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하이틴 ‘좀비’ 로망스 [지금 우리 학교는]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은 TV드라마 PD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했고, 영화판으로 넘어와서는 [역린]과 [완벽한 타인]을 감독했다. 알고 보니 대학로 연극도 연출한 적이 있다고. 이재규 감독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들과, 코로나 한국에서의 넷플릭스 의미를 물어보았다. 진중하게, 성실하게, 꼼꼼하게 대답했다. (인터뷰는 이달 초 한창 넷플릭스에서 인기몰이를 할 때 화상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Q. 좀비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코로나 시국 이후에 기획된 것인지?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더 주목받는 것 같다.
▶이재규 감독: “좋아하던 장르는 아니었다. 즐겨 찾지 않았던 것이 호러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하면서, 공부하면서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 작품은 7년 전부터 기획했었다. [부산행]이 나오기 전이었다. 처음 기획할 때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는데 [부산행]이 성공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 대본 작업할 때도 코로나 발생 전이었으니 ‘무증상 감염’, ‘반감염,’ ‘격리소’ 같은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물론 불행이죠. 코로나시대가 닥치면서 그런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놀랍기도 하다.”
Q.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또 한 번 K콘텐츠의 실력을 보여준 것 같다. 소감은.
▶이재규 감독: "20년 전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할 때 연락을 많이 받았었다. 최근에 그에 못지않게 연락을 많이 받는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어 기쁘다. 작품에 반응을 해주시니 극을 만든 사람, 연출자로서 기쁘다. 세계적인 반향은 신기하고 감사하다. [오징어게임]이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며 작은 문을 열어준 것 같다. 좋은 한국콘텐츠가 해외에 전달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막상 해외 인기를 기사로 접하니 설렌다.“
Q.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있다.
▶이재규 감독: "표현에서 바로 느끼는 것도 있지만, 극을 즐기다가 정서적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수면 아래 흐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좀비극’다운 이야기는 1부와 2부를 통해 보면서 몰입하게 할 수 있는 드라마였으면 했다. 다른 이면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싶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고, 학교는 우리 사화의 거울이라 생각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 것이다.“
Q.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재규 감독: “좀비물에 엄청난 팬들이 있는 것 같다. [오징어게임]이 열어준 문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관심을 받은 것 같다. 확실히 K콘텐츠가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서구인이 만든 드라마는 드라이한 시선, 정제한 감정으로 만든 극이 많았다. 한국이 만든 것은 덜 정제되었지만 더 뜨겁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우리가 사회화되고,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어린 시절의) 뜨거운 것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그 뜨거움이 세계 여러 곳에서 사랑을 받는 것 같다. 한국관객이 느낀 것, 프랑스, 태국의 시청자가 느끼는 것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사람이니까 느끼는 기본적인 정서는 같은 모양이다. 그런 반응이 반갑기도 하다.”
Q.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이재규 감독: “아이들을 캐스팅할 때 모든 배우가 실제 배역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 따졌다. 그 배역에 유사하거나 유사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오디션 과정도 그러했다. 외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캐릭터와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연 4명인 온조(박지후), 청산(윤찬영), 남라(조이현), 수혁(로몬) 뿐만 아니라 경수(함성민)도, 이삭(김주아)도, 대수(임재혁)도 실제 배우와 많이 닮아있다.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캐릭터에 대한 목표를 갖지 말고, 자신과 닮아 있는, 마음에 닿아 있는 연기를 하라고 주문했다.”
Q. 학교폭력을 다루면서 ‘성폭력’은 소재가 센 것 같다. 원작을 옮기면서 특히 유의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재규 감독:“학교폭력과 사회폭력 이야기가 있다. 성폭력도 한 축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에는 훨씬 극단의 성폭력이 나온다. 영상으로 옮기면서 다 뺐다. 원작 웹툰에서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기에 필요했겠지만, 영상에서는 또 다른 지점이 있다. 극단적인 상황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지, 얼마나 절박하게 부끄러운 사진을 없애려고 했을까. 작품에서 보여준 것은, 종국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으로 다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 설정 상 피할 수 없었다.”
