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의 불꽃같은 삶, 서정시(詩)와 투쟁가(歌)를 스크린에서 만난다. 1978년 ‘시인의 마을’과 ‘촛불’ 등이 담긴 첫 앨범 [시인의 마을]로 가수 데뷔한 정태춘은 서정성 짙은 시적 언어에 시대의 분노를 담은 서사를 노래하며 한국적 포크 음악을 완성의 경지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특별한 싱어송라이터이다. 이 행동하는 예술가 정태춘의 삶과 노래는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 노래인생 40년을 망라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그리고 그 이전부터 정태춘의 삶과 투쟁의 현장을 같이한 영화인 고영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립영화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던 고영재는 이번 영화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
Q. 지난해 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반응은 어땠는지.
▷고영재 감독: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코로나 사태로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었다.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좌석에 앉아야했다. 관객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아는 사람들로부터는 친밀도 높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말이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일반화시키기는 애매하다. 그런데 이번에 특별시사회를 하며 뜨거운 관객반응을 받았다.”
Q. 이번 작품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처음부터 감독을 맡기로 했는가?
▷고영재 감독: “2018년 무렵에 감독 데뷔를 위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프로듀싱과 배급에서 예전의 재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정태춘박은옥 40주년기념사업회’에서 정태춘의 음악영화를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연출까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프로듀싱 경험은 많지만 말이다. 마땅한 감독을 찾다가 시간이 흘러갔고, 콘서트가 시작되자 태춘 형이 연출을 직접 해보라고 권했다. 이미 ‘30주년’프로젝트를 하다 ‘40주년’ 프로젝트까지 왔으니 직접 해보라는 것이었다. ‘다큐를 찍는 것을 허 하겠다’고. 그래서 하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과 정태춘의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연출을 맡게 되었다.”
Q. 정태춘과의 인연은 따로 있는지.
▷고영재 감독: “그 보다 몇 해 앞서서 '한미FTA 스크린쿼터' 운동을 할 때 문화예술인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고, 노래방까지 갔다. ‘선배님 선배님 그랬더니 왜 그래 형이라고 해’ 그러셨다. 이후 내가 제작한 영화들 <우리학교>,<워낭소리>,<똥파리> 등의 영화 시사회에 정태춘을 초대했고, 인연을 이어왔다. <블랙딜>에서는 형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그런 인연으로 ‘정태춘박은옥30주년’ 프로젝트 문화예술인 100인 위원회에 영광스럽게, 흔쾌히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연락주고 받으며 인연이 이어져 오다가 ‘40주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 불렀는지 기억이 나는지?) “글쎄. 조용필의 ‘친구여’를 부르신 것 같다. 기억이 안 난다. 그날 분위기에 취해서.”
Q. 정식 개봉에 앞서 전국 순회 시사회를 진행했다. 관객층이 어떠했나.
▷고영재 감독: “정태춘 박은옥 음악을 즐긴 세대는 지금 40대 후반 이상일 것이다. 시사회 참석한 관객들 층도 그렇다. 시사회에 많이 신청해주셨다. 정태춘박은옥 앨범이나 시디, 공연티켓 인증 샷을 올리는 이벤트 시사회였다. 자녀분이 대신 올려준 경우도 많은 것 같고. 같이 온 관객도 있었다.”
Q. 감독님은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 포크송?
▷고영재 감독: “글쎄. 들국화나 이선희, 양희은 콘서트를 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은 조동진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도, 들을 때도 감성을 확 휘어잡았던 것 같다. 내가 69년생이라서 문화적 감성이 그렇다.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있어서. 물론 ‘조개껍질 묶고~’ 같은 노래도 불렀다. 그땐 그랬다. 포크적 감수성도 있었고. 들국화 1집의 영향이 엄청 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행진’은 레전드다. 포크와 록의 감수성이 공존하는. 그러고 보니 DJ 이종환 세대일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레코드가게에서 테이프로 녹음하던 그때의 감성.”
