕웨이 배우가 발목을 접질렀다. 바닷가 앞 화단에 목발을 내려놓고 앉아 있는데 너무 처량해 보이더라. 마스크 쓰니까 아무도 못 알아보고 지나가더라. 왠지 그 날은 그 모습이 서래 같았다. 깊이 이미 캐릭터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감정에 상처를 내면서 그 캐릭터에 집중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탕웨이 배우는 서래라는 인물을 내면에서 괴롭히면서 나오는 연기가 보였다. 이것이 쉬운 방식이 아닌데 그것을 해냈고, 캐릭터가 이해가 되어야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가능한 배우였다.
Q. '헤어질 결심'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는가?
직업이든 신념이든 뒤로 한 채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사람처럼 뒤로 하는 경험을 모두가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구렁텅이에서 새 삶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붕괴되는 경우도 있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러한 이야기를 깊고 넓게 감독님의 방식으로 표현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나이를 좀 더 먹어가면서 여러 사람 만나보면서 이런 것을 느낀다. '헤어질 결심'은 간혹 시간대 별로 꺼내서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좀 시간이 흘러도 다시 느껴보고 싶은 인생이 담겨 있는 영화다.
Q. 코로나 19 사태를 뚫고 극장가를 찾아줄 관객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메시지를 남긴다면 무엇인가?
요즘 날씨를 보니 우리 영화에 안개라는 설정이 생각난다.(웃음) 영화를 즐기시고 여운이 남으시면 영화 엔딩곡까지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그 가사와 함께 작품을 음미해 주시면 그날 밤은 안개 같은 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봉 시기에 날씨가 흐리다고 들었다. 물론 기상청 예보는 바뀔 수 있지만 말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