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로 평단의 주목을 받고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로 7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장철수 감독이 실로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다. 놀랍게도 중국 작가의 논쟁 가득한 소설이 원작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원작소설을 수위 높은 치정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장철수 감독에게 논쟁의 논쟁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대해 직접 물어보았다. 영화는 출세를 꿈꾸는 모범병사 무광(연우진)이 사단장(조성하)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과의 만남을 겪으며, 넘어서는 안 될 신분의 벽과 빠져보고 싶은 위험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란다.
Q.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장철수 감독: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영화라는 게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때가 있고 인연이 맞아야 일이 되더라. 9년 만에, 이 작품을 하기로 한지 11년이 되었다. 지금 개봉되는 것이 이 작품의 운명인 모양이다.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것에 대해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Q.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연출을 맡게 된 계기와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
▶장철수 감독: “원작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중국이다. 사회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어 외국에 다닐 때도 이 작품을 붙잡고 있었다. 두어 달 걸쳐 초고를 완성했고, 계속 수정작업에 매달렸다.”
Q. 소설을 읽고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원작의 배경은 문화대혁명과 모택동에 대해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다.
▶장철수 감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을 한 것은 이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에 끌렸다. 멜로영화는 상대를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는 것 같다. <색계>의 두 주인공이 얼마만큼 사랑했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나 <박하사탕>의 두 남녀 주인공이 얼마나 사랑했을까. 이 작품에서도 두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배경에 대한 고민은 많았다. 내가 중국 사람도 아니고, 너무 멀게 느껴졌다. 북한으로 바꿀까 생각했지만 북한과 멜로라는 장르를 연결시키기에는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꼭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존재할 것 같은 나라를 설정했다. <그을린 사랑>에서 가상의 아랍국가가 나오듯이. 사투리를 쓰지 않은 것도 멜로드라마에 이입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신성시하는 인물에 대해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도 멜로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산사회이든, 원시부족국가이든, 왕정국가이든. 그 어디에도 통하는 인간의 보편적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Q. 작품이 공개된 뒤 수위가 높은 장면들로 화제가 되었다. 이런 반응에 대한 생각은.
▶장철수 감독: “단지 수위가 높은 작품은 많다. 작품에서 전해주는 이야기와 얼마나 맞아 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 자체가 세다. 살 떨릴 정도로 위험한 이야기이다. 그걸 영화로 옮길 때 약한 수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세게 가야는 것보다는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덴동산처럼 표현되는 장면도 있는데 몸을 사리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이기에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 있는 신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일부일 뿐이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다양하게 볼 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Q. 원작의 어떤 점이 끌렸는지. 어떻게 영화로 옮기고 싶었나.
▶장철수 감독: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전히 매료되었다. 작가는 중국에서 20년 이상을 군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군대 이야기가 진솔하게 느껴졌다. 군인이야기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소설 첫 페이지에 묘사하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허구를 통해 진실을 보는 경우가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했고, 저도 영화를 통해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배우 캐스팅 과정과 현장에서 합을 맞춰본 소감.
▶장철수 감독: “캐스팅 과정은 지난했다. 딱 알맞은 배우를 찾기 위해 기다렸고, 배우가 그 배역이 되는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연우진이 가장 먼저 캐스팅되었다. 처음 보자마자 이 인물이면 되겠다 생각했다. 순수하고 순박한 느낌. 다른 사람을 위해 복무한다는 느낌이 영화 속 ‘무광’과 비슷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한 겹 벗겨내면 소중한 자아가 꿈틀대고 있다. 수련은 <함정>에서 대사 하나 없이 표정만으로 인물을 잘 연기했었다. 그런 분위기는 감독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 조성하 배우는 가장 늦게 캐스팅되었다. 사단장 역할과 잘 맞아 떨어진다.”
Q. 군 내부의 갈등, 스캔들이라는 점에서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이 떠오른다. 군대라는 특정한 배경이 남녀 간의 긴장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까?