Q. [워낭소리] 등 독립영화 프로듀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감독의 꿈이 있었는가.
▷고영재 감독: “물론, 영화감독을 하려고 영화를 시작했다. 전공은 연출 전공이었다. 대학원 때 단편영화 찍었다. 결혼하고 대학원 들어갔다. 내가 살아왔던 배경 자체가 좀 찐한 게 있다. 학생운동하고 정치외교학과 나왔으니. 책장을 보면 삶이 보인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제임스 조이스와 괴테, 이런 류의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는 시대분위기가 그랬으니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고 말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1주일에 한 번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하는. 그때 다들 그러했겠지만 연영과나 문창과 가겠다면 부모님 반대가 심했었다. 단절을 겪은 것이다. 영화관 많이 안 가게 되고. 그러다가 자취하면서 갑자기 문화적 갈망, 욕구가 다시 생기더라. TV와 비디오플레이어 사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탐닉했었다. 영화에 대한 욕구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았고. 영화라는 것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컷과 컷을 연결하며 설명해야하는 것이다. 내공도 부족했다. 그러다가 프로듀서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숙성기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스태프 생활도 다양하게 오래 했다. 그런 일을 쭉 하다가 미디센터 생길 때 이쪽 일을 하게 되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컨설팅해주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프로듀서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다.”
“영화 일을 하며 연출을 하게 되었다고 그것이 신분상승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할 이야기가 있어야하고, 언젠가는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일들이 재미가 없었고, 가지고 있는 시놉시스로 준비하고 있는 찰나에 ‘아치의 노래, 정태춘’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Q. 정태춘 하면 자동으로 박은옥이 따라 붙는다. 그런데, 제목부터 정태춘에 집중된다. 이유가 있는지.
▷고영재 감독: “대개가 정태춘과 박은옥을 굳이 연결시키려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태춘은 오랜 시간 작사 작곡한 아티스트이다. 그의 음악세계에 집중하려고 했다. 대신 그 안에서 보컬 박은옥을 담아보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었다. 작품을 하면서 둘이 부부라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동지관계나 사생활, 이런 것에 (작품의 중심적 과제)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음악영화이고 오롯이 정태춘의 일대기로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가제로 생각했던 것이 ‘그의 노래는’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려주려고 했었다“
Q. 작품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려고 했는가. 인물 중심? 아니면 사회적 맥락? 팬과의 소통? 어디에 중심을 두려고 했는지.
▷고영재 감독: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는 것이다. 정태춘의 음악을 안 듣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는 우선 그의 삶의 궤적을 펼쳐놓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노래를 창작한 시간을 놓고 보자면 특정시간대만 보여주기가 어렵다. 음악활동의 스펙트럼도 넓고, 사회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콘서트 장면을 계속 찍으면서 아카이브 구하기도 하고, 내레이션도 집어넣고 그랬다. 사회활동이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음악이 주요 테마였다. 처음에 어디서 어디까지 다룰지에 대해 물어봤더니 ‘음악영화’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물론 아무리 음악영화지만. 사회활동을 아예 떼어낼 수가 없으니까 그런 게 이슈로 남았다.”
Q. 그렇게 하다보면 굉장히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고영재 감독: “2시간 남짓의 영화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버리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다 담으려고 하다가는 중요한 것을 못 담을 수도 있다. 정태춘은 아티스트이다.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하는. 노래는 두 사람이 부른다. 노래에서는 특유의 문학적 서정성과 시대의 정서가 느껴진다. 약자의 정서를 묘하게 파고든다. 당연히 왜 이 사람은 이런 가사를 썼을까, 왜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그게 이 영화에서 보여줄 핵심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Q. 고영재 감독은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프로듀서로 유명하다.
▷고영재 감독: “[워낭소리]는 제작과정도 힘들었다. 이런 저런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훌훌 다 털어냈다. (작품 속)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도 편하다. 상표권도 유족분에게 다 넘겼다. 그 영화를 만들 때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상표권을 생각했었는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힘들었다.”
