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시청자들의 인생작이라고 불리는 다수의 드라마들을 연출한 홍종찬 감독이 이번에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은 소년범과 그들이 일으킨 범죄를 중심으로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와 소년범을 옹호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 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촉법소년이라는 제도를 지닌 대한민국의 이야기지만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그가 소년범을 바라보는 시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영상에 풀어낼지에 대한 충분한 노력과 고민에 있었다. 그의 실제 유년시절, 그리고 소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 시청자들의 인생작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Q. 넷플릭스를 통해 '소년심판'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료들이나 지인들, 대중들의 반응이 있는가?
처음에 넷플릭스 작품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이게 왜 넷플릭스에서 해야 하는 작품이지? 공중파나 공영방송에서 기획될 만한 작품인데’라고 생각하며 의아해 했다. 이 작품이 대중성을 확보할 작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작품 자체의 의미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흥행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보거나 열광하면서 볼 작품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지점에 대해서 넷플릭스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본래 의미와 색깔을 찾게 만들자, 흥행에 대한 부담은 갖지 말라고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재미'라고 말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딸이 작품을 보고 재밌게 봤다고 해줘서 기뻤다. 가족 단톡방에서 처음으로 누나, 형들이 ‘이런 작품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작품을 만들면서 소년들을 생각하고, 소년의 주변을 생각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살아온 어린 시절부터 지금 살아가고 있는 환경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그중 하나는 마치 차태주의 대사처럼 가정폭력, 혹은 어렸을 때 상처나 아픔의 기억이 있는 사람은 거기서 더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소년심판'에 여러 소년범들이 등장하는데 소년범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나 치유되지 않은 감정들이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청자들에게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유년시절의 상처나 자기도 모르는 아픔이 있다면 이 작품을 보면서, 소년범 혹은 심은석이나 차태주를 보면서 같이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 중에 유년 시절 때 아픔이 있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한 것 같다는 내용을 봤는데 굉장히 마음이 아프면서 '소년심판'이 조금이나마 그런 분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아픔을 해소해주기를 바랐다.
홍종찬 감독 ⓒ 넷플릭스 제공
Q. '소년심판' 제작발표회에서 소년법에 대해 어느 한 편을 들고자 해서 작품을 제작한 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신기하게도 한 회차씩 보면 볼수록 시청자로서 나 또한 의견이 바뀌더라. 그 중립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최근에 매스컴에서 부각된 소년범들의 잔혹성 때문에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여론이 생기고 나조차도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어휴, 저런 놈들이 또 나왔어? 어이구 끔찍해라"라고 말할 정도로 소년범죄를 매스컴으로만 전달받고 감정적으로 동요했었다.
하지만 '소년심판'을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됐다. 법정에 소년범이 설 때까지 그 주변은 무엇을 했는지, 가족과 친구들, 마을과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소년범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과 끊을 수 없는 실타래처럼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의 시각만이 전달되면 우리가 작품을 만들 이유도 없었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변질되기 때문에 균형이 굉장히 중요했고, 심은석을 비롯한 판사들, 소년범들의 범죄, 주변 인물들 모두 마찬가지로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작품을 마칠 때까지, 편집 과정에서도 끝까지 균형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면서 작업했다.
Q. 예고편부터 느꼈지만 본편에서도 연출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대사가 묵직하고 컷이 길었는데도 흐름이 지루한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무거운 신들이 연속되어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떤 방식을 통해 연출했는가?
아무리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크고 중요하다고 한들 '소년심판'을 재미없게 본다면 무의미한 작업이 되는 터라 김혜수 배우와 처음 만났을 때도 우리 작품이 이렇게 좋은 작품이고, 사회에 소년범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와 질문을 던질 텐데 사람들이 많이 보게 하고 더 관심을 갖게 하려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할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의미만 있고 재미가 없다면 작품으로서는 사람들이 봐주질 않을 텐데 연출로서 부담감이 있었고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그 답의 거의 80%가 캐릭터와 캐스팅이었다.
네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 조연들 모두가 다 같이 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이 씬을 더 살릴지, 스펙터클하고 영상이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캐릭터의 진심이나 등장인물 간의 대립 혹은 대사 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배우분들도 많이 고민했고 나 또한 재미를 줄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다.
소년범 캐스팅, 그들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과정, 현장에서 같이 촬영을 하면서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했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무겁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양념을 더하거나 무언가 덜어내지 않았고, 지루하다고 해서 편집으로 템포 있게 만들고 그렇게 되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더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본질과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이 자체를 과장되지 않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충실하게 연출을 했다. 연출에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미장센이나 다른 연출적인 요소보다는 배우들과의 호흡과 연기, 소년범들의 신선함 등이었고,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서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고 무겁지만 계속 보게 된 작품이었지 않나 싶다.
홍종찬 감독 ⓒ 넷플릭스 제공
Q, 성범죄 생존자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와 편견에 대해서 말하는 신 또한 인상 깊었는데,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섬세하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식으로 신을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집단 성폭행 사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시는 것 같다. 피해자로서 이미 충격이 클 테고 친구가 전부인 나이인데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고 했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았을 때 받았을 충격, 그 문자를 받고 나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지 많이 상상해보고 이입을 하려고 했었다.
피해자 강선아 역할을 맡았던 신인 강채영 배우와도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지에 대해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심은석과의 대면에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그러니 고개 당당히 들라'는 은석의 말에 용기를 얻고, 강선아가 법정까지 가서“제 인생을 예전처럼 되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감정선까지를 배우와 굉장히 디테일하게 이야기했다.
강선아를 누가 연기할지 고심이 많았는데 나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오디션을 봤다. 강채영 배우는 연기가 거의 처음이었지만 똑똑하고 똘똘하고 이미지적으로도 인상에 남아서 캐스팅했고 캐릭터 내면의 상처에 대해서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했다.
Q. 시청자들의 인생작이라고 불리는 다수의 드라마들을 연출했는데 이번에도 인생작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작품인 것 같다.
'소년심판'은 무거운 이야기였고 많은 관객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닐 거라고 판단해서 흥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서는 작품이 히트를 치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넷플릭스 시청자들도 많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있었지만 작품 자체가 진지하고 다소 어두운 톤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전작에서 했던 걸 반복하지 말자, 항상 새로운 연출적인 시도와 전작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자'는 각오로 작품에 임하고, 언제나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최고의 인생작이라 생각하고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