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이 지난 17일 김기영 감독 영화에 대한 검열자료와 문헌자료 컬렉션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영상자료원 도서관에 직접 방문해야 열람이 가능했던 검열자료를 영화연구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살펴볼 수 있도록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를 통해 공개했다. (▶김기영 검열자료 컬렉션 바로가기)
영상자료원의 '검열자료 컬렉션'은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다. 영상자료원은 1998년 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신인 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부터 195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약 1만 건에 이르는 검열자료를 기증받아 보존해 왔다. 2010년대 초부터 이를 순차적으로 디지털화하여 원내 도서관을 통해 열람 서비스해오고 있다. 영상자료원은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열람하고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검열자료를 나누고 독해 가이드와 분석글 등을 추가하여 온라인 컬렉션으로 제공해오고 있다. 지난해 이만희 감독의 작품을 필두로 올해 유현목, 김기영 감독의 검열자료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김기영 감독은 한국영화사, 나아가 세계영화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과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김기영 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함으로써, 그의 영화가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인 부산에서 미공보원(USIS) 영화제작소에 입사하여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던 김기영 감독은 <죽엄의 상자>(1995)로 장편 극영화에 데뷔했다. 이후 그는 현재 가장 유명한 한국고전영화가 된 <하녀>(1960), 그 연작이라 할 수 있는 <화녀>(1970), <충녀>(1971) 등 1990년까지 총 32편의 장편 극영화를 발표했다. ‘김기영 감독 검열자료 컬렉션’에서는 32편의 연출작 중 24편의 영화에 대한 검열 관련 서류들을 원문으로 열람할 수 있다. 함께 공개되는 김기영 감독의 문헌자료 컬렉션 249건의 목록과 해제자료 역시 김기영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금련>(1981)에서 <느미>(1979)까지: 수난의 70년대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된 최초의 감독 이만희와 <춘몽>(1965)을 연출하여 음화제조죄로 기소된 유현목과 달리 김기영은 널리 알려진 검열 관련 스캔들이 없다. 김기영의 불온성과 전위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해 널리 알려진 검열 일화가 없다는 것은 다소 특이한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당시 화제를 모았던 <하녀>, <화녀>, <고려장>(1963) 등 그의 대표작들에 대한 검열 이슈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검열 일화는 없지만 검열대에 오른 작품은 많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그의 대표작들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후기작, 대략 197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1980년대초 사이 영화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 다수의 영화 창작자들이 엄혹한 유신체제에 순응하여, 오히려 검열과 관련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기영의 사례는 흥미롭다. 그의 작품세계가 7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괴이하고 불온해져 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반금련>과 <느미> 등이 있다. 1975년 4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반금련>의 경우 1976년부터 1981년 사이 5년의 기간 동안 무려 4차에 걸쳐 검열을 신청했으나 모두 불합격되었고, 1981년에 이르러서야 대규모 재편집을 통해 검열을 통과했다. 1979년 <느미> 역시 시나리오 검열에서 개작 판정, 1차 본편 검열에서 불합격되었다. 이외에도 1969년 작 <미녀 홍낭자>의 경우 미신 조장 우려, 귀신의 잔혹한 복수 장면 과다 등으로 제작 신고가 반려되었고, 제작사가 미신적인 요소 장면 22개, 귀신 장면 40개를 삭제 혹은 변경한 뒤 제작 신고가 수리되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 대한 검열서류 원문은 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의 컬렉션 페이지(www.kmdb.or.kr/collectionlist/collectionGroup)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검열자료와 함께 공개된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은 영상자료원에 보존 중인 김기영 감독 관련 시나리오, 콘티 등 문헌자료를 정리한 컬렉션이다. <하녀>, <고려장>, <충녀>, <이어도> 등의 연출작을 포함해 <백년한>(이종기·김화랑, 1963), <황혼의 만하탄>(강범구, 1974)과 같이 그가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한 작품, <천국의 계단>(1970년대 집필), <내일은 비>(1980년대 집필), <아라리오 전설>(1990년대 집필), <생존자>(1997년 집필, 유고) 등 끝내 영화화되지 못한 미완성작과 관련된 총 249점의 각종
문헌을 포함한다.
[사진자료=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