▶장철수 감독: “영화 <인간중독>이 나오기 전에 소설이 나왔었고 그때부터 바로 영화화를 준비했었다. <인간중독>도 훌륭한 작품이고 김대우 감독은 존경하는 작가이자 감독이다. 군대라서 더 엄격한 부분이 있다. 계급이라는 분명한 서열이 존재하고, 남성적 질서가 있으니. 군대가 사회를 보여주는 메타포가 될 수 있다. 사회가 점점 계급화 되고, 군대처럼 신분체계가 생기는 것도 있다. 그 안에서 승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군대에서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노출과 베드신을 연출에서 특별히 연출하고자 했던 점은.
▶장철수 감독: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청불영화였다. 그 영화는 노출보다는 폭력 때문이었다. 남녀 간의 수위가 센 영화는 촬영 현장이 예민해진다. 이걸 보면서 부끄럽게 하지 말자, 보는 사람이 해방감을 느끼게 하자. 그런 고민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를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자. 배우는 작품에서 하나의 목적이 되어야하니까. 어떻게 하면 자기 작품에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다.“
Q. 영화의 표현 수위와 관련하여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출연 계약 단계부터 충분히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장철수 감독: “우려가 많았던 것 같다. 성적인 묘사에 있어서 더 조심해야하고, 금기시 하는 분위기도 있다. 배우들도 이 작품 하고 나서 잘못되거나 불편해하면 안되니까. 처음부터 합의하는 것을 중요했다. 배우와 소속사와 만나 처음부터 논의를 충분히 했다. 어디까지 필요하고, 어떤 준비를 할지. 장치 마련하고. 촬영을 했기에. 그래서 배우들도 지금 열심히 영화를 홍보하고 하고 있다. 훨씬 엄격한 상황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Q.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제목은 어떤 의미인지.
▶장철수 감독: “‘인민’이라는 단어가 금기시 디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분단되기 전에는 사용했던 말인데 지금은 안 쓴다. 그냥 ‘피플’이다. 사람 인(人)에 백성 민(民). 제목으로 쓰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군인들이 복무하는 것, 군인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단어가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는지는 사회마다 다르다. 특히.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복무하고 있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Q. 장철수 감독은 고(故)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영화수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영화현장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장철수 감독: “영화를 하겠다는 마음을 처음 가졌을 때 일본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세운 영화학교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영화계는 전성기를 지나 하향추세였고,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할 때 김기덕 감독의 <섬>을 보았다. 일본에서 비디오로.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저수지의 좌대를 섬으로 만드는 미술적 솜씨가 놀라왔다. 그 후 <해안선>,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까지 세 편 참여했다. 그리고 <신부수업>(2004) 조감독을 거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로 감독 데뷔를 했다. 김기덕 감독과는 도제관계는 아니다. 당시 김 감독 밑에서 작품하고는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다. 작은 예산으로 힘들게 찍으니. 저는 <해안선>때 연출부 막내로 미술팀 일만 했다. 그때는 감독님 근처에도 못 갔다.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봄여름...> 조감독 시켜주었다. 그때 감독님은 자신이 영화를 전공하거나 공부한 것이 아니어서 직접 가르쳐주는 것은 없으니 너네들이 알아서 배우라고 했다. 그래도 그때 세 가지를 배운 것 같다. <해안선>때 너무 힘들어 스태프들이 도망갈 때 김 감독은 ‘다 도망가도 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물고기와 풍경만으로도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자신감.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절대 화면에서 눈을 떼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빠른 속도로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보는 것보다 빨라야 영화에서도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그런 것을 배운 것 같다.”
Q. 전작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가 7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후속 작품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장철수 감독: “아무도 예상 못했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기다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이 하나 성공하며 다음 작품이 수월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더라. 그동안 기획 개발하면서 실패한 작품도 있다. 나는 영화판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이 컴백작품이 되어버렸다. 이 시간들이 나에겐 성숙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은 아니다.”
연우진, 지안, 조성하 주연의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오늘(23일) 개봉한다. 심의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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