Q. 효산고 학교 담장에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쓴 노란 리본에 묶여있다. 당연히 세월호가 연상된다.
▶이재규 감독: “아이들은 희망을 잃어버렸고, 국가와 조직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챙기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한 것은 아니다. 세월호도 그렇고 성수대교도, 삼풍백화점도 그렇다. 현대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겪은 우리의 문제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고민해 보고자 하는 것을 극에 담으려 했다. 특정 사건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Q. 학교라는 특성상 많은 인물이 나온다. 이야기를 다 펼치지 못한 캐릭터가 있는지.
▶이재규 감독: “멀티 캐스팅이었고 각자의 개성이 최대한 드러나게 하려고 했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나게 하려고 노력했다. 몇몇 캐릭터는 극의 메시지나 주제에 닿아 있게 존재한 캐릭터가 있었다.”
Q. 원작 웹툰에는 없지만 시리즈를 위해 각색한 장면이 있다면.
▶이재규 감독: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설명하거나 소모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 그동안 좀비물은 좀비의 기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심을 둔다. 우리 작품에는 그것이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하는 것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 지점이 (기존의 좀비물과) 다른 점이다. 우리 드라마답게 만든 중요 요소 아닐까.“
Q. 빌런 캐릭터를 연기한 유인수, 이유미 배우에 대해 말씀해 달라.
▶이재규 감독: “둘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귀남(유인수)은 복합적인 레이어를 가졌다. 유인수 배우는 16살에 청소년연기대회에서 연기하는 것 보고 반했다. <리어왕>이었는데 3,40대 배우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해내더라. 자신의 레이어를 갖고 연기한다. 그 친구를 유심히 봤다. 귀남이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것보다 딜레마를 가진 그런 캐릭터를 표현한다. 이유미 배우는 굉장히 많은 측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고 맑아 보이는, 굉장히 영리해 보이는 점이 있었다. [박화영]에서의 세진 캐릭터보고 반했다. 나연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캐스팅하고 나서 부모와 있었던 이야기는 다 뺐다. 혼자 고립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냈다.”
Q. 좀비 이야기이지만 K-고딩의 몽글몽글한 감정씬이 인상적이다. 현장분위기가 어땠나.
▶이재규 감독: "실제 배역에 근접한 아이들을 캐스팅 했고 실제 앙상블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각자 이런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대사를 할지 정해가고 맞춰갔다. 배우들 자신이 대화하고 같이 만들어낸 것이다. 청산과 온조의 키스 장면도 그렇다. 테이크를 여러 번 갔었고 NG도 났지만 그런 식으로 찍었다. 촬영할 때 스태프도 배우들 모두 울었다. 벅차오르는 눈물이었다. 저도 모니터 보며 눈물이 났었다. ‘내가 이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다’라는 대사는 소화하기가 힘든데 청산이가 해보겠다고 했었고, 멋있게 해냈다. 감사하다.“
Q. <지금 우리 학교는>이 12부작으로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해 달라.
▶이재규 감독: "영화, 연극을 하며 길이에 익숙한 편이다. 24부작, 16부작 드라마, 단막극을 다 해봤다. 그래서 회차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지만 이 작품은 몇 회가 가장 적합한지를 찾아가는 단계가 있었다. 작가님과 함께 그 회차에 맞게, 적합하도록 끝내자고 구성안을 잡아갔다. 12회차 정도로 작업하면 완결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회와 2회는 워밍업, 적응시간이고, 3,4회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부분이다. 그렇게 12회로 완결성 있게 찍자고 의견을 나눴다. 이 이야기를 완결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12개의 에피소드가 필요했다.“
Q. 도서관 장면이 명장면 중 하나다. 어떤 식으로 촬영이 된 것인지.
▶이재규 감독: “찍기 쉽지 않았던 장면이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배우들이 즐기면서 촬영에 임해주었기에 그런 장면이 완성된 것이다. 도서관 장면은 5회차 촬영이 이뤄졌다. 리허설을 여러 차례 했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분장 하지 않은 채 하는) 드라이 리허설하고, 드레스 리허설 하고, 슈팅 전에 다시 리허설 하고. 세트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서가 위를 뛰어다니는 액션 장면을 찍기 위해 30센티미터 높이의 세트를 만들었다. 높이를 높였다가 낮추기도 하고, 전등도 위치 조정하고 그랬다. 오만가지 시행착오 끝에 도서관 장면이 나온 것이다. 청산과 귀남이 서가 위를 뛰어다니고, 떨어질 때 감정선이 중요했다. 캐릭터가 큰 흐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은 것이 큰 매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건 좀비물이고, 시청자들이 좀비가 들이닥칠 때 바로 옆에서 목도하듯이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현장감을 주기 위해 애를 썼다.”