Q. [아치의 노래,정태춘]에서 ‘우리들의 죽음’이 나올 때. 많이 슬프다.
▷고영재 감독: “‘우리들의 죽음’은 1990년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곡이다. 그런데, 재작년인가 형제가 라면 먹다가 불이 난 사고가 있었다. ‘우리들의 죽음’이 나온 지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런 일이 있다니. 슬픈 노래이다.“
Q. 이 영화에는 어떤 노래가 쓰였나. 선곡의 기준이 있다면.
▷고영재 감독: “어떤 노래를 선택하느냐는 감독으로서 연출의도와 아티스트 정태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제 입장은 ‘우리들의 죽음’이 그의 노래인생에서 변곡점이며,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태춘의 모든 앨범에는 물이 있다. 강이 있든지. 이번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가 그의 노래에 대해서 그렇게 분석한 적이 있다. (40주년 학술논문) ‘정태춘에게 있어서 물은 이상형이기도 하며, 사유하는 대상’이라고. 의식하지 않았는데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정동진’도 바닷가이다. 그런 그에게 물이 없는 앨범은 ‘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의 모든 앨범에는 추상화된, 개념적인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오직 ‘아, 대한민국’에서만 등장한다. 역사, 투쟁. 이런 노랫말. 지극히 현실적인, 특유의 사실주의적 시각이 서정적으로 나온 것이 ‘우리들의 죽음’이어다. 그래서 그게 변곡점이라고 보았다. 그의 노래 인생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적확한 표현이 들어있는 곡이다. 그래서 그 노래를 집어넣었다.”
Q. 제목을 ‘아치의 노래’라고 쓴 이유는? 누가 선택한 것인지.
▷고영재 감독: “‘아치의 노래’는 정태춘의 작품 중 몇 안 되는 자전적인 노래이다. 다른 노래들은 풍경과 상황에 대한 묘사를 잘 하는데 화자가 좀 다르다. 자기일 때도 있고, 누구일까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의 노래’와 ‘아치의 노래’가 정태춘 곡에서 자전적인 느낌을 준다. 정태춘이 이 곡을 제목으로 선정했다. 절망과 좌절을 겪은 정태춘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서 정태춘은 노래를 부르며 이런 말을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고별선언이랄까. 앞으로는 제 이야기는 노래보다는 시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아치의 노래 가사를 찾아보았다.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태춘은 아치가 기르는 잉꼬새의 이름이기도 했다고 한다.
Q. 다큐를 끝냈으니 이제 본격적인 극영화 감독을 준비할 수 있겠다.
▷고영재 감독: “시놉으로 정리해 둔 게 몇 가지 된다. 버젯이 500억 원에 이르는 시리즈도 있다. 8부작에서 12부작까지는 만들어야할 것 같다. 주제가 땅에 관한 것이다. 부동산이 어떻게 변곡점을 찍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 흘러들어왔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주의적인 있다. 1억 내지 2억으로 끝날 것이다. 동시다발로 여러 개 구상 중이다.”
“미니멀한 것은 이런 내용이다. 결혼할 때 남편이 아내에게 약속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외박을 하든 뭐를 하든 자기 생활을 하겠다고.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아내가 그런다. ‘나도 쉬겠다’고. 반 년 치를 쌓아 휴가를 떠나는 내용이다. 로드무비 형식의 드라마이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버킷리스트를 채우는 미니멀한 이야기이다.”
1990년에 나온 ‘우리들의 죽음’은 이런 내용이었다. 경비원 아빠, 파출부 엄마가 일 나가면 지하셋방 집에 남은 다섯 살, 네 살 아이가 걱정이 되어 방문을 잠그고 나갔단다. 방에는 요강과 밥상이 있고. 정태춘은 ‘아, 대한민국’ 앨범에 수록된 ‘우리들의 죽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
낮엔 텔레비전도 안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텔레비전도 남의 나라 세상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그런 내용이다.
이번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고영재는 충무로, 독립영화계에선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07년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통해 제작자 및 프로듀서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한국독립영화 산업을 이끌어온 대표 독립영화인 중 한 명이다. 2008년 재중동포 김광호 감독의 <궤도>를 프로듀싱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개봉한 <워낭소리>로 제작,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렸다. 그 외에도 30여 편의 독립예술영화를 제작/투자/배급해왔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고영재의 연출 데뷔작으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과 사전 전국순회 시사회를 거쳐 오늘(18일) 개봉한다.
[사진제공=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