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역사적 근원을 탐색해 본다.
최근 우크라이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인 ‘키예프’ 대신 우크라이나식 발음인 ‘키이우’로 표기하자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크라이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으로 말해왔던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어는 실제로 약 60% 공통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두 나라는 어떤 관계였을까?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 스키타이에서 기원한 슬라브인들은 882년 비옥한 평원에 자리 잡고 ‘키이우 루스’라는 국가를 세운다. 그곳이 바로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다. 강력한 유목민족에서 기원하긴 했지만, 몽골 제국, 러시아 제국 등 비옥한 땅을 탐낸 대국의 침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땅의 역사는 순조롭지 않았다. 세계적인 농업지대이자 유럽의 빵 바구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크라이나를 알아본다.
● 러시아 혁명과 우크라이나
1917년 러시아, 피폐한 삶을 바꿔보려는 백성들에 의해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반사회주의 세력과의 내전을 거쳐 1922년,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공화국들이 ‘소비에트 연방’을 성립한다. 이때 소련에 가장 먼저 합류했던 국가가 바로 우크라이나. 레닌은 민족 자결주의에 입각해 우크라이나에 최초로 민족적·국가적 독립성을 인정했다. 레닌의 결정이 이후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격동의 시기를 지나 사회주의 이념으로 뭉친 소비에트 연맹 탄생과정을 자세히 알아본다.
레닌에 이어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위해 큰 개혁을 단행한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생산 활동의 체계를 탈바꿈하고자 한 것이다. 단 몇 년 만에 러시아의 농토 대부분이 공업지대가 되었다. 러시아의 빠른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농사로 먹고 살던 민중들의 고통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해까지 우크라이나를 덮친다. 우크라이나에 불어 닥친 대기근 ‘홀로도모르’로 인해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20일(일)요일 저녁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52회 철의 장막 소련 70년①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시작 소련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