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연상호 감독이 전주에서 만났다.
일본 호러 걸작 <큐어>의 상영으로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담 형식의 ‘J스페셜 클래스’를 진행했다.
<큐어>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섬뜩하고 기묘하게 그려낸 범죄 스릴러이자, 사건을 쫓는 다카베 형사(야쿠쇼 코지)와 미스터리 인물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 사이의 심리적 대결을 그린 영화로 봉준호 감독이 꼽은 10편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알려져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올 여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개봉될 예정이어서 많은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J스페셜 클래스’는 연상호 감독이 기요시 감독의 열렬한 팬임을 고백하며 시작되었다. 연감독은 <지옥>을 제작할 때 <큐어>를 가장 많이 참조했다고 운을 뗀 후 사운드 디자인, 카메라 사용, 캐릭터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했다. 먼저 영화의 사운드에 대해 “<이레이저 헤드>만큼 사운드 디자인이 굉장히 놀랍다”고 말하자 기요시 감독은 “극장 사운드 시스템이 너무 좋아져서 그런지 오히려 소리가 너무 과하게 들렸다”고 응답했다. 이후, “영화에 실제 장소에서 나오는 소리를 위주로 삽입하려 했다. 특히 카메라 밖의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하려 했다”고 말하며 사운드의 의도를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은 롱테이크 샷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며 <큐어>의 카메라 기법에 대해서도 감탄했다. 연감독은 한 씬을 한 컷으로 담는 기요시 감독 특유의 카메라 사용에 대해 “한 씬 한 컷의 장점은 정갈함이다. 나도 <지옥>에 그런 장면들을 넣고 싶었다” 고백했다. 이에 기요시 감독은 “오락 영화인데 영화가 친절하지 않아 반성했다. <부산행>이야 말로 경탄스럽다”고 화답했다. 이어 연감독이 ‘마미야’ 캐릭터는 ‘조커’에 비견된다, <지옥>의 ‘정진수’ 캐릭터도 마미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며 배우에게 어떻게 연기를 주문했냐고 질문하자, 기요시 감독은 “크게 지시한 건 없다. 말을 내뱉은 후 그저 텅 빈 상태를 연출해 달라고만 했다”고 대답했다.
<큐어> 리메이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할리우드 등 모든 리메이크 권리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 기요시 감독은 “다른 식으로 변형된 작품을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연감독이 본인이 직접 리메이크 해보는 게 어떤가 하고 제안하자 기요시 감독은 재미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연상호 감독은 “<지옥>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의 지옥을 그리고 있다. <큐어>도 이 불확실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후 “<큐어>는 불확실성이 강해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는 감상평을 남기며 대담을 정리했다. 전반적으로 이번 행사는 연상호 감독이 <큐어>와 기요시 감독에 대해 진한 팬심을 드러내고 기요시 감독이 소탈하고 겸손하게 응답하는 방식으로 훈훈하게 진행되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의 대담을 통해 연상호 감독이 ‘찐한’ 팬심을 드러낸 세기의 호러 걸작 <큐어> 4K 리마스터링은 올 여름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