Q.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재규 감독: “시즌1은 어떻게든 버티는 이야기였다.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돌연변이 좀비 이야기. 시즌1에 등장한 좀비를 보면, 좀비에게 물렸지만 면역된 남라(조이현)가 있다. ‘이뮨’이라고 부른다. 귀남(유인수)이나 은지(오혜수)의 경우는 심장이 멎기 전에 좀비가 된 '임모탈'이다. 보통의 좀비까지, 세 종류의 좀비가 있는 셈이다. 시즌2에서는 이야기가 확장되어 인간들과 함께 세 (종류의) 좀비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시즌1이 인간들의 생존기라면, 시즌2는 좀비들의 생존기인 셈이다. 그리고 시즌3가 만들어진다면 대전쟁의 컨셉이 될 것 같다.”
Q. 좀비 분장으로 일어난 에피소드가 있는지.
▶이재규 감독: “저희들끼리도 좀비 분장에 움찔했다. 화장실 갔다가, 모퉁이 돌 때 좀비들이 쭉 앉아있으면 놀란다. 촬영 때는 안고, 쓰다듬고 그러지만 어두운 데서 만나면 우리도 놀란다.”
Q. 감독이 뽑는 최고의 애드리브 장면은 무엇인지.
▶이재규 감독: “10화에 준영이가 물리고 나서 아이들이 운동 도구함을 엮어서 체육관 밖으로 나와 ‘집에 가자’ 그 말을 할 때 가슴이 아팠다. 애드립이다. 리허설에서는 안했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Q. 청나라 시인 조익(趙翼)이 남긴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구절은 국가의 불행이 역설적으로 시인에겐 좋은 시를 남길 수 있었단다. [오징어 게임]도, [지옥]도, [지금 우리 학교도] 그런 연장선상일 듯하다. 소회가 있다면. (이날 라운드 인터뷰에서 베테랑 연예부 서 모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이재규 감독: “공감한다. 국가나 사회가 안정되어 있으면 좋다. 불행하면 시인이 더 많은 시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도 줘야한다. 이 작품에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이 담겨있다. 좀 더 책임 있는 어른이 되어야한다. 그런 메시지가 담겨있다.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어른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획안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앙투아네트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은 절망에 빠지고 나서야 본인 스스로를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Q. '양궁‘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제 한국 감독들도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한국적 요소를 생각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이재규 감독: “하리(하승리)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한국은 양궁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강국이다. 케이콘텐츠로 만들어질 것 같았다. 양궁부원을 연기한 하리와 민재가 실제 프로페셔널한 코치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코치 한 분은 금메달 받은 분이다. 양궁은 한국이 강국이고 우리 콘텐츠 만드는 데는 좋은, 매력적인 기재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활을 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방편이었다. 이야기 풀기에 말이다. 서양처럼 총을 쏠 수는 없으니 말이다.”
Q. 방송국 드라마PD로, 충무로 영화감독으로, 넷플릭스와의 작업의 장점을 이야기해 본다면.
▶이재규 감독: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대학로 연극도 해봤다. 영화도 만들어봤었다. 넷플릭스의 크리에이터 프로듀서와 직원들이 창작자에게 많은 것을 열어주었다. 컨트롤 해야하는 것과 매니징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고, 창작자가 목표로 하는 것에 길을 열어주신다. 잘 조화가 되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장(場)이 되었던 것 같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Q.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감독님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이재규 감독: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30년 정도 되돌아가서 청년의 마음으로 잠깐 살아본 것 같다. 아이들의 느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아침마다 촬영장 갈 때 마다 설렘이 있었다. 젊음의 순수함을 같이 느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재규 감독이 “이렇게 같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할 때는 행복감이 줌 화상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진제공 = 넷플릭스]