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야차’는 원래 넷플릭스를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었다. 코로나 발발 당시에 촬영에 들어갔고 코로나 시국에 어렵게 촬영을 끝냈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코로나 여파로 결국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된 것이다. 덕분(?)에 넷플릭스 작품에 출연하게 된 충무로 명배우 설경구에게 특별한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영화 [야차]는 전 세계 정보 요원들이 총집결하여 최고의 첩보전을 펼친다는 중국 선양(沈陽)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국정원의 비밀공작팀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설경구는 의뭉스러운 비밀공작팀을 이끄는 팀장으로 일명, ‘야차’로 불리는 사나이이다.
Q. [역도산]에서 일본어를 하고 이번엔 중국어를 한다. 배역에 맞춰 체중 증감도 고무줄처럼 해냈다. 연기자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더 부담이 되는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설경구: “둘 다 어렵죠. 언어라는 것은 음과 악센트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해야하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게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총기 다루는 것, 액션과 함께 외국어에 신경을 많이 썼다. 현장에서는 네이티브 스피커가 한 줄 한 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게 감독님이 원한 것이었다. 배우로서는 어려운 문제였다.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은 할 일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커트도 많았다. 같은 장소이지만 안과 밖을 다 담아야했다. 방도 안방이 있고 건넌방이 있고, 입구가 있다. 여러 곳이 서로 연결되어야했다. 조명도 그에 맞춰야했고. 당연히 어려웠다.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감독님이 만든 틀대로 딱 간 것이 아쉽다. 감독과 배우가 충돌하며 갔으면 좋았는데.”
Q.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아쉽지 않은가. 작은 핸드폰 화면이 아니라 큰 화면에서 보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장면이 있다면.
▶설경구: “감독님은 스케일을 생각하셨는데 아쉽긴 하죠. 플랫폼을 통해 개봉되는 것에 대해선 우리(배우)가 어찌할 수 없다. 당연히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플랫폼이 바뀐 것이니 사실 감독님이 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반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차이? 이전에는 ‘제 영화 많이 관람해 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요즘은 ‘많이 시청해 주세요’라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더 낯설더라.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큰 화면으로 보는 게 더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배우로서 OTT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지.
▶설경구: “극장에서 개봉될 때와는 달리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극장 개봉을 앞두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스코어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그런 게 많이 줄어든 셈이다. OTT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Q. 한지훈을 연기한 박해수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설경구: “내가 연기한 지강인은 똘아이같은 사람이다. 박해수와 연기하며 서로에게 배운 게 있다. 정의에 대한 것이다. 지강인은 자신의 팀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지만 마지막에 조금 변화가 보인다. 이전의 그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Q. 지강인은 아픔이 있는 인물이다.
▶설경구: “이 영화 촬영을 앞두고 정보기관을 견학했었다. 책(시나리오)을 읽었을 때 이런 이야기는 영화니까 가능하겠지 생각했었다. 블랙팀 자체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도 가족을 부양하고, 직업인이기 때문에 갖는 여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처지가 서글프다. 극에 등장하는 진서연은 북한 사람이다. 둘의 관계가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서글픔 때문에 서로가 이해가 가능하다. 남과 북이라는 각자의 나라를 두고 있지만, 남과 여의 관계라면, 서글픔을 공유한다.”
Q. 지강인을 어떻게 분석했나.
▶설경구: “국정원처럼 비밀스러운 조직의 블랙팀이라면 국가와 단절된 조직일 것이다. 정보원은 죽어서도 자신의 신분이 밝혀져선 안 되는 서글픈 존재이다. 너무 아끼는 사람일지라도 나머지 팀원을 살리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인물이다. 지강인은 그런 일을 오래 했으니 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미도]가 생각났다. 국가로부터의 계획된 배신, 사라져도 존재가 없는 사람들이다. 죽어서는 모두에게서 잊혀지는,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존재들.”
Q. 지강인을 어떻게 연기하고 싶었는지.
▶설경구: “다들 개성이 강하다. 조금씩 맞닿은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블랙팀에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긴 하지만 거창하게 캐릭터를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는 럭비공 같은 인물로 생각했다. 좀 더 불안정한 모습, 긴장감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불안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럭비공 같은 인물이었으면 어떨까하고.”
Q. 국정원에는 ‘무명의 헌신’이란 말이 있다. 블랙 요원을 연기하면 사전에 공부한 것이 있는지. 레퍼런스 삼은 작품이 있는지.
▶설경구: “레퍼런스 삼은 캐릭터는 없다. 대신 [시카리오] 영화를 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국정원 건물은 당연히 CG이다. 촬영을 앞두고 견학을 갔었다. 그곳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해 주시니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한 셈이다. 중국 공안과의 총격전은 영화적으로 포장된 것이지만 그런 긴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언론에 보도된 것 중에 우리나라 고위직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경호원들이 총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힌 적이 있다. 선양이라는 곳이 이런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충격적인 모습이 선양이라는 공간의 엄중함을 떠올리게 한다.”
Q. 코로나 초창기에 촬영한 영화였다. 촬영 과정이 험난했을 것 같다.
▶설경구: “정말 많이 심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촬영 가능한 일정이 촉박했다. 오자와을 연기한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부산으로 들어오지를 못했다. 세트장은 기한이 다가오고. ‘야차’ 끝나면 철거하고 바로 [한산]이 촬영 들어갈 예정이었다. 제작사가 사정을 하여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겨우겨우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들어왔고, 마지막 날 밤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Q. 블랙팀 멤버들과 호흡은 어떻게 맞췄는지.
▶설경구: “블랙팀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했다. 워낙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영화 찍는 것은 좋았다. 코로나가 엄중한 시국이라 정말 어렵게 지냈던 것 같다.”
Q. 중국 선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촬영은 중국이 아니었단다. 어떻게 화면을 구성했는지 설명을 부탁드린다. 대만 촬영은 어땠나.
▶설경구: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완전봉쇄된 셈이다. 다행히 그 전에 소스를 많이 찍어두었다. 실제 선양을 아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대만에서 크랭크인 했었다. 초반 한 달 반 정도 대만에서 찍었다. 홍콩 장면이 나오지만 홍콩에도 안 갔었다. 감독님이랑 스태프가 계산을 정말 잘 한 것이다. 선양처럼 보이기 위해 한국 여러 곳을 다니면 찍은 것들을 무리 없이 연결시킨 것이다. 정선, 울산, 대구 등 온갖 곳에서 찍은 장면이 한 씬에서 보여진다. 저도 감쪽같더라.”
Q. 지강인과 블랙팀 멤버들의 이야기로는 확장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이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으니 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것 같다.
▶설경구: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속편에 대한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확신이 없다. 제 성격상 속편이 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Q. 오랜만에 액션을 맘껏 펼친다.
▶설경구: “한동안 액션이 없었다. [불한당] 때 잠깐. 그런데 희한하게 이 영화 찍고 나서 잇달아 액션을 조금씩 한다. 아직 개봉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유령]에서 액션이 많았고, 지금 촬영하는 변성현 감독의 신작 [길복순]에서도 액션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출연 비중이 많지 않다. 전도연 액션이 많고, 저도 의외로 있다. [야차]이후 액션을 은근히 하는 것 같다. 전에는 힘으로 액션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조금 약아진 것 같다. 힘을 뺀 액션을 한다. 물론 그런 액션도 힘들다. 밤을 새서 찍어야하니까. 결과를 보면 즐거운데 과정은 아무리 힘을 빼더라도 힘이 들었다.”
Q. 넷플릭스 작품은 너무 쉽게 잊히는 것 같다. [박하사탕]은 개봉된 지 오래되어도 여전히 언급된다. 배우로서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은 없는지.
▶설경구: “그렇죠? 세상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는 것 같다. 영화 쪽 일을 30년 가까이하는데 그 사이에 너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OTT는 상상도 못한 세상이었다. 코로나가 더 앞당긴 것 같다. 아쉬운 게 많다. [야차]는 OTT로 제작된 것도 아니니. 감독님이 더 아쉬울 것이다.”
Q. [야차]는 어떤 영화로 남을까.
▶설경구: “[야차]는 어떤 목적, 거대한 포부를 갖고 한 작품은 아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그냥 보시는 분이 좋아하시고 즐기시고 통쾌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Q. 오락영화에 대한 갈망이나 애정이 있었나.
▶설경구: “갈망은 아니다. 그런데 쉽게 접근했다가 된통 당한 게 [야차] 같다.”
설경구는 바쁘다. 최근 ‘역은 작지만’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을 찍고 있었다. 개봉대기 중인 작품으로는 정지영 감독의 [소년들], 이해영 감독의 [유령],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못하고 있다. 다행히 김지훈 감독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달 중 개봉된다.
“즐겁게 촬영한 것은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이다. 많이는 안 나오지만 감독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시작부터 넷플릭스와 찍은 작품이다. 기대된다는 것은 변성현 감독에 대한 기대이다. 그리고 개봉대기 중인 작품들 다 기대된다. 잘못 말했다가는, 여기저기서 전화 올 것 같다.하하.”
“계속 비대면 인터뷰인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차츰 익숙해진다. 이제 이게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청와대도 이사 간다는데 삼청동에서 만나서 눈 보면서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아, 곧 개봉하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